[특파원시선] 400년 전 그때와는 달랐던 '신성 모독' 그림

민경락 2026. 5. 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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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의 '순례자의 성모' (로마=연합뉴스) 민경락 특파원 = 로마 산타고스티노 성당에 있는 바로크 거장 카라바조의 '순례자의 성모' 2026.4.30 rock@yna.co.kr

(로마=연합뉴스) 민경락 특파원 = 이탈리아 로마 산타고스티노 성당에는 바로크 거장 카라바조의 작품 '순례자의 성모'가 있다. 지독한 현실주의로 신성모독이란 비판을 받았던 그의 논란작 중 하나다.

다른 성화(聖畵)와 달리 너무 평범하게 묘사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문제였다. 소박한 옷차림을 한 맨발의 성모는 그 앞의 누추한 순례자들 앞에서조차 환히 돋보이지 못했다.

그림 밖으로 튀어나올 듯 강조된 순례자의 더러운 발바닥에 당대 성직자·신자들의 불편함은 정점을 찍었다. 수군거림은 그림 속 성모의 모델이 '길거리 여성'이었을 것이라는 '카더라' 소문으로 살을 붙여갔다.

물론 고매한 성직자들과 보수적인 예술가들이 '신성모독'을 외치는 사이 그림 앞에서 조심스럽게 희망을 품은 힘없고 가난한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절망이 일상인 '우리'도 어쩌면 성모와 예수에게 저렇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마음 속에만 가둔 상상으로 애써 억눌렀던 꿈이 곧 이뤄질 것만 같다는 기대감은 종교적 구원에 무리 없이 포개진다.

'신성모독'이 중죄로 다스려지는 시대에 이 작품이 살아남은 이유, 카라바조가 논란을 몰고 다니면서도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은 이유는 이런 현실주의의 힘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교황 비판 직후 소셜미디어에 올린 AI 이미지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및 DB 금지]

그로부터 400여년이 지난 2026년 4월 14일 또 다른 이미지가 '신성모독' 논란을 일으키며 세상을 흔들었다. 수백 년을 버틴 카라바조 작품과 달리 12시간 만에 '순삭'됐다는 것이 다를 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없었다면 미국인 교황은 없었을 것이라며 전쟁을 비판한 레오 14세 교황을 거칠게 비난했고, 곧이어 마치 '화룡점정'을 시전하듯 인공지능(AI) 이미지를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예수 복장을 한 트럼프 대통령이 환자의 이마에 손을 얹고 기적을 행하는듯한 장면이었다.

강한 섬광이 비치는 트럼프 대통령의 양손은 초신성처럼 눈부시다. 그를 우러러보는 간호사와 군인, 기도하는 여성은 주인공을 떠받드는 조연처럼 배치됐다.

카라바조가 성모와 예수를 대중의 곁으로 끌어내려 논란이 됐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 인간 위에 올라서 신을 밀어낸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렇게 신성모독 논란의 주인공이 됐다.

신의 자리를 꿰찬 듯한 인간의 모습은 각자의 세계에 간직해온 꿈과 희망을 순식간에 '현실 정치'의 나락으로 밀쳐버렸다. 많은 이들이 분노를 넘어서 허탈과 허망함을 토로한 건 그래서였을 것 같다.

역사상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이번 논란을 '나만 옳다'는 독선에서 나온 오만함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레오14세 교황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및 DB 금지]

기독교인이라면서도 동시에 초월적 존재를 꿈꾸는 듯한 트럼프 대통령의 모순은 다른 곳에서도 목격된다.

'전쟁을 예방하겠다'며 전쟁을 시작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그렇고, 4년 넘게 이웃 나라에 드론·미사일을 퍼부으며 '중동 평화'를 위해 앞장서겠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며칠 전 다시 '순례자의 성모' 앞에 섰다. "전쟁하는 이들의 기도는 신이 거부할 것"이라는 교황의 발언에 트럼프 대통령이 '천국행'을 약속한 한 목사의 편지로 응수한 뒤였다.

그림을 다시 보니 선 채로 오른쪽 다리를 꼬아 까치발을 짚은 성모의 자세가 묘하게 배타적이다. 아기 예수를 뒤로 비틀어 안은 성모의 팔에서는 행여나 어떤 '더러운 것'이 묻지 않을까, 아기를 최대한 순례자에게서 멀리 떨어뜨리려는 조바심도 느껴지는 것 같다.

문지방 위에 높게 올라선 성모와 더 낮은 곳에 무릎을 꿇은 순례자는 날카로운 대각선을 그리며 높고 낮음의 권위적 대비를 빚어냈다. 순례자 앞에 놓인 두 개의 지팡이는 성모 앞으로 나아가는 그들을 막아서는 창살처럼 보인다.

이쯤 되니 순례자들은 씻을 수 없는 잘못을 한 죄인들이고, 성모와 예수가 그들의 기도를 외면하며 이기심을 추궁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roc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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