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동 골목길 문턱 없는 집, ‘노회찬의 집’에 놀러 오세요 [사람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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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칠 뻔했다.
'노회찬의 집 6411'.
4월11일, 노회찬 사후 8년 만에 문을 연 '노회찬의 집'은 모남 없이 동네에 스며든 모습으로 방문자들을 맞이했다.
2024년 12월, '노회찬의 집' 건축을 위한 벽돌기금 모금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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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칠 뻔했다. 서울 지하철 1·4호선 동대문역 3번 출구를 나와 스마트폰 지도 앱에 나온 대로 좁은 골목길에 들어섰다. 소규모 영세 봉제공장들이 들어섰던 창신동 특유의 붉은 벽돌 주택가를 잠시 두리번거리고서야 현판을 발견했다. ‘노회찬의 집 6411’. 4월11일, 노회찬 사후 8년 만에 문을 연 ‘노회찬의 집’은 모남 없이 동네에 스며든 모습으로 방문자들을 맞이했다.
2018년 7월23일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세상을 떠나고, 이듬해인 2019년 1월 노회찬재단이 창립되었다. 마포역 인근 20평 사무실을 거쳐 공덕동에서 전세살이를 하던 2023년 중순 재단 이사회는 공간 이전을 결정했다. 노동자, 서민,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존중받는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라는 노회찬의 꿈을 이어가는 재단으로서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문턱 낮은 공간이 필요했다”라고 조동진 노회찬재단 사무총장(53·맨 왼쪽)은 말했다.
‘공간 이전 추진단’이 꾸려져 서울 시내 곳곳을 다니며 후보지를 알아보았다. 지금 ‘노회찬의 집’이 들어선 ‘창신동 옛집’은 운명처럼 찾아왔다. 1961년 지어진 2층짜리 주택은 60년이 넘는 세월의 흔적을 켜켜이 간직한 채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었다. 창신동 봉제공장 거리와 전태일재단이 근처에 있고, 이주노동자들 거주지역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도 ‘6411번 버스’ 연설에서 투명 인간들을 조명한 노회찬의 정신과 맞닿아 있었다.
2024년 12월, ‘노회찬의 집’ 건축을 위한 벽돌기금 모금이 시작되었다. 6411명의 시민 건축주를 모시겠다는 목표를 훌쩍 넘어 8907명이 참여했다. 곡진한 사연이 적지 않다. 그렇게 모금한 13억여 원에 재단에서 매달 641만원씩 저금해둔 자금을 더해 건물을 리모델링했다. 원래 주택의 형태를 최대한 살리고 그 위에 한 층을 더 올려 3층짜리 노회찬의 집이 탄생했다.
예산은 빠듯하고 오래된 건물이라 설치하기 쉽지 않았지만, 장애인 엘리베이터는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이 재단의 생각이었다. “노회찬 의원님이 장애인차별금지법도 대표 발의하셨거든요. 엘리베이터 들어설 공간을 만드느라 건축하시는 분들이 애를 좀 먹었어요.” 앞으로 갚아나가야 할 빚이 11억5000만원 정도 남았다. ‘벽돌기금’ 후원자들의 이름을 새기는 ‘기부자의 벽’에도 절반쯤 자리가 남아 있다.


1층은 노회찬 의원이 생전에 쓰던 물품들을 모아놓고 그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전시 공간이고, 2층은 재단 사무실과 노 의원의 노동운동, 의정활동 기록물을 아카이빙해둔 자료실로 사용된다. 가장 햇빛이 잘 드는 3층은 ‘6411홀’이라 이름 붙은 강당이다. 모임이나 행사 공간이 필요한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부담 없이 쓸 수 있게 할 계획이다. 노회찬재단 사람들은 “노회찬의 집이 노회찬만의 집이 되게 할 생각이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동네 주민과 아이들, 노회찬에게 관심 있는 사람들, 혹은 꼭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편하게 들러서 커피 한잔 마시고 갈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란다. 모이고 어울리는 사람들 속에 노회찬의 꿈도 계속될 것이기에.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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