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가 어쩌다…‘강남 쏘나타’ 씁쓸한 퇴장

김준범 2026. 5. 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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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가 한국에서 짐을 싼다. 올해 말까지만 한국에서 차를 판다고 한다.

2020년 닛산이 철수한 지 6년 만이다. 이제 한국에선 일본 차 '빅3' 중 도요타만 남게 됐다.

달도 차면 기운다 했으니, 어느 기업이든 생로병사는 자연스럽다. 다만, 왕년의 혼다를 기억하는 이들은 느낌이 다를 수 있다. 그 느낌을 좀 더 따라가 보자.

■ 그 많던 '어코드'는 어디로

2000년대 초, 쏘나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라, 한국 차도 괜찮네' 반응이 잦아졌다.

"쏘나타, 이제 어코드에도 안 밀리겠어"

그때, 기준점 중 하나가 혼다 어코드였다. 아주 비싸지도, 아주 싸지도 않은, 그래서 당시 쏘나타도 견줘볼 만한 상대였기 때문이다.

혼다의 '대중적 프리미엄' 전략은 아주 잘 먹혔다. 한때 수입차 1위가 혼다였다.

2008년 혼다는 연간 판매량 '1만 대' 고지를 넘는다. 수입차를 통틀어 첫 기록이었다. 수입차 시장 점유율 20%를 넘겼다. 그해 수입차 판매 1위 차종이 어코드였다.

'외제차는 혼다로 입문하는 거야'라는 말이 나왔고, 어코드가 '강남 쏘나타'라고 불리기도 했던 시절이다.

그즈음, 혼다는 미국서도 날렸다. 도요타 캠리와 혼다 어코드는 미국 내 세단 판매량 1, 2위를 다퉜다. 오디세이는 미국 미니밴 시장을 사실상 장악했다.

혼다 시빅은 세계 시장에서 2,700만 대 이상 팔렸다. 한국 차는 1,500만여 대 팔린 아반떼(수출명 엘란트라)가 최고다.


이후 줄곧 내리막이었다.

아주 비싸지도, 아주 싸지도 않은 건 부메랑이 됐다. 프리미엄도 아니고, 가성비도 별로인 '어중간한' 브랜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혼다는 2025년 회계연도 수조원 대 영업 적자가 유력하다. 실제로 적자를 공시한다면, 1957년 상장한 이후 69년 만의 첫 적자다.

여전히 세계에서 6번째로 차를 많이 파는 거대 완성차 업체가 어쩌다 이렇게 흔들리게 된 걸까.

■ "자동차가 아니라 엔진 회사다"

'기술의 혼다'라는 말이 있다. 아니, 있었다.

엔진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혼다 엔진은 고장 없고, 연비 좋고, 힘 좋기로 유명했다. 전자 제품에 소니가 있다면, 엔진은 단연 혼다라고 했다.

"우리는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엔진 회사다." 혼다는 스스로를 이렇게 규정했다.


혼다 소이치로, 창업주부터 기술 덕후였다.

일왕의 훈장을 받으러 갈 때도 "내 예복은 기름때 묻은 작업복"이라고 고집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혼다 소이치로는 1948년 혼다기연공업을 창업한다. 지금 혼다자동차의 모태다.

전후 일본, 연료도 없고 교통망도 붕괴했다. 사람들은 값싼 탈 것이 필요했다.

자전거에 엔진을 달았다. 군용 발전기 엔진이었다. 1억 대 이상 팔린 대 히트작, 오토바이 '슈퍼 커브'의 모태가 됐다.

국수 배달원이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로 배달통을 들 수 있게 설계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날렵함 그 자체인 모델이었다.

출처 : 혼다 홈페이지


자동차와 오토바이만 만들지 않았다. 잔디깎이·발전기·선외기부터 F1 경주차, 비행기, 로봇까지…엔진으로 돌아가는 건 다 만들었다.

혼다 차가 디자인이 예뻐서 사는 경우는 드물었다. 소비자들은 탄탄한 심장, 엔진을 믿고 샀다.

■ 기술의 혼다, 기술에 갇히다

승자의 저주라고들 한다. 혹은 성공의 덫이라고도 한다. 필름 카메라의 코닥이 디지털카메라를 놓쳤고, 피처폰의 노키아가 스마트폰을 놓쳤다.

혼다도 이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급속한 몰락의 결정적 이유다.

혼다라고 전기차가 미래라는 걸 몰랐을까. 하지만 전기차를 뜯어보자.

전기차의 심장, 배터리는 화학 기업이 만든다. 자율주행은 소프트웨어 기술력에 달렸다. 엔진 기술은 설 곳이 없다.

혁신을 왜 안 했냐고? 혼다도 했다. 무모할 정도로 과감히 나섰다.

2040년까지 완전한 탈 엔진, 전기차 100%로 가겠다고 선언한다. 하이브리드차를 징검다리로 삼는 게 낫지 않냐는 분석이 많았지만, 기술의 혼다가 그까짓 전기차쯤 못 만들겠냐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나 시장 평가는 냉담하다.

올해 들어 혼다는 전기차 '제로(0) 시리즈' 양산 일정에 물음표가 붙었다. 소니와 함께 추진한 전기차 합작 프로젝트도 동력을 잃고 있다. 내년에 북미에 출시하기로 한 자율주행차도 백지화 수순이다.

우왕좌왕의 연속이었다. 승자의 저주, 또는 성공의 덫의 교과서 같은 행보였다.

■ 남은 질문, 오토바이는 왜?

혼다의 마지막 자존심은 오토바이다. 한국은 물론 세계 시장 압도적 1위다. 경쟁자가 없을 정도다.

차는 안 되는데, 오토바이는 되는 이유는 뭘까.

다시 돌고 돌아 '엔진' 때문이다. 오토바이는 여전히 엔진이 핵심이다. 엔진 효율과 내구성, 연비가 중요하다.

혼다의 마지막 믿을 구석도 오토바이다. 자동차 부문 영업이익률이 1%대까지 떨어졌을 때, 오토바이 부문 이익률은 20%에 근접했다.

이미 개발비가 회수된 '숙성된 기술'을 대량 생산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오토바이로 벌어, 자동차를 버티는 회사가 된 혼다. 혹시라도 혼다가 다시 반등한다면, 1등 공신은 분명 오토바이가 될 것이다.

그래픽 권세라, 반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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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범 기자 (jb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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