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고교학점제 1년…선택권 사라지고 ‘입시부담·학습격차’만 키웠다
예산 1217억에 교원 증원까지…재정·인건비 부담도 ‘눈덩이’
과목 세분화·컨설팅 의존 심화…‘부모 정보력’이 성패 좌우
농어촌 과목 개설 한계·세특 경쟁 과열…지역·계층 격차 심화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된 지 1년이 지났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혼란과 부작용이 되레 커지는 모습이다. 해당 제도는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과목 선택권 확대를 핵심으로 설계됐지만, 실제 운영 과정에서는 상대평가에 기반한 대입 제도와 충돌하며 학생의 학업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 여기에 관련 예산만 올해 1200억원 이상이 배정되는 등 해당 제도 도입에 따른 경제적·사회적 비용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모습이다.
1일 교육부가 각 교육청에 배분한 예산안을 살펴 보면 올해 고교 학점제 몫 예산만 총 1217억원에 달한다. 지난해에는 ‘교과교실 운영비’ 항목으로 관련 예산이 1045억원 배정됐지만 올해에는 관련 예산이 ‘고교학점제 운영비’ 항목으로 통합돼 해당 예산만 1년새 총 172억원 늘었다.
여기에 고교학점제에 따른 인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교원을 꾸준히 늘린다는 계획이라 추가 인건비 부담도 상당할 전망이다. 실제 교육부는 올해 중등 신규교사를 전년 대비 30% 가량 늘어난 7147명을 선발하기로 했다. 지난해 초만 해도 4797명의 인력만 충원한다는 계획이었지만 고교 학점제에 따른 인력 확충 요구가 잇따르자 애초 계획 대비 선발 인력을 1.5배 늘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OECD 교육지표 2025’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등 초임 교사의 연봉은 구매력평가환율(PPP) 기준 약 3525만원이라는 점에서, 고교학점제 시행으로 단순 계산시 연간 교원 인건비만 828억원(증원분 2350명 기준) 늘어나는 구조다.
한국교육개발원의 ‘고교학점제 이상과 현실’이라는 보고서 등에 따르면 이 같은 고교학점제 문제는 보다 명확해진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고교 학점제의 핵심 취지인 학업 선택권이 학생의 흥미가 아닌 대입 유불리에 따라 크게 제약받고 있다.
실제 일선 고교 이야기를 종합하면 학생들은 흥미나 적성이 아닌 대입 유불리, 수능 반영 과목 여부, 대학 권장과목 등을 기준으로 고교학점제 과목을 선택 중이다. 대학이 제시한 권장과목이 사실상 필수 과목이 된 셈이다.
교육과정의 세분화 역시 혼란을 키우고 있다. 과목이 지나치게 세분화되면서 학생들 입장에서는 어떤 과목을 선택해야 할 지 판단하기 어려워졌으며 ‘부모의 재력 및 정보력’이 높은 학생일수록 사설 컨설팅 등을 바탕으로 대입에 유리한 커리큘럼 설계가 가능한 구조다.
특히 진로를 결정하기에 아직 어린 10대 중후반의 나이에 평생을 좌우할 대학 전공 선택을 강요하는 구조는 ‘자율전공’을 강조하는 현 대학교육과 정면 충돌한다. ‘중등교육도 고등교육도 모르는 이상주의자들이 설계한 제도가 교육 현장을 망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역 간 학습권 격차도 벌어지고 있다. 농어촌이나 소규모 학교의 경우 교사 수 부족 등으로 과목 개설 자체가 힘들어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이 극히 제한적이다. 공동교육과정이나 온라인 수업이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비대면으로 수업이 진행된 ‘코로나19’ 당시 학생들의 기초역량 저하가 심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역별 교육 격차가 되레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성적 평가 방식 또한 문제다. 고교학점제는 애초 절대평가를 전제로 설계됐지만 현실에서는 상대평가 형태로 운영돼 결국 내신 경쟁만 더욱 치열해졌다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고교학점제 적용을 받는 현 고2 학생부터는 내신 5등급제가 적용돼 ‘한 과목이라도 2등급이 나오면 서울 주요대 수시합격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 중이다. 이 때문에 적성이나 흥미가 아닌 내신 관리용 커리큘럼을 택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지는 모습이다.
고교학점제 시행으로 학생부 중심 평가가 강화된 것 또한 갖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수업 중심 평가가 강화돼 교사 입장에서는 학생을 통제하기 보다 쉬워졌지만,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 관련 경쟁이 과열되며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보고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학생 수준에 맞지 않는 과제 수행 등도 심심찮게 보고되며 결국 고교학점제가 사교육 의존도를 높이고 부모 소득에 따른 학생의 학습격차를 확대시킬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온다.
교육계 관계자는 “고교 학점제는 학생선택권 및 맞춤형 교육 강화라는 지극히 선량한 목적 하에 만들어졌지만, 대학 입시 자체가 상대평가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한계가 명확했다”며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말처럼 결국 이상주의적 교육정책 때문에 학생들의 삶의 질은 꾸준히 추락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양철민 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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