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2899억 올려달라”···전쟁에 하얗게 질린 재건축 조합, 분담금 수억씩 늘듯
“사업성이 높은 강남에서도 힘든데 강북은?”
“올해 100개 사업장 갈등 우려…하반기 갈등 커질 것”
사업 지연때 주택 공급까지 타격

미국과 이란 간 전쟁 장기화로 자재 수급이 막히고 국제유가와 고환율 상황이 더해지면서 공사비 상승이 현실화하고 있다. 일부 단지에선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갈등이 시작되고 올해 하반기엔 수도권 100여곳 사업장에서 갈등이 속출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지연되면 수도권 주택 공급도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 송파구의 마천4구역 재개발조합은 지난달말 시공사인 현대건설로부터 공사비 증액을 요청받았다. 현대건설은 공사비를 기존의 3.3㎡(평)당 584만원에서 959만원으로 높여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총 공사비는 2021년 3834억원에서 5년만에 6733억원으로 2899억원(75.6%) 뛰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공사비를 산출한 2021년 이후에 급변한 건설환경에 따른 물가상승과 올해 초 확정된 설계변경을 반영한 것”이라며 “최근 서울시내 주요 정비사업의 통상적인 평당 공사비에 준하는 수준으로 요청했다”고 말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가 상승이 수 년의 시차를 두고 반영된 셈이다.
최근 경기도 광명시의 광명제9R구역 재개발조합도 롯데건설로부터 공사비 증액 관련 공문을 받았다. ‘전쟁 장기화로 자재 수급 차질이 계속 발생하면 공사비 상승과 공사기간 연장 협의를 적극 검토해 달라’는 취지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당장 공사비를 인상해 달라는 요청은 아니지만, 대외 변수에 의해 공사비 상승 및 공기 지연이 우려돼 발주처에 사전 안내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공사비 상승은 이미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30일 발표한 3월 건설공사비지수(기준연도인 2020년을 100으로 두고 산출)는 134.42로 2월 대비 0.49%상승했다. 이는 1년 전과 비교하면 2.52% 오른 것이다. 2월말 시작된 미·이란 전쟁 여파가 일부 반영된 결과다. 여기에 본격적으로 전쟁 영향이 반영되면 다음달 공사비 상승세는 더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가 이달 전국 현장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여 파악한 내용을 보면, 아파트 공사에 필수적인 레미콘혼화제는 가격이 연초 대비 최대 30% 상승했고, 단열재도 최대 40% 올랐다. 정부는 이날 나온 3월 건설공사비지수를 반영해 올해 하반기 건설공사 표준시장단가를 다음달 8일 공개한다. 공사원가 기준이 되는 표준단가는 통상 4월 말에 공개하는데, 전쟁에 따른 영향을 정확히 반영하기 위해 일주일여 미룬 것이다.
재개발·재건축 조합들에선 우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사업시행인가를 준비 중인 서울 용산구 한 재개발조합 관계자는 “삽을 뜬 조합 곳곳이 시공사에서 공사비 증액을 요청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와 걱정이 크다”며 “공사 원가가 30~40%씩 오른다는데 조합원 분담금이 최소 20%는 오를 것이고, 하반기쯤 되면 조합마다 갈등이 속출할 것 같다”고 말했다.
평당 공사비가 1000만원에 육박하자 조합들에선 ‘사업성이 높은 강남에서도 힘든데 우리가 할 수 있겠느냐’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공사비가 오르면 시공사와 조합 갈등이 불거지고 공사 기간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한편으로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지 않는 수도권 정비사업 지역에선 조합이 부담을 덜기 위해 분양가를 높이는 추세다. 최근 서울 강북 지역에서도 17억~18억원의 ‘고분양가’ 아파트가 연이어 등장하는 배경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재건축을 추진하는 수도권 다수 사업지에서 조합원 추가분담금이 5억원~7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면서 “과거처럼 집을 넓혀가는 것도 아니고 같은 면적의 집을 새로 지으면서 큰 부담을 져야 해 사업 추진을 아예 꺼리는 소유주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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