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얼굴·동선 곳곳서 어색함…점 사라지고 입·음성 어긋나 -배경·크리처는 완성도 높아…귀신·괴물 장면에 관객 반응 -제작비 5억·촬영 4일…AI 활용으로 비용·시간 절감 -구글 AI 기반 ‘파이프라인’ 구축…툴 조합으로 일관성 유지
여배우의 광대 부근에 있는 점이 두 개에서 한 개로 줄었다. 입 모양과 음성이 따로 놀기도 했다. 배우가 입을 다물었는데도 대사가 이어지는가 하면, 여름 복장의 행인들 사이로 흰색 롱패딩을 입은 여성이 도드라져 보이기도 했다.
30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개최된 'CJ ENM 컬처 TALK'를 찾았다. 기자들 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1시간 동안 AI 오컬트 영화 '아파트'가 상영됐다.
CJ ENM 측은 AI와 사람이 함께 제작한 '하이브리드 영화'라는 짧은 소개만 남긴 채 영상을 틀었다.
틀린 그림 찾기 게임하는 심정으로 영화를 감상했다.
어색한 장면이 이따금 포착됐다.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배우 얼굴, 운 지 꽤 지났는데도 문신처럼 남아 있는 눈물 자국, 선크림 한 통을 다 바른 듯 두꺼워 보이는 피부, 짧고 뚱뚱한 문고리, 생겼다 사라지고 다시 생기는 얼굴 점 등이 눈에 걸렸다.
작정하고 찾아낸 '옥의 티'가 그 정도였다. AI가 관여한 영상인 줄 모르고 봤다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아파트'는 영화학과 학생들의 졸업 작품이나 저예산 독립 영화로 느껴졌을 만큼 준수한 수준이었다.
일부 장면은 일반 영화보다 뛰어났다. 특히 귀신은 정말 끔찍해 보였다. 귀신이 튀어나오는 장면에서 몇몇 관람객은 고개를 돌리거나 입을 막았다. 거대한 문어처럼 촉수를 뻗치는 기름 괴물은 배우들과 큰 무리 없이 어우러졌다.
AI가 학습한 데이터에 고양이 사진이 많았는지, 고양이는 실제 고양이 보다 더 고양이 같았다. 극 중 고양이가 아파트 난간을 위태롭게 걸어 다니고 주인공의 길 안내를 하며 철문을 긁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진짜 고양이를 훈련해 촬영했어도 저만큼 잘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연스러웠다.
AI 하이브리드 영화 '아파트(The House)' 속 한 장면 / 사진=CJ ENM
'아파트'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볼 수 있는 주인공 '유미'가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서 기묘하고 섬뜩한 사건과 마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한국형 오컬트·스릴러 AI 영화다.
촬영에는 총 4일이 소요됐다. 제작비는 5억 원이 들었다. 백현정 CJ ENM 콘텐츠이노베이션 담당은 "일반적인 방식으로 제작했다면 최소 5배 이상은 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AI가 어디까지 관여했는지가 주요 관심사였는데, 제작진은 배경 제작에만 AI를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연기는 배우들이 직접 했다. 배우들이 세트장에서 한 연기 장면을 AI가 생성한 배경 위에 덧입히는 방식을 썼다.
제작자가 시나리오를 작성하면 배우가 연기하고, AI가 배경과 크리처를 생성하는 새로운 분업 체계가 형성된 셈이다.
AI 도구로는 주로 구글 엔진이 쓰였다. 이마젠(이미지 생성), 나노 바나나(이미지 보정 및 최적화), 비오(영상 생성 모델) 등이다.
안성민 구글 클라우드 커스터머 엔지니어링 디렉터는 "구글은 하드웨어, 어플, AI 모델, 멀티모달에 최적화된 제품들을 계속 출시하고 있다"며 "이런 제품이 큰 의미가 있긴 하지만 실제로 각각 산업 현장에서 AI를 활용하고 고객과 협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콘텐츠 기업과는 실제 제작 과정에서 구체적인 활용 케이스를 발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CJ ENM은 여러 AI 도구를 섞어서 제작했고, 이를 '파이프라인화'라고 명명했다. 단일 도구에 의존하기 보다 각기 다른 도구의 장점을 조합하는 식으로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것.
이 파이프라인 시스템은 일종의 매뉴얼로 기능한다. 누가 작업하든 균일한 아웃풋을 낸다는 것이 CJ ENM의 AI 전략이다.
백현정 담당은 "AI 툴이 좋아졌지만, 제작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는데, 파이프라인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며 그 파이프라인을 계속해서 발전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CJ ENM은 AI를 중심으로 제작 방식을 전면 개편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제작 과정 안에 AI 기술을 가미하는 방식을 택했다. 대대적인 개편보다 점진적 변화를 지향하는 모습이다.
AI 기술을 배경 생성에만 한정지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CJ ENM은 AI로 배우를 구현하는 데에는 선을 그었다. AI가 인간 배우 고유의 진정성을 구현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
백현정 담당은 "기술과의 협력이 목적이다. 기존 콘텐츠 제작 흐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AI 이용을 극대화하려 한다"고 부연했다. 그것이 기술적 한계 때문인지에 관해서는 말을 아꼈다.
백현정 CJ ENM 콘텐츠이노베이션 담당 / 사진=CJ ENM
AI 제작 방식은 특히 장르물 제작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AI를 활용하면 연인이 커피를 마시는 장면이나 괴물이 나타나 난동을 부리는 장면이나, 동일한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아파트 제작에 투입된 비용은 5억 원에 불과하다. 최근 상업 영화 한 편 당 평균 제작비가 100억 원을 넘어서는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상업 영화 총 제작비는 2016년 89억 6,000만 원에서 2022년 125억 9,000만 원을 기록한 이후 수년 간 100억 원을 상회하고 있다.
물론 영상의 길이와 배우 출연료에 따라 제작 비용은 달라질 수 있다. AI로 인한 비용 절감 효과를 일반화하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비용 측면에서 기존 방식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란 설명이다.
백현정 담당은 "콘텐츠 제작비가 급등하면서 제작사들이 제작 편수를 줄이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AI를 통해 제작 효율을 어떻게 강화할지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장르물은 제작비 부담이 커서 제작이 쉽지 않은데, 이번 시도를 통해 다양한 장르물이 확대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AI 기술은 수익성 확대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CJ ENM의 지난해 영화·드라마 사업 부문 매출은 1조 4,573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1조 7,046억 원) 대비 14.5% 줄어든 수치다.
CJ ENM은 AI를 활용한 다양한 수익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백현정 담당은 "앞으로 저희가 방영하고 활용하는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는 AI를 위한 R&D와 노력들이 가미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며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고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조직으로서 콘텐츠 뿐 아니라 광고 사업에도 전면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AI 버추얼 PPL, AI 중간 광고 등 AI 기반 광고 사업 영역의 고도화를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