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제국은 첫 세계화 이끈 유라시아 연방이었다” [.txt]
전체론적 관점에서 ‘중심-주변부-외부’ 시각 서술
유연성·개방성으로 이룬 대제국…오늘날 시사점 커

한국 학자가 공동 책임 편집자로 기획한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The Cambridge History of the Mongol Empire)’가 우리말 번역서로도 출간됐다. 중앙 유라시아사의 세계적 권위자인 김호동 서울대 명예교수(72)가 2011년 처음 구상을 한 지 15년, 영국에서 원저가 출간(2023년 8월)된 지는 2년8개월 만이다.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출판부가 내는 ‘케임브리지 히스토리’ 시리즈의 하나로, 세계 각국의 몽골사학자 43명이 필진으로 참여한 대작이다. 케임브리지대는 앞서 2015년 출간한 ‘케임브리지 세계사’(우리말 번역서는 2025년 11월, 소와당)와 별개로, 일국사 또는 지역사들을 계속 펴내고 있다. 서구 중심주의 시각과 고대-중세-근대의 단선적 시대 구분을 허물고, 지구촌 전역과 다양한 주제를 아울러 해당 지역의 각 분야 전문가들이 공동 필자로 참여하는 게 특징이다.
케임브리지 히스토리 시리즈 중 한국인 학자가 책임 편집자로 이름을 올린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저는 제1권 ‘역사(History)’와 제2권 ‘사료(Sources)’ 등 두권으로 편찬됐는데, 번역서는 이 중 제1권을 정치사, 주제별 역사, 지역사·외부 역사 등 전 3권으로 분책했다. 지난 28일 오후, 경기 양평군 옥천면의 산자락에 자리 잡은 김 교수의 자택에서 이번 책의 출간 과정과 학술적 의미를 들었다.
“몽골 제국은 워낙 방대한 제국이었던 까닭에 일국사로 다룰 수 없습니다. 그 세계사적 의미를 고려할 때 ‘케임브리지 히스토리 시리즈’로 넣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2011년 미국 하와이주 호놀룰루에서 열린 학회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미할 비란 교수(이스라엘 히브리대)를 만나 ‘몽골 제국사’ 편찬을 제안했지요.” 비란 교수도 적극적으로 동의해 공동 책임 편집자로 참여했다.

그러나 기획 편찬은 처음부터 녹록지 않았고 예상보다 훨씬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다.
“(비란 교수와) 둘이서 출판 제안서를 써서 케임브리지대 출판부에 제출했어요. 책의 취지와 구체적인 목차, 서술 방향, 집필을 위촉할 필자들까지 상세한 계획을 담았습니다. 그 기획서가 케임브리지대 출판부의 심사를 통과해야 출판 계약을 하고 본격적으로 출간이 추진됩니다. 그다음부터는 책임 편집자가 다 하는 거죠.”
김 교수와 비란 교수는 직접 구성한 필진 43명에게 일일이 책의 취지와 구성을 설명했다. 애초 집필 기간은 2년이 주어졌지만 원고를 모두 취합하기까지 4년 가까이 걸렸다. 그다음에는 책임 편집자 2명이 모든 원고를 다 읽고, 의견을 나누고, 필자들에게 “정중하게” 수정 또는 보완 요청을 보냈다. 그렇게 주고받은 이메일이 1500개에서 2000개쯤 될 거라고 했다.
2017년까지 완간하려던 목표도 계속 늦춰졌다. 마침내 최종 정리된 원고를 케임브리지대 출판부에 넘긴 뒤에는 다시 전문가 위원회의 심사를 거쳤다. 출판이 확정된 뒤에는 편집부 쪽에서 깨알 같은 질문과 교열 요청이 날아들었다. 그 모든 과정을 거친 최종 원고가 인쇄에 들어가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렸다.
이번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몽골의 역사를 일국사가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사의 맥락에서 ‘전체론적 관점(holistic view)’으로 해석한 것이다. 기마병을 앞세운 몽골 유목민족의 파괴와 정복의 이미지가 과장된 기존 서사를 바꿔, 문명 교류와 융합을 촉진하고 인류사 최초의 세계화 시대를 연 제국으로 재평가했다.
김호동 교수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는 세계사상 ‘몽골의 시대’(1206~1368)를 다루고 있다. 칭기즈칸의 등장부터 1368년 대칸이 중국에서 철수한 시기까지다. 책은 이 시간을 두 시기로 구분했다. 첫째는 통일 몽골 제국 시대(1206~1260)로, 끊임없이 팽창하는 정치체가 몽골을 중심으로 새로 정복한 영토를 다스린 시기다. 둘째는 ‘몽골 연방’ 시기로, 칭기즈칸의 후손들이 중국, 페르시아, 중앙아시아, 볼가 지역에 4개의 지역 단위 제국(울루스)을 탄생시켰다.” 울루스 칸(뒷날 대원제국), 일한국(훌레구 울루스), 차가타이한국(차가타이 울루스), 킵차크한국(주치 울루스)이 그것이다.

김 교수는 최근 30년 동안 학계에선 몽골 제국을 하나의 시스템이자 전체로 보려는 경향이 뚜렷해졌고 상당한 연구 성과가 축적됐다고 했다. “몽골 제국이라는 광대한 틀 속에서 인적 교류, 문화 교류, 물자의 이동이 활발히 이뤄졌습니다. 그걸 봐야 몽골 제국이 13~14세기에 세계사 차원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후대에 어떤 유산을 남겼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몽골 제국을 하나의 ‘유라시아 시스템’으로 본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기존에는 몽골 제국을 하나의 전체가 아니라 1260년대를 기점으로 4대 칸국 체제로 분열됐다고 봤습니다. 학자들도 주로 자기가 아는 언어권의 울루스만 연구했는데 그 성과가 교류되지도 않았어요. 일종의 연구 분업인데, 그런 방식이 결국은 몽골 제국사를 파편화하고, 전체적이고 올바른 이해를 가로막았지요. 이번 책에선 그것을 분열이 아니라 연방체제로의 이행이라는 걸 명확히 했습니다.” 1259년 대칸 몽케가 남송 원정 중 후계자 지명 없이 사망하면서 제위 계승 전쟁이 벌어졌고, 그 결과 단일 제국 체제가 여러 울루스들의 연방 체제로 넘어갔지만, 여전히 대칸은 정점에서 유라시아 전체를 통합하는 권위와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몽골사를 ‘전체론적 관점’에서 보기 위해, 문헌 자료가 가장 많은 중국의 한문과 이란의 페르시아어를 연구자들이 반드시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결된 세계’라는 관점은 매력적이지만, 제국은 그 속성상 힘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그 반대편에는 피정복 집단이 있다. 제국적 네트워크에 초점을 맞춘 서술이 폭력과 식민지 지배의 문제를 희석시킬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김 교수는 “그건 매우 민감한 문제”라며 “역사가가 자료를 보고 해석할 때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답했다.
“통상 역사가는 자기가 연구하는 대상을 지나치게 우호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역사 인물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인물을 연구하다 보면 애증이 교차하게 되는데, 그 사람의 명백히 부정적인 측면까지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곤란하지요. 몽골 제국도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측면은 그것대로 분명히 얘기를 해야 하고, 반면에 긍정적 측면을 과장하거나 깎아내려서도 안 되지요. 다양한 면모를 객관적을 봐야 하는데, 연구자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이번 책이 ‘지역사: 가장자리에서 본 세계’와 ‘외부 역사: 몽골과 정복되지 않은 지역과의 관계’(원저 제1권 3·4부, 번역서 제3권)를 비중 있게 서술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김 교수는 “몽골 제국을 유라시아 네트워크라는 관점으로 볼 때, 그게 균일한 전체가 아니라 중심-주변부-외부라는 층위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원국을 중심으로 통합력이 강력한 4대 울루스, 제국에 복속됐지만 어느 정도 정치적 자립성을 유지하고 있었던 지역(고려, 조지아와 캅카스, 루스 공국, 시베리아 등), 그리고 몽골 제국에 정치적으로 복속되지 않았지만 그 영향권에 있었던 인도, 유럽, 이집트, 아랍·중동 등을 동심원처럼 나눠서 살펴보면, 그 전체가 몽골 제국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몽골에 복속되지 않았던 유럽도 문물 교류와 교역로의 혜택을 누리며 대항해 시대를 열고 중세에서 근세로 옮겨갈 수 있었던 게, 몽골 제국이 형성한 ‘유라시아 네트워크’의 특징”이라고 했다.

이런 해석은 우리 고려사 연구에도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이전에는 몽골 제국을 송-원-명으로 이어지는 중국 왕조사의 일부로 봤습니다. 그래서 고려-몽골 관계도 한반도에 있는 왕조와 중원에 있는 왕조와의 한-중 관계사로 환원해 서술했어요. 그런데 ‘몽골 제국=유라시아 제국’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많은 것이 달라져요. 고려는 몽골에 30년가량 저항하다 결국 무릎을 꿇은 뒤에도 독립적 행정과 왕위 계승권을 유지한 왕국인 동시에 몽골 제국의 복속국이라는 이중 지위를 가졌습니다.” 이는 몽골이 점령지 영토에 대한 왕족의 직접 통치와 현지인 자치 허용을 병행한 통치 방식의 하나였다.
몽골 제국의 전성기는 뒷날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 몽골의 평화)라고 불릴 만큼 융성했다. 그러나 역사상 ‘영원한 제국’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테다. ‘팍스 브리태니커’(대영제국 시기)에 이어 한때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했던 미국의 패권이 21세기 들어 적잖이 흔들리며 국제사회의 ‘규칙 기반 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 힘의 다극화, 부와 권력의 극단적 양극화, 고삐 풀린 폭력과 전쟁, 보편적 가치에 대한 의심과 냉소가 팽배하다. 몽골 제국의 흥망성쇠는 오늘날 세계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
김 교수는 몽골 제국을 건설한 사람들, 다시 말해 13세기 몽골 인구가 불과 50만~70만명이었고 문화적 수준이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최소 한세기 넘게 대제국을 꾸릴 수 있었던 것은 ‘유연성’과 ‘개방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몽골 제국은 남의 문물을 수용했고, 복속국의 종교도 이슬람이든 불교든 기독교든 다 인정했어요. 유럽이 중세뿐 아니라 근대 제국주의 시절에도 자기 문명에 대한 우월감과 타자에 대한 배타적 멸시가 있었다면, 몽골 사람들에겐 그것이 없었습니다. 광대한 대제국의 건설과 통치를 가능하게 했던 개방성과 유연성은 오늘날 더욱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김 교수는 ‘케임브리지 몽골 제국사’에 썼던 한 챕터인 ‘몽골의 제국적 제도’(원저 제1권 제2장, 번역서 제2권 제1장)를 더 풍부하고 깊게 확장해 내년에 단행본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몽골 제국을 하나의 전체로 볼 때, 정치·경제·문화 등 주요 분야에서 몽골적인 기원을 가진 제도가 다른 여러 울루스들로 어떻게 확산하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추적한 후속 연구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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