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 성과급, 소부장 협력사 직원은 2년 일해야 번다

장우정 기자 2026. 5. 1.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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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탈감 커지는 반도체 협력사들
삼성전자가 노동조합의 파업을 막아달라며 법원에 제출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의 첫 심리가 열린 지난달 29일 경기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민경권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 대표가 파업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우리 연봉 2년 치보다 많은 금액을 한 번에 보너스로 받는다니 ‘남의 나라 얘기’인 걸로 여기면서도 다들 일손이 안 잡히는 분위기죠.”(반도체 장비 협력사 관계자)

SK하이닉스가 향후 10년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쓰기로 하고, 삼성전자 노조가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요구하며 총파업을 예고하는 등 대규모 보상 이슈가 반도체 산업을 넘어 사회 전체를 달구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협력사 직원들의 감정은 낙수효과에 대한 기대보다 박탈감에 가깝다. 한 반도체 장비 협력사 관계자는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수주 증가, 그리고 언젠가 연봉이 오르지 않겠냐는 막연한 기대뿐”이라고 했다.

조선일보가 지난해 매출 3000억원 이상 반도체 협력사 상장사 41곳을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의 지난해 직원 평균 연봉은 약 7600만원이었다. SK하이닉스가 직원 1인당 지급한 평균 성과급 1억4000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SK하이닉스의 이번 성과급은 협력사인 두산테스나 직원 연봉의 2.5년치, 엠케이전자 2.3년치, 한미반도체 2.2년치에 해당한다. 같은 반도체 산업 안에서, 어느 회사에 적을 두고 있느냐 여부가 수년 치 보상의 격차를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협력사 대부분은 별도 현금 성과급 제도가 없거나 있더라도 상한선이 존재한다. 영업이익을 많이 내는 곳조차 비정기적 자사주 지급으로 대체하거나, 연봉 인상·직급 승진이 보상의 전부인 경우가 많다. 협력사 직원의 보상은 결국 연봉 하나로 수렴되는 구조다.

그래픽=김성규

◇협력사들 ‘낙수효과’보다 ‘소외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떠받치는 협력사 생태계 안에서도 양극화가 뚜렷하다. 41개 협력사 가운데 두 자릿수 임금 인상을 단행한 곳은 13곳(31.7%)에 그쳤다. 이 중 30% 이상 오른 곳은 솔브레인·리노공업·엘티씨 등 3곳뿐이었다. 나머지 28곳은 한 자릿수 인상(20곳)에 그치거나 동결(3곳)·삭감(5곳)된 것으로 나타났다.

HBM(고대역폭메모리) 양산에 필수적인 증착 장비나 핵심 소재를 공급하는 협력사들은 호황의 과실을 직원 급여로 나눌 여력이 생겼다. 영업이익률 14.5%인 솔브레인은 평균 연봉이 31%(7100만→9300만원) 올랐고, 리노공업은 30.3%(8988만→1억1707만원), 테스는 28%(1억→1억2800만원) 각각 뛰었다.

반면 소모성 부품이나 범용 공정을 맡은 업체들은 연봉이 오히려 뒷걸음질했다. 본딩 와이어를 만드는 엠케이전자는 연봉이 1.8%(6240만→6125만원) 줄었고, 시스템반도체 후공정 테스트 업체 두산테스나도 임금이 삭감됐다. 이들에게 ‘반도체 수퍼 호황’은 먼 얘기다. 한 반도체 부품 업체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매출이 100 늘어나면 소부장에 내려오는 건 20 정도이고, 수많은 기업이 이를 쪼개 나눠야 한다”고 했다.

◇박탈감이 인재 유출로…“생태계 경쟁력 약화” 우려

협력사의 우수 인재들 사이에서는 낙담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같은 반도체 공급망 안에서 밤을 새워 기술을 갈고닦아도, 어느 회사에 입사했느냐는 선택 하나가 수억원의 보상 격차를 결정짓는 현실 때문이다. 이 같은 박탈감은 인력 이탈로 가시화되고 있다. 복수의 협력사 관계자들은 “대체 불가능한 소재·장비 기술을 보유한 엔지니어들이 대기업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은 “특히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본격 가동하는 시점에는 협력사의 핵심 인력들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로 대거 빠져나가는 인재 블랙홀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보상 격차와 인력 이탈이 국내 반도체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아무리 앞서 나가도, 두 거대 기업을 뒷받침할 소부장 생태계의 연구개발과 생산 역량이 고갈되면 공급망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건재 IBK투자증권 코스닥리서치센터장은 “기술 인력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산업 특성상 단기 성과 중심의 보상 경쟁은 협력사 핵심 인력 이탈과 생태계 내 인력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협력사의 R&D 투자가 약화되면 결국 공급망 전반의 기술이 흔들리고, 이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경쟁력 약화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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