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나는 선생입니다

최미화 기자 2026. 5. 1.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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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이다.

나의 지인 중에 박 선생이 있다.

박 선생이 이렇게 공부를 도와준 것은 지역 내 중학교에 수석 합격하면 전액 장학생으로 공부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선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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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호(대구문학관장)
하청호(대구문학관장)

오월이다. 각종 기념일이 촘촘히 박혀있는 달이다. 그중에서도 15일 '스승의 날'이 가슴에 와닿는다. 스승이라는 말 속에는 우리의 학창 시절이 있고, 또한 신뢰하고 존경하는 스승의 인자한 얼굴도 있다.
플루타르코스(Plutarchos) 영웅전에는 '부모로부터는 생명을 받았으나 스승으로부터는 생명을 보람 있게 하는 것을 배웠다.' 했다.
그의 말처럼 우리의 지식과 지혜, 삶의 가치관을 배운 것은 스승이었다. 그런데 '스승의 날'이 예전 같지 않다. 학교 현장은 스승과 제자 사이의 존경과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언론에 노출되는 스승에 대한 언어 및 신체적 폭행, 학부모들의 교권 무시와 정서적 학대 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나의 지인 중에 박 선생이 있다. 그는 40여 년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는 60년대 중반, 농촌 학교에서 있었던 일화를 내게 얘기했다. 제자 중에 L 양이 있었다. 그 아이는 공부를 잘했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였다(당시에는 중학교 입학시험이 있었음). 박 선생은 그에게 용기를 주고, 방과 후 특별 지도를 하여 지역 내 사립중학교에 수석으로 합격시켰다. 박 선생이 이렇게 공부를 도와준 것은 지역 내 중학교에 수석 합격하면 전액 장학생으로 공부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L 양과는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이어간다고 했다.

선생은 아이들의 온갖 사연에 가슴이 새카맣게 탄다고 한다. 그만큼 인내하고 용서하고 사랑을 베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스승 J.H 페스탈로치는 '인내심을 가지지 않으면 선생으로서는 낙제다. 애정과 기쁨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했다. 선생의 무게감을 짐작하고도 남는 말이다.

다시 오랜 교육자의 삶을 살아온 최 선생의 일화를 소개한다. 그 역시 젊은 시절에 농촌의 읍소재지인 S 학교에서 4년 남짓 근무했다.
70년대 초였다. 그는 교실에서 낡은 만년필로 다양한 업무를 보았다. 만년필은 너무 오래되어 펜의 촉을 덮는 분홍빛 덮개가 깨어져 스카치테이프로 둘둘 감아 사용했다. 세월이 흘러 최 선생은 대구로 전입하여 교직 생활을 보람 있게 마무리하였다. 그가 정년 퇴임을 한 2006년 '스승의 날'이었다. 당시 제자였던 K 군에게 저녁 식사를 초대받았다. 식사를 마치고 난 후 그는 정성스레 포장된 물건을 내게 주었다. 일찍 드리고 싶었지만, 지금이라도 드리게 되어서 기쁘다고 했다. 포장을 풀어보니 값비싼 몽블랑 만년필이었다. 깜짝 놀라며 만년필을 자세히 보니 은색 뚜껑에 최 선생의 이름이 영문으로 새겨져 있었다.
K 군은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깨어진 만년필을 쓰는 것을 보고, 언젠가 커서 돈을 벌면 꼭 좋은 만년필을 사 드리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최 선생은 만년필보다 오랫동안 선생을 잊지 않은 제자의 마음에 가슴이 울컥했다고 회상했다.

나는 생각했다. 무엇이 선생과 아이들이 서로를 잊지 못하는가. 그것은 선생의 지순한 제자 사랑과, 그것에 감동한 제자들의 선생에 대한 존경심이 아닐까! 그동안 세상은 변하고 학생도, 학부모도, 시민의식도 변했다. 그렇지만 학교는 최상의 배움터로 제 자리를 찾아야 한다. 며칠 전 젊은 선생 한 분이 내게 한 말에 아직 희망을 품는다. '그래도 나는 선생입니다.'

하청호(대구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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