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밥 잘해주는 선생님
학생들에게 밥을 해줄 때가 있다. 많게는 2주에 한 번, 적게는 한 달에 한 번. 스물아홉 명 전교생을 위해 음식을 만든다. 메뉴는 떡볶이, 어묵, 소떡소떡, 햄치즈토스트, 핫도그 등 그때그때 다르다. 대단한 솜씨도, 특별한 메뉴도 없지만 ‘식구(食口)’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함께 같은 음식을 나눠 먹는다는 건 같은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뜻이다. 그 반대도 된다.
코로나 시기가 계기였다. 팬데믹 이후 다시 만난 아이들은 달라져 있었다. 학교로부터 멀리 떨어져 지낸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아이들은 홀로 보내는 일상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았다.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는 학교의 일상을 왠지 서먹해했고, 소속감도 희미해진 듯했다. 사람은 ‘나’를 정의하는 소속이 사라지면 자존감까지 낮아질 수 있다. 힘들게 견뎠던 그 시간이 인류를 가시 세우고 웅크리는 고슴도치로 만들었는지, 코로나가 끝나고 몇 해가 지났건만 아이들 놀이터는 여전히 소셜미디어다.
사람이 모였을 때 먹는 것은 중요하다. 예수님은 설교가 끝나면 기적까지 동원해서 빵과 물고기로 수천 명을 먹이셨고, 부처님 계신 절에선 지금도 공양을 아끼지 않는다. 먹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죽일 듯 싸우던 병사들을 어울려 놀게 한 비결은 “뭘 좀 많이 멕여야지 뭐” 하던 촌장의 말에 담겨 있었다.
웃으며 음식을 나눠주면서 아이들 얼굴을 유심히 살피곤 한다. ‘아이들이 이 음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으면…’ 하고 항상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내가 꼭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구나’ 하는 마음이 자존감을 싹틔울 거라 생각한다. 또 모두가 같은 음식을 들고 웃으며 먹는 경험이 반복되면 이곳을 안전한 울타리로 여길 거라 믿었다. 매일 교실에서, 복도에서, 급식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부대끼는 평범한 선생님들의 하루하루도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내 마음이 얼마나 가닿았을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래도 학생들 마음에 작은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오후에도 동네 식자재 마트로 간다. 어쩐지 냉장고 속에 진열된 재료들이 고슴도치를 인간으로 되돌리는 묘약(妙藥)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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