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대는 모차르트, 공포의 레닌그라드… ‘클래식 축제’의 야성을 깨우다

아르떼 2026. 5. 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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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
VFCO가 일깨운 축제의 야성
우렁찬 금관의 진격, 대구시향
끊어진 현도 못 막은 열정, 광주시향

국내 교향악단의 현주소를 한눈에 조망하는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가 올해도 어김없이 열렸다. 총 20개 오케스트라가 참여했고, 전국 악단의 60% 이상이 무대에 섰다. 한국 교향악의 성장과 과제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던 올해 축제, 세 공연을 직접 다녀왔다.

교향악축제는 국내 오케스트라들의 전반적인 수준 향상과 실력을 과시할 수 있는 의욕적인 프로그래밍에 힘입어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협연자 또한 라이징 스타나 해외 무대에서 활약 중인 젊은 연주자 중심으로 구성되면서 티켓판매도 호조다.

서울 무대에 설 기회가 드문 지방 교향악단에게 이 축제는 연중 가장 큰 행사다. 이들은 완성도 높은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 평소보다 훨씬 많은 리허설을 거치는 것은 물론, 대개 지역에서 사전 연주회를 가진 뒤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다.

○ VFCO가 일깨운 축제의 야성

올해의 라인업 중 예외적인 단체는 해외 악단인 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VFCO, 지휘 가보르 터카치 너지)였다. 교향악축제에 해외 악단이 오른 것은 홍콩 필하모닉(2017), 대만 국가교향악단(2018), 중국 국가대극원 오케스트라(2019)에 이어 네 번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축소형인 비상근 단체다.

첫 곡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시작부터 음악은 꿈틀거렸다. 피아니시모부터 포르티시모까지 순식간에 오르내렸다. 터카치 너지의 해석이나 지휘는 2023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와 내한했던 동향의 아담 피셰르를 연상시켰다. 다만 VFCO는 각 섹션 내 음정·음색·보잉의 동질성이 떨어져 '하나의 악기'처럼 들리게 하는 데까진 이르지 못했다. 일부 목금관 악기도 개성이 부족하거나 실수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이를 커버한 것은 열정적인 지휘와 이를 육화하려는 단원들의 노력이었다. 2악장에서 저음 현악기들은 육중한 힘을 드러내 마치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을 듣는 것처럼 느껴졌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 라파우 블레하츠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협연도 관심거리였다. 블레하츠의 피아노는 요즘 쉽게 볼 수 있는 압도적인 파워와 기량을 과시하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게 되고, 그러다가 빠져드는 연주였다. 특히 이 곡에 사색적 성격을 부여한 것은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겠지만 보기 드문 일이었다. 2악장에서도 블레하츠는 내향형 인간의 단단한 속을 보여주는 듯했다. 악단과의 호흡만 약간 아쉬웠다.

후반부 베토벤 교향곡 7번. 이 곡의 약동하는 힘을 작은 오케스트라가 큰 콘서트홀에서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접근방식은 전반부와 같았으나 다이내믹과 최고 볼륨이 더 컸다. 3악장부터 지휘자는 빠른 템포로 단원들을 독려하며 직진했고 4악장은 ‘이보다 더 빠른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빨랐다. 앙상블은 조금씩 흐트러졌지만 그게 특별히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관객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리는 축제, 바쿠스의 주연(酒宴)을 원했다. 신나게 세 곡의 앙코르까지 선사한 그들은 ‘축제’ 오케스트라였고, 교향악‘축제’에 무척 어울렸다.

○ 우렁찬 금관의 진격, 대구시향의 뚝심

4월 10일 대구시향은 대편성 관현악으로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5번과 관현악곡을 들려주었다. 오페라 ‘전쟁과 평화’의 서곡은 교향곡을 위한 워밍업이었다. 시작부터 금관은 우렁찼고, 특히 트럼펫은 날카롭게 귀를 자극했다. 백진현 지휘자는 자극적이고도 무게 있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교향곡을 기대하게 만드는 연주였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5번은 지나 바카우어 콩쿠르에서 우승한 선율의 협연이었다. 3분 가까운 서주만 들어도 악단의 모차르트 해석은 짐작할 수 있는데 VFCO와 비교가 되어 더욱 밋밋했다. 다만 제1바이올린의 음정과 음색은 비교적 잘 통일되어 있었다. 선율의 피아노는 또랑또랑했지만 모차르트의 후기 협주곡인 만큼 과감함과 상상력이 더 필요했다. 앙코르로 연주한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 ‘도깨비불’이 훨씬 그에게 어울렸다. 다른 곡으로 만나보고 싶은 연주였다.

예상대로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5번은 많은 연습의 흔적이 역력했고 단원들도 자신감이 넘쳤다. 트럼펫 수석이 시종일관 돋보였고, 팀파니, 호른, 튜바, 제1바이올린 등이 제 역할을 했다. 리듬이 돋보이는 2악장에서는 클라리넷은 물론이고 호른, 트럼펫, 타악기 등이 분전했다. 후반부의 아첼레란도와 육중한 마무리는 흥분을 자아냈다. 점점 깊어지다가 거의 파국에 이르고 되살아나는 3악장을 거쳐 4악장에서는 점점 희극이 지나쳐 클라이맥스에 이르고 마무리되는 면모도 잘 살렸지만, 다소 둔중하게 느껴졌다. 호평을 받을 만한 연주였지만 객석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 끊어진 현도 막지 못한 열정, 광주시향

반면, 4월 12일 광주시향(지휘 이병욱)의 공연은 객석이 가득 찼다. 현악기만 각 섹션당 2명씩 더, 호른 8명·트럼펫 6명·트롬본 6명 등 총 110명이 넘는 전례 없는 대편성이었다.

소프라노 홍혜란이 베르크의 '일곱 개의 초기 가곡'을 풍부한 표현력으로 노래한 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가 시작됐다. 이병욱의 지휘는 호쾌했고 장악력이 높았다. 이른바 침공 장면에서 스네어 드럼의 피아니시시모 리듬부터 끝을 모르고 커지는 공격적인 음향은 그 자체로 공포스러웠다. 그 과정에서 악장의 바이올린 줄이 끊어져 연쇄적으로 뒷사람의 악기를 받고 악장의 악기는 뒤로 건네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3악장 후반부부터 4악장 빌드업까지 긴 시간 동안 뚝심 있게 밀고 나간 끝에 포르티시시모로 마무리하며 즉각적인 환호를 받았다.

○ K-금관의 도약과 러시아 편중

국내 악단 두 곳만 보면, 전반적으로 금관악기 섹션은 크게 발전했다. 예전에 종종 볼 수 있던 외국인(주로 동구권 출신) 수석 하나 없이 한국인 단원들만으로 꾸려진 금관 섹션이 프로코피예프나 쇼스타코비치를 소화해 낸 것은 괄목할 만한 성과다. 대구시향의 호른 섹션은 어시스턴트를 제외하면 4명 모두 여성이었던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하지만 두 악단 모두 목관 솔로는 종종 불안했고 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바순 수석 간 밸런스는 아쉬움이 남았다.

또한, 프로그램 책자에 있는 단원 명단을 보니 지방 악단은 상당수가 객원단원이었다. 기본적인 정원이 상당히 적은 데에다 그나마도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수한 연주자는 계속 배출되고 있는데 국내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는 현실은 어떻게든 개선이 필요하다.

올해 축제 전체를 놓고 보면 러시아 레퍼토리의 편중이 두드러졌다. 20개 악단 중 10개가 후반부에 러시아 작곡가 작품을 선택했다. 최근 국내 음악계에서 특히 쇼스타코비치가 말러 이후의 레퍼토리로 정착하면서 러시아 편중은 지속되고 있다. 조금이라도 비중 조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VFCO가 보여준 것도 되새길 만하다. 적은 인원으로도 기개는 콘서트홀을 가득 채웠고 지휘자의 수많은 요청에도 즐겁게 공연에 임했다. 많은 연습으로 훌륭한 공연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그 이상을 우리 악단들에게도 기대하는 것은 과한 일일까.

양창섭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