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은 어차피 떠날 사람?…한국을 더 널리 알리는 게 꿈이 됐어요[희망이음 함께하는 내일]

손우성·윤기은 기자 2026. 4. 30.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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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삼성 공동 캠페인
중도입국청소년 예솔·나린의 소망
중도입국청소년 임예솔씨가 지난 2월27일 경기 안산시 안산글로벌다문화센터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zenism@kyunghyang.com

‘11세에 한국행’ 러시아 출생 임예솔씨
한국말 서툴 때 보듬어준 선생님
대학 진학 설득해준 청소년센터
따뜻한 관심, 성장기에 큰 버팀목
예멘서 12년 살다가 난민 신청 안나린씨
안전한 삶 찾아 한국에 온 가족들
비자 문제로 취업 막히는 등 열악
유튜버로 활동 ‘K컬처 해외 전파’

임예솔씨(21)와 안나린씨(24)는 중도입국청소년이다. 러시아 국적자이자 고려인인 임씨는 2016년, 예멘이 국적인 안씨는 2014년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왔다. 임씨의 아버지는 러시아, 어머니는 우즈베키스탄 국적을 갖고 있다. 안씨의 부모는 모두 예멘 국적자다.

보통 다문화청소년이라고 부르는 ‘국내 출생 국제결혼가정 자녀’는 2008년 다문화가족지원법 제정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전국에 다문화가족센터가 세워졌고, 3년 주기로 진행되는 다문화가정 실태 조사를 통해 정확한 지원 근거를 마련했다.

특히 다문화청소년은 부모 가운데 한 명은 한국인이고 본인 또한 한국 국적자이기 때문에 사회 수용성이 높은 편이다.

반면 중도입국청소년을 비롯한 외국인가정 자녀에 관한 관심은 비교적 떨어진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는 외국인·동포 부부와 그 자녀, 난민 신청자 등의 이주민이 법률상 다문화가족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와 학계에선 국내·국외 출생 국제결혼가정 자녀, 국내·국외 외국인가정 자녀, 탈북청소년 등을 모두 포함한 개념인 ‘이주배경청소년’이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청소년복지지원법은 다문화청소년과 그밖에 국내로 이주해 사회 적응 및 학업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을 이주배경청소년이라고 칭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이주배경 인구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24세 이하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은 73만8029명으로 집계됐다. 2023년(68만3886명)보다 7.9% 증가한 수치다. 전체 이주배경 인구의 27.2%를 차지할 만큼 규모가 커졌다.

현장에선 아직은 생소한 이주배경청소년의 존재를 알리고 이들의 안정적인 정착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또한 이주배경청소년을 사회구성원으로 인정하는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가장 큰 장벽, 한국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2005년 태어난 임씨는 2016년 11세 때 한국에 왔다. 경기 안산시 원곡초등학교 4학년생이 된 임씨는 한국어를 전혀 못해 고초를 겪었다.

임씨는 “친구들과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 먼저 다가갈 수가 없었다”며 “입을 열면 사람들이 비웃을까 봐 두려웠다”고 했다. 임씨는 “적응을 위해선 가장 먼저 한국어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12년간 살았던 예멘 수도 사나를 떠나 2014년 한국에 들어온 안씨도 사정은 비슷했다. 인천외국인지원센터에서 6개월간 한국어 교육을 받은 뒤 이듬해 경기 파주시 한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어눌한 한국말 탓에 따돌림을 당했다. 안씨는 “중학생일 땐 한국어가 원활하지 않아 친구가 없었다”며 “예멘에서 함께 온 친오빠, 친언니하고만 밥을 먹었다”고 했다.

수업을 따라가기에도 역부족이었다. 안씨는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수학 시간은 고역이었다”고 밝혔다.

부모 중 한 명이 한국인이고 태어나자마자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을 받는 다문화청소년과 달리 임씨, 안씨와 같은 중도입국청소년에게 한국어는 사회 적응의 가장 큰 장벽이다.

임씨와 안씨 모두 학교와 교육센터 등 지역사회 도움으로 한국어 실력을 키웠다. 임씨는 “초등학교에서 이주배경청소년을 위한 한국어 초급반을 만들어줬다”며 “국어 시간에 우리는 수업을 듣지 않고 별도의 반에서 ‘가나다’부터 배웠다”고 설명했다.

안씨는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이 민간기관에 위탁해 운영하는 ‘레인보우스쿨’에서 2020년 한국어 수업을 들었다. 경기 광주시 너른골외국인교육센터에서 당시 안씨를 지도한 문성도씨는 “나린이가 센터에 왔을 땐 기본적인 대화만 할 수 있었다”며 “학문적인 대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실력을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곧 떠날 사람’이라는 편견

언어 장벽만큼이나 “곧 떠날 사람”이라는 편견 어린 시선은 이주배경청소년의 사회 적응을 방해하는 큰 요인이다. 안산에서 만난 한 기관 관계자는 “다양한 이주배경청소년 지원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어차피 태어난 곳으로 돌아갈 아이들을 왜 도와줘야 하느냐’는 비판을 받곤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씨는 “한 번도 러시아로 돌아가겠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고 밝혔다. 안씨도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2021년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이 발표한 이주배경청소년실태조사에서 향후 한국 거주 희망 여부를 물어보니, 국내 출생 외국인가정 자녀의 67.5%, 국외 출생 외국인가정 자녀의 57.9%가 “그렇다”고 답했다. 앞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할 계획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엔 국내 출생 외국인가정 자녀의 46.8%, 국외 출생 외국인가정 자녀의 32.4%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다”는 비율은 각각 11.1%, 18.9%였다.

비자와 체류 자격 등의 문제로 장기적인 정착 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임씨는 최근 재학 중인 중앙대 근처에서 원룸을 구하려 했지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여러 차례 계약을 거절당했다. 임씨는 “우리가 언제라도 한국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난민 신청자’ 신분으로 한국에 들어온 안씨의 상황은 더 열악하다. 안씨는 “비자 문제로 아르바이트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며 “부모님이 7남매를 돌봐야 하는데 매번 생활비를 요청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문성도씨는 “나린이뿐 아니라 많은 이주배경청소년이 신분 불안정 탓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꿈을 꾸는 아이들

임씨 부모는 4남매의 미래를 위해 한국행을 결심했다. 특히 임씨의 아버지는 모스크바에서 운영하던 개인 사업체를 모두 정리하고 한국으로 향했다.

임씨는 “러시아에선 좋은 대학에 가려면 돈이 많아야 한다”며 “형편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은 나와 동생들이 한국에 가야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부모를 원망했다. 임씨는 “한국에 온 이후 아버지는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공장 청소 같은 힘든 일을 했다”며 “한국에서 얻은 첫 번째 집이 지하였는데,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자괴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지만 임씨는 특성화고교인 안산디자인문화고 공연콘텐츠과에 진학하며 꿈을 가꿔 나갔다. 비록 고3 졸업 공연을 앞두고 갑상샘에 혹이 생기면서 가수가 되려던 목표는 잠시 접었지만 비영리 단체에서 댄스 강사로 활동하는 등 관련 분야에서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는 중앙대에서 러시아어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임씨는 “한국인과 고려인을 문화로 연결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임씨는 지금도 각종 고려인 문화행사 진행을 맡고 있다.

한편 안씨의 가족은 ‘안전한 삶’을 위해 한국을 택했다.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예멘 내전과 불안정한 정치 상황, 여성이 보호받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가 한국행을 결심하게 했다. 안씨는 “예멘에선 여자가 혼자 밖에 나가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며 “예멘에 계속 살았더라면 나는 죽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톨릭대 미디어기술콘텐츠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안씨의 꿈은 유튜버다. 이미 구독자 28만명을 가진 ‘나린스타일(Narin Style)’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아랍인을 대상으로 한국 생활을 공유하는 브이로그 영상을 주로 올린다. 안씨는 “아랍인들에게 한국의 멋진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 사람 모두 K팝 마니아기도 하다. 임씨는 세븐틴과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안씨는 빅뱅의 팬이다. 이들은 SNS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K팝을 비롯한 한국 문화 알리기에도 힘쓰고 있다.

관심이 아이들을 살린다

임씨는 10년 전 만난 초등학교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을 아직도 잊지 않는다. 임씨는 “담임선생님은 한국말이 서툰 나를 위해 칠판에 그림을 그려가면서까지 필요한 건 없는지, 불편한 부분은 없는지 물어봤다”며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안산시글로벌청소년센터 도움도 컸다. 임씨는 “원래는 대학에 가지 않으려 했는데 센터에서 상담받고 생각을 바꿨다”며 “대학에 가서 인생을 즐겨보라는 선생님들 조언이 힘이 됐다”고 했다. 2024년 한 해 안산시글로벌청소년센터를 방문한 이주배경청소년은 2504명에 달한다.

안씨의 이름인 ‘나린’은 중학교 교감선생님이 ‘하늘에서 내린 여자’라는 뜻을 담아 지어줬다. 안씨는 힘이 들 때마다 자신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며 힘을 낸다고 말했다.

레인보우스쿨과 너른골외국인교육센터는 안씨의 한국 생활에 버팀목이 됐다. 안씨는 “센터에서 한국어를 공부한 뒤 자신감을 얻었다”며 “고등학교에선 더 이상 따돌림을 당하지 않았고 인기도 많았다”고 했다.

임씨와 안씨는 이제 다른 이주배경청소년을 돕는 데 앞장서고 있다. 임씨는 고려인청소년청년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며 후배 고려인에게 진학상담 등의 도움을 주고 있다. 안씨도 너른골외국인교육센터를 종종 방문해 한국말이 서툰 학생들의 말동무가 돼준다.

전문가들은 이주배경청소년을 향한 관심과 지원이 결국 한국 사회에도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이주배경청소년 실태조사 보고서는 “이주배경청소년은 열악한 현실에도 긍정적이고 건강한 심리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며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인권을 침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보다 긍정적 방향으로 이주배경청소년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손우성·윤기은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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