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 신들의 망향가를 부르다 [진옥섭 풍류로드]

한겨레 2026. 4. 30.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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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류로드 24 _국무(國巫) 이용녀 ①
‘아흔아홉 상쇠방울’을 든 이용녀 만신(무당). 국가무형유산 황해도평산소놀음굿의 전승교육사이다. 황해도굿의 명무(名巫)들은 모두 판을 떠났다. 이제 그의 ‘배치기’ 소리와 무관(춤)이 인천으로 피란한 황해도의 신들을 달래고 있다. 이진환 사진작가 제공

선창에 ‘배치기’ 소리가 난무한다. “연평바다에 돈 실러 가자 에에헤에….” 무녀가 아랫배를 툭 쳐서 던져올린 소리로 비강을 ‘에에헤에’ 문풍지처럼 진동시킨다. 그리고 덩덩! 덩덩! 북을 울리면 모두 펄쩍 뛰어 땅에 엎드리며 춤춘다. 이쯤이면 구경꾼도 앉아서 버틸 방법이 없다. 저절로 딸려 들어가면, 몇 장단 만에 온몸이 펄펄 끓는다. 주거니 받거니 차올랐던 술기운이 땀방울과 독한 트림으로 여과된다. 그리고 두 발을 모아 뛰면, 마침내 몸에 고인 혈전이나 삶의 앙금이 다 빠지는 피부호흡을 하게 된다. 다시 파도가 철썩이고, 바람은 팔의 잔털을 흔들고 간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무녀가 ‘섬마을 선생님’을 꺼내면 밥자리도 뒤풀이가 된다. 특히 “열아홉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에서 ‘열아홉살’ 대목을 돌돌 돌린다. 마치 골뱅이 속을 이쑤시개로 돌려 뺄 때, 파란 꽁무니까지 쏙 빠져나오는 쾌감이다. 이 후벼 파는 돌림에 탁주 사발이 저절로 돈다. 만신(무당) 이용녀(1959년생), 저 신명을 모종삽으로 푹 떠서 극장에 옮겨 담고 싶어진다. 그러다 결국, 내가 꾼 꿈에 내가 걸려들었다.

공연이란 손님이 꽉 차 공공연한 일이 되어야 한다. 손님 없으면 공연한 일을 벌인 거다. 손님이 들려면 시선을 부여잡는 한장의 포스터가 필요하다. 신 내린 무당인데, 작두 타는 장면을 넣을까? 선무당이 작두 자랑하는 세상이라 그럴 수도 없다. 게다가 관객이 작두 보고 와서 탈 때만 기다린다면 낭패다. 포스터를 인공지능이 뚝딱 만드는 시절에, 달포를 고민해 이용녀가 상쇠(방울)를 든 사진으로 정했다. 신을 모실 때 흔드는 ‘아흔아홉 상쇠 방울’이다. 신이 오는지는 모르겠고, 오로지 손님 오길 기원하며 제목 ‘진접굿’을 써넣었다.

진접굿은 무당이 자신이 모시는 신령에게 진찬을 차려 대접하는 굿이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며, 무당 자신과 단골들의 가화만사성을 기원한다. 예전에는 무당의 집에서 사나흘 했는데, 지금은 굿당에서 하루이틀 한다. 이 굿을 극장에서 6시간으로 줄여 공연하기에 360분, 관객 없이 무당만 하는 대목도 줄여서 5분, 그래서 ‘영혼과 예술을 위한 365분’이라 카피를 붙였다. 이제 나는 신들린 것처럼 환청이 들린다. “뮤지컬도 2시간이면 끝인데”, “6시간, 굿을 시작하다 말겠네”. 서서히 몸이 한쪽은 춥고 한쪽은 더워진다.

요즘 신내림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강신’, ‘내림굿’, ‘빙의’ 같은 말은 굳이 따옴표가 없어도 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오컬트나 초자연을 다룬 작품에 등장하는 무당의 역할도 영향도 크다. 예전엔 무당이 나와 사람들을 현혹했는데, 이제는 ‘파묘’의 김고은 같은 무당이 사람들을 매혹한다. 그래선지 ‘오줌 누고 진저리만 쳐도 신 내렸다’고, 내림굿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점괘가 좀 직설적입니다”처럼 반짝이는 홍보로 손님을 끈다. 유튜브에 엉성한 퍼포먼스를 올리면서, ‘구독과 좋아요’를 누르라 한다.

‘선무당 전성시대’가 되었다. 저들이라고 저런 엉성한 굿을 하고 싶겠는가. 그러나 유튜브에서는 옛 명무(名巫)의 영상보다 선무당의 편집된 ‘뽀샵’ 영상이 더 영험해 보인다. 굿을 모르니 알아볼 방도가 없을 터이다. 그래서 나의 ‘김연아 안목론(論)’이 또 발동되었다. 스케이트를 몰랐던 전 국민이 김연아 선수를 보고 달라졌다. 한바퀴만 돌아도 아! 했는데, 열바퀴를 돌아도 어! 한다. 도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름다움이 문제임을 깨달은 거다. 굿도 영험한 소리를 하거나, 작두를 탄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국민의 눈높이를 높일, 굿다운 굿판이 필요했다. ‘국무(國巫) 이용녀 진접굿, 2026년 2월28일, 서울남산국악당’을 문자로 찍어 돌렸다. “6시간이면, 넷플릭스 시즌 하나 완주하겠네” 하는 이에게 말했다. “와 보라! 이제 본전은 뽑았구나, 하는 순간부터 놀라운 장면이 속출할 거야!”

이용녀는 공연 전인 2월8일에 진접굿을 잡았다. 실제 굿을 하며 신령들께 극장에서의 굿을 아뢴다는 것이다. 인천의 굿당들은 큰길에서 벗어나 굽이굽이 길 끝에 있다. 이제 잔치는 마을을 떠났다. 혼례는 예식장, 초상은 장례식장, 굿판은 이렇게 깊은 굿당으로 이동한 것이다. 굿당이 신이라도 내려야 찾을 만큼 깊이 있어, 비좁은 길에서 몇번 헤맸다. 순간순간 수평선 펼쳐지는 인천 바다가 그리웠다. 지난날 화수부두, 만석부두, 연안부두가 풍어제(豊漁祭)로 들썩였다.

풍어제는 조기잡이를 기원했다. 서해에서 조기는 떼로 헤엄치는 현찰이다. 그래서 “돈 실러 가세 돈 실러 가세”하는 염원의 노래가 ‘배치기’다. 조기의 황금어장인 연평바다와 칠산바다 전체에 모두 배치기가 있다. 황해도의 굿이 인천에 정착한 것도 조기잡이와 배치기처럼 갯가의 풍습이 같아서다. 그리고 ‘서해안풍어제’의 김금화, ‘황해도평산소놀음굿’의 이선비, ‘황해도굿보존회’의 김황룡, 유옥선, 박선옥, 김매물, 박인겸 같은 명인들의 혁혁한 무공(巫功) 때문이었다. 이제 그리운 그분들은 모두 떠났다. 오늘 이용녀의 배치기는 황해도 신들의 망향가가 되고, 춤추는 소매는 유치환의 시 ‘깃발’처럼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다.

진접굿의 핵심은 “인물 자랑에 거풍 자랑”이다. ‘인물 자랑’은 무당 자신을 자랑하는 거다. 이날 무용, 연극, 국악계 사람들이 모였으니, 춤, 소리, 재담이 좋다는 증거다. 굿당 앞에 차들이 꽉 차, 주차할 때 비싼 차를 긁을까 긴장했다. 이렇게 몰려오는 것은, 영험한 공수(신의 말씀)를 잘 내린다는 뜻이다. 공수는 대민 관계에 중요하니, 신을 깍듯이 모셔 ‘신빨’을 드높여야 한다. 그래서 깨어 있어 기도하며, 이렇게 잘 차려 신을 대접하는 진접굿을 하는 것이다.

진접굿의 ‘초감흥거리’에서 신의 복장들을 꺼내어 바람을 쐬는 거풍(擧風)을 하고 있다. 대개는 큰 신의 옷을 입고 노는데, 이용녀는 하찮은 작은 신도 불러낸다. 벙거지를 쓰고 삼지창을 든 포졸 대감이 등장해 구경꾼을 포복절도하게 한다. 진옥섭 제공

무당은 신을 모시는 ‘을’이지만, 굿을 하기에 ‘갑’이 된다. 굿에서 모든 신을 다 놀릴 수는 없다. 그래서 신을 캐스팅할 권한을 쥔 ‘갑’이 된다. 거풍(擧風)이란 바람을 쐬게 한다는 말로, 상자 속에서 신의 옷을 꺼내 놀려주는 것이다. 많은 신을 빠뜨리지 않고 모시는 것을 보이니 ‘거풍 자랑’이다. 진접굿의 ‘초감흥거리’에서 장군이나 대감 같은 큰 신의 옷을 입고 논다. 이용녀는 힘없는 말석의 신도 불러들였다. 벙거지를 쓰고 삼지창을 들더니, 포졸 대감이라 했다. 예전 궁궐을 지키던 포졸이, 수세기 동안 진급 못 하고 청와대를 지킨다. 한잔 마시고 또 진급에서 물먹은 하소연을 한다. “하필, 깜박 졸았어.” 관객이 무슨 말인가 쳐다보니, “김신조가 지나간 거야!” 와락 폭소가 터졌다. 순식간에 신령과 관객을 다 놀렸다.

쉬는 시간에 구경꾼끼리 통성명할 때, 이용녀의 재담이 화제가 되었다. 그러다 함께 자란 친구의 증언을 전해 들었다. 이용녀는 한번 본 영화의 대사를 줄줄 다 외웠다 한다. 친구들과 함께 공장에 다닐 때 월급이 4500원이었다. 영화표가 300원 정도였으니 모두 영화를 보는 것은 큰 낭비였다. 친구들이 돈을 걷었고, 이용녀가 대표로 보고 와 이야기해 줬다. ‘돌아온 외다리’ 같은 액션물은 맨손과 맨발을 가미했고, ‘미워도 다시 한번’ 같은 멜로물은 눈물을 쏙 뽑아냈다. 동인천 애관극장의 ‘십계’가 길었는데, 저녁 먹고 또 봤다. 외국 이름이라 다 못 외웠지만, 어떻든 홍해는 확실하게 쫙 갈랐단다. ‘역시, 철저한 학습이 있었구나!’

이용녀 만신(무당)과 어머니 조도화. 외할머니는 유명한 신촌 만신이고, 어머니 조도화는 무당의 딸로 살았다. 외할머니의 장례식날, 이용녀 자신이 무당이 되었다. 가족사는 황해도의 신과 실향민의 삶이 실타래로 엮인 인생유전이다. 진옥섭 제공

진접굿에서 ‘조상거리’는 무당 자신의 가족사이다. 요약하면 영화 ‘국제시장’의 서해안 버전이다. 황해도 옹진에서 연평도로, 군산 째보선창, 임실군 피란민촌, 인천 만석부두에서 영화 제목으로 제격인 ‘용현시장’까지. 칠흑 같은 삶을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그런데, 가족의 등짐에 황해도의 신들이 올라서 있었다. 외할머니는 유명한 신촌(1922~1988) 만신이 되었고, 어머니 조도화(88)는 무당의 딸로 살았다. 어머니가 무당 딸을 벗어나는 외할머니의 장례식날, 이용녀 자신이 혼절했다. 잠시 깨어나 “너희들 울지마라, 나는 안 죽었다. 나는 우리 용녀 몸에 왔으니, 너희들이 용녀를 나 본 듯이 하여라” 했다. 이제 어머니는 무당 딸 용녀를 섬겨야 했다. 무당인 딸과 무당의 어머니, 짜디짠 눈물에 젖어 상하지 않는 영원한 현재진행형의 슬픔이었다.

남은 이야기는 다음으로 넘긴다.

진옥섭 |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소룡의 ‘당산대형’을 보고 ‘무(武)’를 알았고, 탈춤과 명무전을 통해 ‘무(舞)’에 빠졌고, 서울의 굿을 발굴하면서 ‘무(巫)’를 만났다. 기생, 무당, 광대, 한량을 찾아 ‘남무(男舞)’, ‘여무(女舞)’, ‘전무후무(全舞珝舞)’를 올렸다. 마침내 ‘무(無)’를 깨닫고, 사무친 이야기를 담은 ‘노름마치’를 출간했다. 국가유산진흥원 이사장을 역임하고, 담양군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일했다. 현재 ‘사서삼담’, 4일은 서울 3일은 담양에 있으며, 무대와 마당 사이의 문화판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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