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미국의 위기, 헌법의 위기
이란에 대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갑작스러운 공습이 벌써 두 달 전의 일이다. 수뇌부 암살과 주요 시설의 파괴를 목표로 한 선제타격으로 시작한 전쟁은 이제 종전 협상의 단계에 이르렀다. 그간 수많은 희생자를 낸 참혹한 전쟁의 중심에는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있다. 한낱 리얼리티 쇼처럼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쟁을 지휘하며 그는 전장과 언론보도를 지배해왔다. 관세 부과를 통한 무역전쟁을 넘어 실제 전쟁까지 벌이며 월경(越境)과 주권 침해를 일삼는 그로 인해 국제사회에는 패권국인 미국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하룻밤에 문명 하나를 지워버리겠다는 섬뜩한 협박을 서슴지 않고, 경제적 이득을 앞세워 우방의 파병을 종용한다. 평화를 설파하는 교황과는 대립하면서도, 독재와 부정부패로 악명 높은 지도자들과의 협상 중재에는 기꺼이 나서는 그의 예측 불가한 행보로 미국의 대외 신뢰도는 바닥을 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것은 이란이 아니라, 그가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공언한 미국일지도 모른다.
그의 재임하의 미국은 대내적으로도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관세정책과 전쟁의 영향으로 민생경제는 위태로워지고, 시장의 불안정성은 증폭하고 있다. 민주당 등 정치적 반대 세력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이 이어지고, 도심에 주둔한 군대는 시민의 생명과 자유를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대내외에서 확인되는 미국의 위기 한복판에는, 그 어떤 통제도 받지 않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그가 있는 것이다.
‘노 킹스’ 시위가 보여주듯 그는 마치 전제군주처럼 군림하고 있다. 후진적 정치체제에서나 등장하던 제왕적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유구한 전통을 자랑해온 미국에서 출현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대통령의 권력은 대체로 적절히 통제를 받아왔으며, 지금의 상황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국민주권과 권력분립,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제도화한 헌법 덕에 대통령제는 입법부와 사법부, 그리고 국민의 통제 속에서 성공적으로 유지되어왔다.
하지만 트럼프 시대의 미국은 약 240년 만에 헌법 기초자들의 사고실험이 실패하는 대형 위기를 맞고 있다. 권력이 일인에 집중된 대통령제의 구조적 화약고가 폭발한 지금, 헌법의 위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임기 시작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헌법적 기반을 더욱 노골적으로 흔들어왔다. 이른바 ‘트럼프 2.0’은 언론을 상대로 한 대규모 소송과 이민정책 반대 시위에 대한 강경 진압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광범위한 행정명령과 의사당 점거 폭동자들에 대한 사면권 남용으로 삼권분립 원칙을 무너뜨렸다. 의회의 승인 없이 개시한 이란과의 전쟁 역시 헌법을 넘어선 권력 행사였다. 그가 소셜미디어에 남긴 “국가를 구하는 자는 어떠한 법도 위반한 것이 아니다”라는 비장한 메시지는 미국 헌법이 그토록 경계해온 조지 3세식 통치의 재현을 선포한 것과 다름없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의회, 법원 그리고 미국 시민들의 책임을 부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헌법이 마련한 권력 통제 장치가 이들의 무관심 속에 유명무실해졌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는 입법을 우회하는 빈번한 행정명령을 전혀 견제하지 않았고, 트럼프가 임명한 대법관들이 주축이 된 연방대법원은 보은이라도 하듯 트럼프의 사법 리스크를 덜어주며 그의 재임이 가능하게 했다. 무엇보다 각종 스캔들과 논란의 중심에 있던 그를 다시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은 바로 미국 시민들이었다.
그렇기에 미국이 지금의 헌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통령을 통제할 권력을 가진 주체들의 헌법적 각성과 실천이 필요하다. 최근 미국 언론에서 언급이 잦아진 대통령 탄핵이나 직무정지와 같은 헌법 수호 장치 역시, 대통령의 권력남용을 헌법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진지한 사회적 숙의와 성찰이 전제될 때 비로소 작동이 가능할 것이다. 헌정의 변곡점으로 예측되는 중간선거 역시 헌법적 숙고에 대한 적극적인 실행을 요구한다.
미국처럼 대통령제를 채택한 우리 역시 근래 대통령의 폭주와 내란 사태를 겪었지만, 헌법의 틀 안에서 질서 있게 이를 극복해왔다. 민주주의의 위기가 대통령의 권력남용에서 비롯되었더라도, 헌법적 가치와 제도의 온전한 구현으로 충분히 타개할 수 있음을 국제사회에 보여준 것이다. 그렇기에 광기의 정치에 맞서 이성의 헌법을 다시 작동시키려는 노력은 미국에서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미국과 국제사회에 회복과 안녕을 가져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박종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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