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0주년 맞은 ‘인천 5·3민주항쟁’…기념관 건립 등 앞으로 남은 과제는?

유희근 기자 2026. 4. 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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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민주화운동센터, '제40주년 인천 5·3민주항쟁 기념 토론회' 개최
▲ 30일 오후 인천 미추홀구 주안영상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제40주년 인천 5·3민주항쟁 기념토론회'

올해 '인천 5·3민주항쟁' 40주년을 맞아 역사적 성격과 의의를 재평가하고 앞으로 남은 과제 등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펼쳐졌다.

인천민주화운동센터는 30일 오후 미추홀구 주안영상미디어센터에서 '제40주년 인천 5·3민주항쟁 기념토론회'를 개최했다.

1986년 5월 3일 옛 인천시민회관(현 인천지하철 2호선 시민공원역 일대) 사거리 일대에서 펼쳐진 5·3 민주항쟁은 인천시민과 학생, 노동자 수 만명이 거리로 나와 '군부 독재 퇴진'과 '민주 헌법 쟁취', '노동3권 보장' 등을 구호로 외치며 민주화를 요구한 사건이다. 

1980년 6월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가장 큰 항쟁이자 이듬해 6·10 항쟁의 시발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023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에 인천 5·3민주항쟁이 포함되면서 2·28대구민주화운동, 3·8대전민주의거, 3·15의거, 4·19혁명, 부마항쟁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지역에선 지난해 '인천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조례'에 5·3민주항쟁이 추가가 됐고 최근에는 당시 주요 시위 무대였던 옛 시민회관쉼터에서부터 주안역 남광장까지(미추홀대로 685~746) 도로가 '5·3민주로' 명예도로로 지정됐다.

이날 발표자로 참석한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는 그간 5·3민주항쟁에 대한 주체적 평가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이듬해 일어난 6월 항쟁의 자장 속에서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거나, 또는 '6월 항쟁의 반면교사가 됐다'는 식의 접근과 평가가 주를 이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각 참여 주체가 자율적이면서도 노동자들의 경우 조직적으로 참여한 시민항쟁이었다"고 5·3민주항쟁을 평가했다.

그러면서 "기존 정치 질서를 교란함으로써 군사 정권의 권력 재창출 기획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린 사건이었다"며 "제도적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 민주주의를 요구한 사건이었다"고 강조했다. 

윤영상 KAIST 연구교수는 5·3민주항쟁이 당시 노동자 정치 조직 운동 수준을 그대로 드러내 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정치적 지도부가 부재했고 대중적 열기를 담아내고 확산시킬 계획이나 구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국내 노동계 등에 많은 고민 거리와 과제를 남김으로써 노동 운동이 한 단계 성장하고 발전하는 계기이자 전환점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은주 인천민주화운동센터장은 5·3민주항쟁 기념관 건립 추진 사항과 함께 남은 과제를 발표했다. 

그는 "단순히 공간이나 입지 문제를 넘어 어떻게 5·3민주항쟁의 정신과 가치를 모아가고, 특히 미래세대와 함께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며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박인규 시민과 대안 연구소장은 "인천 민주화 운동 기념관 건립 추진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다. 그간 이에 대한 지역 시민사회 열망과 요구는 충분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지방정부 의지나 법·제도적 기반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제는 막힌 문제가 하나 둘 해소되고 있는 만큼 좀 더 힘을 모아 결실을 거둬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유희근 기자 allways@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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