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리와 시도] 사운드 없는 ‘소리 전시회’…눈으로 사투리 들어볼까요

- 3일까지 낭만시간연구소 전시
- 후배 김유빈과 ‘세대의 교차점’
- 시각·공간 풀어낸 변주 시발점
- “새로운 도전 긴장감 작업 동력”
“사운드 설치작가가 ‘소리’를 쓰지 않다니…. 새로운 시도가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물을 보니 ‘이 작업이 새로운 변주의 시발점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뜻깊었습니다.”

부산을 기반으로 ‘사운드 설치작가’의 행보를 꾸준히, 끈기 있게 이어온 정만영(56) 작가가 낭만시간연구소(부산 동구 초량동)에서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그가 참여한 전시 ‘세대의 교차점 프로젝트: 정만영×김유빈(5월 3일까지)’은 중견과 청년, 사투리와 사운드라는 독특한 조합이 눈길을 끈다. 부산을 대표하는 중견 정만영과 청년 김유빈 작가의 만남이 이색적이고,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온 두 사람이 ‘사투리’를 각자의 방식으로 전시에 풀어냈다는 점도 흥미롭다.
특히 주목할 것은 김유빈 작가는 사투리를 채집해 포장마차 메뉴처럼 펼쳐놓고 들으며 보는 ‘소리의 시각화’를 시도했다면, 사운드 작업에 일가견이 있는 정만영 작가는 ‘소리 없이’ 시각과 공간만으로 보이지 않는 소리를 다뤘다는 점이다. 다양한 지명이 들어간 간판 사진을 모아놓은 ‘부전시장 소리풍경-산넘고 물건너’는 보기만 해도 다양한 지역에서 온 상인과 손님의 사투리가 뒤섞여 왁자지껄한 시장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밀폐된 작은 공간을 부직포로 감싸 외부 소리가 사라지고 의자 하나만 놓인 무음의 공간(‘조용한 시끄러움’)은 외부 소리와 단절된 곳에서 오로지 몸이 내는 소리에만 집중하게 된다. 전시장 외벽에 설치된 깔때기 형태의 구조물(‘모이고 내리고 다시 모이는’)은 바깥소리를 오롯이 집중해 들으며 소리를 수집하는 과정을 느끼게 해준다.
이번 전시는 정만영 작가와 인연이 있는 낭만시간연구소 김민서 대표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전국의 사투리가 모이는 부산, 그중에서도 시장에 관해 이야기하면 좋겠다 싶어 부전시장을 찾아갔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간판이 유난히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래서 녹음기보다 카메라를 더 많이 들었어요. 각자의 고향 이름을 건 다양한 간판만 봐도 사투리가 들리고 시장이란 공간이 상상되는 것 같더군요. 또 도로변에서 골목, 골목에서 집(전시장)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소음이 줄어들고 단절되는 ‘소리의 레이어’가 느껴져 흥미로웠죠. 그렇게 ‘소리를 내지 말아 볼까’라는 생각과 함께 작업이 시작됐어요.”
지역 곳곳을 다니며 소리를 채집하고 그것을 설치 작품으로 드러내는 작업이 익숙한 작가에게 소리를 내지 않는 시도는 모험에 가까웠다.
“공간을 하나의 콘텐츠로 생각하고 원래 있는 소리, 공명하는 소리, 공간이 바뀌면서 달라지는 소리를 생각했습니다. 도시의 소음 속에 살다가 골목, 우물가, 무음의 공간으로 들어오면 자신만의 소리를 들어볼 수 있고, 또 다른 ‘조용하지만 시끄러운’ 소리를 느끼며 감각이 깨어나고 ‘이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죠. 하지만 새로운 시도 앞에서 고민이 거듭되며 공간을 계속 들여다보게 되더군요. 그런 과정이 ‘이 나이에도 실패할 수 있다’는 긴장감을 주는 동시에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에 도전하며 ‘새로운 방법’을 찾은 느낌이에요. 특히 무음의 공간은 또 다른 변주가 가능할 것 같아요.”
정만영 작가는 부산대에서 조소를, 일본 동경예술대학에서 인터미디어아트를 전공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생소했던 사운드 설치미술가로 활동을 이어왔다. 부산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등 국내외 다양한 공간에서 작품을 선보였고, ‘신초량 아카이브’ ‘서낙토리 프로젝트’ ‘산복도로1번지 사운드포인트’ 등 지역 리서치 프로젝트에도 다수 참여하며 부산에서 진행한 의미 있는 작업의 중심에 늘 있었다. 여전히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그는 요즘 ‘부산의 바다 안’에 빠져있다고 말했다.
“사운드 아트 작업을 하며 외로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날 것이다’ ‘생소하다’는 반응을 무던히 견디며 작업했더니 요즘은 ASMR을 비롯해 ‘사운드’가 현대미술의 중요한 매체로 자리하더군요. 제가 꾸준히 작업할 수 있었던 것은 부산의 매력적인 소리 풍경 덕분인 것 같아요. 흥미로운 사운드 스폿을 계속 찾아다니다 보니 그것이 다양한 사운드 스케이프 CD 발매와 지역 리서치 프로젝트로 연결됐어요. 요즘은 부산의 바닷속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직접 바다에 들어가 소리를 들어보기 위해 관련 자격증도 준비하고 수중 마이크도 직접 만들어봤어요. 일상에서 잘 듣지 못하는 소리를 찾아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 거기서 오는 긴장감이 제 작업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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