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 꺼낸 바다 <60> 하퍼스 위클리의 부산항의 전경

김경민 국립해양박물관 전시기획팀 학예사 2026. 4. 30.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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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부산항은 근대적 물류 체계가 이식되던 격변의 현장이었다.

사진 하단 캡션은 "일본인이 건설한 철도가 부산과 서울을 잇고 있다"며 기술의 진보를 증언하지만, 정작 우리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것은 나무배와 부두 사이를 잇는 가녀린 나무 발판 위에서 짐을 옮기는 한 짐꾼이다.

거대한 시대적 담론과 전쟁의 포화 속에 가려져 왔던 실체적인 삶, 즉 노동의 숭고함이 그 좁고 위태로운 외나무다리 위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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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게에서 크레인으로, 부산항 150년 떠받친 ‘등’의 무게
하퍼스 위클리에 실린 부산항의 전경 ‘A View of the Shipping at Korea’s Treaty Port, Fusan’. 국립해양박물관 제공


1904년 3월 12일, 뉴욕의 주간지 ‘하퍼스 위클리(Harper’s Weekly)’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부산항의 전경’이다. 사진 속 1904년의 한반도는 러시아와 일본, 두 열강의 야욕이 부딪히는 전쟁터였다. 전 세계 언론이 이 전쟁의 향방과 국제 정세를 긴박하게 쏟아내던 그때, 정치와 전쟁 기사로 가득찬 잡지의 지면 사이 한쪽 전면에는 흔들리는 나무판 위에서 묵묵히 제 몸집만 한 짐을 지고 있는 노동자의 모습이 담긴 부산항의 풍경이 실려 있다.

당시 부산항은 근대적 물류 체계가 이식되던 격변의 현장이었다. 사진 하단 캡션은 “일본인이 건설한 철도가 부산과 서울을 잇고 있다”며 기술의 진보를 증언하지만, 정작 우리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것은 나무배와 부두 사이를 잇는 가녀린 나무 발판 위에서 짐을 옮기는 한 짐꾼이다. 거대한 시대적 담론과 전쟁의 포화 속에 가려져 왔던 실체적인 삶, 즉 노동의 숭고함이 그 좁고 위태로운 외나무다리 위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부두 노동자들은 기계의 도움 없이 오로지 자신의 근력과 지게 하나에 의지해 근대화의 물동량을 받아냈다. 오늘날 수만 톤의 화물이 오가는 거대한 물류의 흐름은, 사실 1세기 전 이들이 내딛은 위태로운 발걸음 하나하나가 모여 만들어진 거대한 물결이다.

사진 속에서 파도에 흔들리는 배와 육지 사이를 온몸으로 잇던 그 ‘책임감’은, 오늘날 수십 미터 상공의 크레인 조종석에서 초정밀 작업을 수행하는 현대 노동자의 ‘전문성’으로 이어졌다. 150여 년의 세월 동안 가마니는 컨테이너로, 지게는 갠트리 크레인으로, 외나무다리는 견고한 선석으로 그 형태를 바꿨지만, 물류를 끊이지 않게 하려는 항만 노동의 본질은 박물관의 유물처럼 보존되어 왔다.

노동절을 맞아 150여 년 전 흔들리는 발판 위에서 삶의 균형을 잡던 이름 없는 인부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화려한 외교 문서나 승전보 뒤에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실질적으로 돌린 것은 저 땀방울 맺힌 등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도 항만의 불빛 아래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모든 이들이 저 사진 속 주인공들의 후예이자, 우리 역사를 움직이는 진정한 주역이다.

과거의 짐꾼이 짊어졌던 무게가 오늘날의 번영으로 치환되었듯,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 또한 이 시대가 마땅히 이어받아야 할 유산이다. 국립해양박물관은 부산항 개항 150주년을 맞아 그 유산의 무게를 함께 헤아릴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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