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어른들도 줄 선다"…‘딸깍딸깍’ 키캡 열풍
뽑기방 4곳 중 3곳 키캡 등장
2030 키덜트 문화 확산 요인
"스트레스 해소 과몰입 주의"

"딸깍."
30일 오후 광주 동구 충장로 한 소품샵 앞. 투명 케이스에 담긴 작은 키캡을 누르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불빛이 반짝였다. 지나가던 학생들은 발길을 멈추고 제품을 만져봤고, 인근 뽑기방 입구에는 인형 대신 각양각색의 키캡과 말랑이 상품을 담은 기계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한때 문방구 앞 인형뽑기가 차지했던 자리를 이제는 '소형 촉감 아이템'이 대신하는 모습이다.
최근 충장로 일대에서 키캡과 말랑이 같은 소형 굿즈가 새로운 놀이이자 소비문화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 시작된 이 흐름은 20~30대를 넘어 직장인층까지 확산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취미이자 일상 속 스트레스 해소 수단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이날 충장로 일대 주요 뽑기방 4곳 중 3곳은 인형과 함께 '키캡 뽑기' 기계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다. 카드 결제 뒤 버튼을 누르면 효과음과 함께 상품이 떨어지는 방식이다. 기존 뽑기와 가챠(확률형 뽑기) 요소가 결합된 형태다. 기계 앞에는 원하는 제품을 얻기 위해 여러 차례 도전하는 학생들과 젊은 층의 모습이 이어졌다.
소품샵 풍경도 달라졌다. 매장 입구마다 '2개 5천원', '키캡 4구 4천900원' 같은 안내문 아래 다양한 제품이 빼곡히 걸려 있었고, 누르면 소리가 나거나 불빛이 들어오는 상품들이 손님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단순히 보고 지나치는 물건이 아니라 직접 만지고 눌러보는 체험형 상품으로 소비되는 셈이다.

상인들도 달라진 소비 흐름을 체감하고 있다. 충장로에서 소품샵을 운영하는 김모(42)씨는 "예전에는 인형이나 일반 문구류를 찾는 손님이 많았다면 요즘은 키캡을 찾는 사람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입구에 걸어두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점주도 "뽑기방에서 키캡이 유행하면서 매장 판매도 함께 늘었다"며 "관련 매출이 체감상 10~20%가량 증가했다"고 했다.
키캡 열풍은 단순 판매를 넘어 체험형 콘텐츠로도 번지고 있다. 키캡 만들기나 볼펜 꾸미기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간도 늘면서 학생뿐 아니라 자녀와 함께 찾는 가족 단위 방문객까지 끌어들이는 모습이다. 작은 소품 하나를 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꾸미고 소장하는 방식으로 소비가 확장되는 것이다.
이 같은 유행의 배경에는 달라진 소비 구조가 깔려 있다. 저출생 장기화로 전통적인 유아동 완구 시장은 위축되는 반면, 취향과 재미를 중시하는 이른바 '키덜트' 소비층은 커지고 있다. 과거 아이들 장난감으로 여겨졌던 상품이 이제는 성인들에게도 감각적인 수집품이자 스트레스 해소용 아이템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고객층이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직장인 임모(32)씨는 "일하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손에 쥐고 만질 수 있는 걸 찾게 된다"며 "키캡을 누를 때 나는 소리와 촉감이 생각보다 긴장을 풀어주는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부담 없는 가격도 확산 배경으로 꼽힌다. 수천원대로 즐길 수 있어 학생부터 직장인까지 접근이 쉽고, 확률형 뽑기 특유의 기대감이 반복 소비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적은 비용으로도 작은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맞물리면서 충장로 상권의 새로운 소비 풍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다만 과도한 몰입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확률형 소비 특성상 반복 이용으로 지출이 늘어날 수 있고, 습관처럼 소비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경쟁과 스트레스가 커지는데, 어린 시절의 놀이 경험과 유사한 활동이 심리적 안정과 힐링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키덜트 소비가 늘면 관련 산업 성장에는 긍정적이지만, 과소비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며 "수집을 취미로 즐기는 것은 좋지만 특정 캐릭터나 물건에 과도하게 몰입해 일상과 사회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박건우 기자 pgw@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