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숲 사이 곳곳에 숨은 ‘건강 약자들’ 찾아야죠”
[짬]설립 40돌 신천연합병원 김정은 원장

올해 설립 40년을 맞은 경기 시흥시 신천연합병원은 2020년부터 ‘작은별 사업’을 해오고 있다.
환자로 만난 아이들을 진료실 바깥에서 양육자와 함께 만나 깊게 상담하고 필요한 자원을 연계해주는 아동통합돌봄사업이다. 의료진 외에 미술심리상담 선생님, 사회복지사, 피트니스 관장님, 마을밥집 사장님 등 마을 어른들도 함께하고 있다. 병원의 유일한 소아청소년과 의사인 김정은 원장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지역 주민과 병원 직원의 후원금이 재원이다.
의사 26명, 간호사 180여명 등 직원이 330명이나 되는 종합병원이지만 김 원장은 3년 전 취임 이후에도 홀로 소아청소년과 진료까지 맡고 있다. 비록 수도권이지만 지역이 다소 외지다는 인식 때문에 조건에 맞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찾기 어려웠단다.
“작은별 사업으로 지난 5년 약 100여 가정을 봤어요. 상담사를 통해 아이와 양육자를 만나 한시간이든, 두시간이든 그들의 깊은 서사를 들었습니다. 가정사를 알아야 아이들의 고통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상담만으로 내면을 드러내기 쉽지 않으니, 그림 그리기로 아이들 마음을 열고 교감해주신 선생님이나 아이들과 같이 자장면도 먹고 운동을 하면서 그들을 집 밖으로 나오게 한 동네 아저씨나 피트니스 관장님도 (사업에) 함께하셨죠.”
그는 앞으로 지역 주민들과 함께 아이들을 위한 ‘공동부엌’을 만들려고 한다. “연령 제한 없이 누구든 와서 편하고 안전하게 머물 공간을 만들 생각입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집밥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한 끼 먹이기도 하고 아이들이 직접 떡볶이를 만들어 먹고 숙제도 하는 공간이죠.”
지난 24일 병원 진료실에서 김 원장을 만났다.

그가 병원 밖에서 아이들과 그 가족을 만나는 데는 오랜 진료에서 얻은 깨달음이 자리한단다. “초등학생 때 환자로 만나 지금껏 관계를 이어오는 청년이 있어요. 반복되는 호흡기 질환으로 치료하는 중에도 가정 내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 뒤늦게 알았을 때 아이의 질병만 봐온 제가 한심하고 너무나 미안했어요.”
2009년 병원에 합류한 그는 개인 사정으로 개원했던 4년을 제외하고 모두 13년을 신천연합병원 의료진으로 살았다.
오는 7월 원장 3년 임기가 끝나는 그는 지금 병원의 일이 무척 보람이 크고 즐겁다고 했다. “환자뿐 아니라 그 가족도 지역 주민으로 만날 수 있으니까요. 또 병원에는 제가 하려는 일에 공감하고 함께하려는 분이 많아요.”
병원이 위치한 시흥시 원도심은 고 제정구 의원, 고 정일우 신부 등이 빈민운동을 펼친 철거민 정착촌이 있던 곳이다. 서울대 의대 동아리 사회의학연구회 소속 세 의사(양요환·안용태·고경심)가 ‘사회의학’을 표방하며 1986년 4월5일 정착촌과 가까운 곳에서 개원했다. 병원의 모태인 신천연합의원이다. 설립 이후 지역 주민을 위해 지역방문 간호와 건강 상담실을 운영했고 시흥시 최초로 24시간 진료도 시작했다. 1992년엔 비영리 의료사업 추진을 위해 법인(록향의료재단·이사장 백재중)으로 전환했고 7년 뒤 종합병원으로 승격했다.
그는 지금도 병원이 설립 때 추구한 ‘사회의학’의 정신은 이어진다고 했다. 사회의학은 질병을 개인 문제가 아닌 사회적 환경의 결과로 보고,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건강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중시한다.
“사회의학 선구자인 독일의 병리학자 루돌프 피르호가 남긴 유명한 명제가 있어요. 의학은 사회과학이고 정치는 거대한 규모의 의학이라는 거죠. 그는 의료를 해 보니 사람들이 더러운 물을 먹으면 계속 장염에 걸리더라, 그래서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먹게 하는 게 진짜 치료라고 했죠. 의료는 사회를 좋아지게 하는 것과 떨어질 수 없다는 생각이죠.”
그와 병원이 ‘통합 돌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 역시 돌봄의 큰 틀에서 의료를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지난달 18일 병원이 연 ‘개원 40년 정책포럼’ 주제도 ‘생명 존중의 40년, 삶을 잇는 통합 돌봄’이다.
“폐렴이나 천식을 치료해 퇴원해도 거주 환경이나 안정된 사회적 관계망이 없으면 질병은 반복됩니다. 의료 행위가 증상의 호전에 일시적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돌봄은 호전된 상태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노력입니다.”
서울대 사회의학연구회 소속 세 의사 1986년 4월에 고 제정구 의원 등이
빈민운동 펼친 시흥 원도심에 문 열어
건강 상담실 운영하고 지역 방문 간호
후원금으로 이주민 의료 지원 활동
‘위기의 아이들’ 돌봄 사업도 7년째
2009년 합류해 2023년 원장 취임
병원은 3년 전부터 종합병원급으로는 전국 최초로 ‘재택 돌봄 의료 활동’도 하고 있다. 경기도에서 종합병원급과 손잡고 운영하는 ‘찾아가는 돌봄 의료 센터’ 시범사업에 경기도 의료원 6곳 및 동탄시티병원과 참여하고 있다. 의사와 간호사, 작업치료사, 사회복지사 등이 팀을 이뤄 환자를 방문해 진료와 간호, 욕창 관리, 재활 서비스 제공 등을 한다.
“지금껏 460여명 환자 집을 모두 약 4천회 찾았어요. 우리 병원 의사 중에는 저와 내과, 정신과 전문의가 참여합니다. 욕창이 너무 심해 중증 처치가 필요한 분들은 병원으로 모시기도 합니다.”
그는 이 사업의 필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우리 팀이 어르신 댁에 갔을 때 이미 사망한 채로 발견된 경우도 있어요. 돌아가시는 순간조차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채로 계신 분에게는 집 자체가 응급실입니다. 홀로 누워 지내거나 장애 상태에서 병원으로 나오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돌봄 의료를 요청한 어르신을 보러 갔다가 그 어른이 돌보는 위기의 아이들도 많이 발견했어요.”

병원은 기금을 마련해 의료보험이 없는 이주민에게 일정 한도에서 의료비를 대주고, 자국에서 정치적 탄압을 받은 이주민들이 난민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의료 감정 등의 지원도 한다. 시흥시에서 출생 확인증을 받은 미등록 이주민 자녀들 대상으로 의료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시흥시가 3년 전 미등록 이주민 아이들에게 출생 확인증을 발급하는 조례를 만들 때 우리 병원 직원들을 포함해 많은 시민들이 서명 운동을 펼쳤습니다. 우리 병원은 출생확인증을 받은 아동들에게 지역 병원, 소아청소년과의원, 약국들과 함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니세프169 사업’ 추진 거점병원이기도 합니다.”
지난 40년 의료보험 제도 도입과 복지 예산 확충으로 돈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은 크게 줄었다. 하지만 ‘건강 불평등’은 여전히 우리 사회 숙제다. 모두가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예전엔 건강 약자들이 눈에 보였다면 지금은 빌딩 숲 곳곳에 숨어 있어요. 건강보험은 되지만 여러 사유로 병원에 못 오는 분들이 있어요. 특히 어른이 해결해 주지 않는 한 아이들의 건강 돌봄은 매우 취약합니다. 아이들이 아파요 하며 스스로 병원을 찾아오지는 않거든요. 이주민 자녀를 포함해 그러한 상태의 아이들을 찾아보고 돌봐주는 사회의 안전망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는 문해력과 건강의 상관 관계도 강조했다. “시흥시만 해도 약 59만 인구 중 이주민이 7만명입니다. 한국어 문해력이 떨어지면 아파도 제때 도움을 받지 못하는 원인이 됩니다. 언어가 안 되면 그 가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어 위축된 상태에서 최소한의 치료만 받게 됩니다.”
원장으로서 그의 최대 고민은 재정 문제다. “(병원은) 만성적 적자 상태입니다.”
재정 압박을 풀 방도를 묻자 그는 “지방정부가 민간병원의 공익적 의료역량을 위해 고비용, 고위험 분야인 응급, 소아, 산과 등의 진료 영역은 공공보건의료 확장 차원에서 민간병원에 위탁하거나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방법을 고민하면 좋겠다”고 바랐다.
“2012년 공표된 공공보건의료 법률 개정안을 보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공공보건의료사업의 추진을 위해 수행기관을 확보해야 하고, 수행 기관에 대해 재정적, 행정적 지원을 할 수 있어요. 아직은 공공의료기관이 전체 의료기관의 5%를 밑도는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에서는 공적 자원을 확충하는 것과 함께 민간병원의 공익적 역량을 키우고 지속가능하게 하는 양날개의 정책을 펴야한다고 생각해요.”
후원 문의 (031)310-6573(신천연합병원 마을건강센터).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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