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권보다 앞서는 집회의 자유…이재용 자택 앞 불법 천막도 못 치운다

김인한 기자, 김성아 기자 2026. 4. 30.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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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보장된 '기본권 충돌'
삼성노조, 성과급 공적 문제
회장 사적 공간서 해결 모색
"독일식 노사 상생 협의 필요"
30일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 옆에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설치한 흰색 천막 농성이 보인다. / 사진=김성아 기자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자택 앞. 대문 옆 담장 옆에 천막 한 동이 설치돼 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하 노조)이 만든 천막에는 '모든 결정권 쥔 회장이 전면에 나서라' '갈라치기 뒤에 숨지 마라' 등의 문구가 걸렸다. 자택 담장과 도로 위 천막의 거리는 2m. 인근 미술관 등을 오가는 외국인 관광객은 천막을 돌아 지나갔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이날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통화에서 "노조의 천막이 설치된 구역은 도로로 확인됐다"며 "도로구역 내 불법 설치물로 볼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도로 불법 설치물이지만 "철거는 어렵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자택 인근 도로에 천막을 설치한 모습. / 사진=김성아 기자
용산구청에 따르면 노조는 도로 점용 신청을 하지 않아 허가 승인을 받지 못했다. 도로법 제61조(도로의 점용 허가)에 따르면 관할 관청의 허가 없이 도로에 설치된 천막은 원칙적으로 불법 점용물에 해당한다. 현행법상 불법 점용물은 철거 대상이다.

그러나 관할 구청이 즉각적인 강제 철거에 나서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관할 구청은 도로구역 내 무단 설치물에 대해 통상 자진철거 명령이나 시정명령을 먼저 내리고, 이행기한을 부여한 뒤에도 따르지 않으면 행정대집행 계고와 철거 절차에 들어간다.

다만 사전통지와 의견제출 등 절차에 하자가 있다면 행정대집행이나 철거 자체가 위법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담당 공무원이 큰 곤란을 겪을 수 있어 즉각적인 물리력 행사보다 자진철거 요청이 우선되는 경우가 많다.

모호한 규정도 문제로 지적된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은 적법하게 신고된 집회의 경우 시위에 필요한 천막 등을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필수 용품으로 인정한다. 천막 등은 도로 점용 여부, 통행 방해 정도, 사생활 침해 가능성 등에 따라 철거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이를 판단하는 구체적인 기준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관련 규정을 예측가능한 수준으로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H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는 이날 시대와의 통화에서 "시민의 통행권을 보장하고 도로 환경을 규정한 도로법보다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집시법이 실무적으로 우선시되는 경향이 짙다"며 "관할 구청으로서도 물리적 충돌과 기본권 침해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행정대집행을 강행하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했다.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조는 연간 영업이익의 15% 수준을 성과급으로 요구하며 오는 5월21일부터 6월7일까지 파업을 예고했다. 15% 기준은 과거 성과급 산정 방식이 불투명하고 회사 실적 대비 보상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여기에 최근 AI(인공지능) 반도체 수요 확대와 메모리 업황 반등으로 연간 영업이익이 수십조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실적 연동형 성과급 기준을 요구한 것이다. 반면 사측은 해당 요구가 경영상 부담이 크고 파업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노조를 상대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신청한 상태다.

우하경 노조 위원장은 "우리 입장은 총수가 나와서 사안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라며 "성과급 제도화와 성과급 투명화는 재작년 총파업 때부터 계속 요구해 온 사안인데, 지금까지 전혀 소통이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적극적 '시설보호 요청'이 유일한 선택지


30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한 인근 미술관으로 이동하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습. / 사진=김성아 기자
이 회장의 자택 앞 천막 농성은 헌법상 보장된 두 가지 기본권의 충돌 사례다. 바로 '집회의 자유'와 '주거권'이다. 헌법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집회와 결사의 자유'(제21조)를 갖는다. 그러나 그 대상과 장소가 기업 경영진의 '사적 공간'으로 향하면서 당사자 뿐 아니라 그 가족의 '주거의 자유'(헌법 제16조)와 '사생활의 비밀'(헌법 제17조)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종탁 대한변호사협회 이사(JT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집회의 자유도 헌법상 기본권이지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와 주거권도 헌법상 기본권"이라며 "광장 등 공개된 장소와 달리 주거밀집지역의 경우 소음 등 주거권에 침해를 줄 정도의 집회라면 공공의 안녕 질서, 법적 평화와 타인의 평온 등을 위해 집회와 시위 제한이 법률적으로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2003년 집시법의 절대적 장소 금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는 특정 장소에서의 집회를 일률적으로 전면 금지하는 것은 과도한 기본권 제한에 해당하므로, 공공질서와 집회의 자유를 개별적·구체적으로 조화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현재 집시법은 대통령 관저 등 예외적인 장소에 대해서만 100미터 이내 시위를 제한하고 있다. 대신 당사자 등이 경찰에 '시설보호 요청'을 하는 경우 시위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결국 현행법 체계에선 이 회장 등 당사자가 시설보호를 요청을 하는 게 집회로부터 헌법상 권익을 지키기 위한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라는 지적이다.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헌법상 기본권이 강하게 충돌하는 사안인 만큼 법적 강제보다는 양측이 스스로 절제할 수밖에 없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사회도 오너와 주주 중심의 '주주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기업을 하나의 공동 운영체로 보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임 명예교수는 "노사 상생협의회를 만들어 영업이익을 연구개발(R&D), 예금, 상여금 등으로 어떻게 배분할지 사전에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독일은 노조를 경영에 참여시키되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도록 과반 이상을 차지하지 못하게 했다"며 "기업은 노조에 경영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노조는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 '상호 절제'를 통해 노사 공동 결정, 이윤 공유 등이 가능해졌다"고 했다.

김인한 기자 inhan.kim@sidae.com 김성아 기자 roms122@sida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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