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학들 '의심스러운 관행' 공론화에 자부심"

김성후 선임기자 2026. 4. 30. 18: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명문대 '학술 용병 의혹' 보도한 이의진 연합뉴스 기자

연합뉴스 사건기자 4명이 23일 국내 명문대들의 글로벌 대학평가 순위 상승에 ‘무늬만 교원’인 외국 학자들이 있다는 ‘학술 용병’ 의혹 보도로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국내 언론에서 다룬 적이 없는 이 문제를 끈질긴 취재 끝에 수면 밖으로 드러낸 이들은 이의진·박수현·이율립·양수연 기자다.

이의진 연합뉴스 기자는 지난 23일 기자협회보와 만나 이른바 ‘학술 용병’ 문제를 우리 사회 공론장에 던져놓았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김성후 선임기자

사건기자들이 기획 아이템을 취재한다는 것, 특히 한 달 이상의 장기 취재에 매달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실 확인이 어려운 주제였다. 기자상 시상식 후 만난 이의진 기자는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의심되는 상황에서 처음에 수수께끼처럼 다가왔다”고 했다. “‘이건 되겠다’나 ‘이건 안되겠다’ 등 이성적 판단으로 취재를 시작하지 않았어요. 일단 좀 알아보고 다시 생각해보고, 취재가 진척되면 ‘조금 더 알아보고 생각해보자’는 식이었습니다.”

시작은 편집국에 들어온 제보였다. ‘국내 명문대학들이 국제 랭킹을 올리기 위해 논문 인용이 높은 외국 연구자의 명의만 사오고 있다’는 게 얼개였다. 서울의 주요 대학 수강편람과 학과 홈페이지를 찾아보고 대학공시, 한국연구재단 자료도 확보했으나 별 도움이 안 됐다. 이름도 모르고, 실존 여부조차 불투명한 의심군 학자를 찾기 위해 구글링을 했다. 특정 대학과 소속을 필수 키워드로 넣고,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나 학술 정보 분석 기관 클래리베이트(Clairvate)에 제한을 걸어 검색했다. 일부 의심군 학자 사례가 나왔다. 이들의 논문에 어떤 소속이 찍혀 있는지 추적하기 위해 학술 데이터베이스 ‘스코퍼스(Scopus)’를 뒤졌다. 몇몇 학자들이 생산한 논문에 여러 소속이 병기됐고, 그 안에 국내 명문 사학들이 제2, 제3의 소속처로 명시돼 있었다. 이들이 인용한 논문의 저자를 찾아보니 또 다시 일부 연구자가 똑같은 패턴을 보이고 있었다.

그때도 외국 학자들이 논문에 제2, 제3의 소속처로 한국 대학 이름을 넣은 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이 기자는 “글로벌 학술 시스템이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보도 꾸러미의 가장 큰 의의는 외국의 고인용 연구자들을 국내 대학들이 데려온다는 사실보다 논문 내 ‘소속 병기’ 시스템의 공론화였습니다.” 논문에 해당 대학이 병기되면 QS(Quacquarelli Symonds)나 THE(Times Higher Education) 등 글로벌 대학평가 기관들은 해당 대학의 연구 실적으로 인정했고, 명문 사학들의 QS 순위나 THE 세계대학 순위는 껑충 뛰어올랐다.

4월23일 국내 명문대 ‘학술 용병’ 의혹 보도로 이달의 기자상을 받은 연합뉴스 이의진·박수현·이율립 ·양수연 기자가 상패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 기자는 “대학 내부자 취재를 성공할 역량은 없고, 밖에서 이를 아는 사람은 없는 곤란한 상황이었다”며 “좀 더 범위를 넓혀 더욱 외곽으로 가보았다”고 했다. 취재팀은 무대를 해외로 넓혔다. 해외 학자들 사이에서 여러 기관을 소속으로 두고 논문을 내는 것이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었다. 연구윤리 전문가, 해외 학술 시민단체, 글로벌 저명 학술지 편집 담당자 등을 접촉했다. 그러다 로크만 메호(Lokman Meho) 베이루트 아메리칸대 교수와 연결이 됐다.
메호 교수는 연합뉴스 보도 취지에 공감했고, 최근 3년간 스코퍼스에 등재된 고려대 논문을 전수 분석해 엑셀 파일로 보내줬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지난해 고려대 국제논문 증가분의 48%(1011편)가 객원·특임교수로 임용된 외국 학자 80여명이 생산한 논문으로 나타났다. 고려대 교원과 공동 저술은 8%에 불과했다.

팩트를 확인한 취재팀은 곧장 기사화하지 않았다. 공론화할 사안이 맞는지 끝까지 의심했다. 이 기자는 “취재팀 판단이 문제가 없는지 자문을 구하는 과정에 상당한 시간을 썼다”고 했다. 취재팀은 대학교수, 대학원생, 대학본부 관계자, 메호 교수를 비롯한 연구윤리 전문가들을 다시 접촉했다.

“우리는 매 순간 똑같이 자문했어요.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아야 할 이야기일까?’ 사안이 명확해진 뒤엔 ‘그렇다’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과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게 결론이었습니다.”

연합뉴스는 3월30일 국내 명문대들이 글로벌 대학평가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학술 용병’을 동원하고 있다는 의혹을 처음으로 보도했다. 이 보도는 대학들이 왜 ‘학술 용병’을 동원했는지 등으로 확장됐고, 지금도 진행형이다. 이 기자는 “취재팀이 드러낸 대학들의 ‘의심스러운 관행’은 기존의 전통적 연구 부정의 프레임엔 포착되지 않는 문제였다”며 “문제 인식의 프레임 워크 자체를 최초로 사회 공론장에 던져놓았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Copyright © 기자협회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