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거지맵’에서 한 끼 3000원 식당 찾는 MZ들…“발품 팔아서라도 돈 아껴야죠”
외식 물가 상승·투자 비용 마련 등 이유로 꼽혀…전문가 “청년층 투자 목표 의식 뚜렷해져”
(시사저널=이강산 기자)

'거지맵'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나. 이 단어를 처음 접한 이라면 그 의미를 한 번에 파악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거지맵은 주로 한 끼 5000~8000원대의 저렴한 식당을 지도 위에 모아 보여주는 웹 기반 플랫폼이다. 거지맵은 점심 식사비가 1만원을 웃도는 '런치플레이션' 현상이 심화되면서 주식 및 부동산 투자금 모으기에 나선 MZ세대 사이에서 하나의 '초절약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3000원 김치찌개'에 손님들 인산인해…"멀어도 일부러 찾아와"
30일 오전, 취재진은 서울의 주요 대학가 중 하나인 종로구 혜화동을 찾았다. 거지맵을 살펴보면 신촌 등 대학가나 종로와 같은 직장 밀집 지역에 가성비 식당이 밀집돼 있는데, 혜화동 역시 그중 하나였다.
이날 취재진은 혜화동의 많은 '가성비 식당' 가운데서도 가장 가격이 저렴한 가게로 향했다. 이미 가격으로 유명세를 타 인기 예능 프로그램 등에도 등장한 바 있는 이 가게는 김치찌개 1인분을 3000원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 2월 서울 지역 김치찌개 백반 평균 가격은 8654원이었는데, 이에 비해 5000원 이상 저렴한 가격이었다.
물론 반찬 가짓수나 위치에 따른 임대료 차이를 고려할 때 절대적인 비교가 어려울 순 있겠으나, 평소 점심식사 비용이 대부분 1만원 이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가성비' 그 자체였다.
약간 이른 오전 가게에 입장했음에도 이미 가게 내부는 손님들로 대부분 차있었고, 점심시간이 되자 긴 대기 줄이 이어졌다. 손님층은 다양했으나 인근 대학생들이 주를 이뤘다. 인근에 위치한 성균관대에 재학 중인 김아무개씨(22)는 "학교에서 거리가 꽤 있긴 하지만, 가격이 저렴해 돈도 아끼고 걷기도 할 겸 공강 시간에 자주 와 식사를 한다"며 "학교를 거의 매일 나오니 밥값이 꽤 부담되는데 이런 식당이 근처에 있다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근 직장에서 근무 중이라는 박아무개씨(29)는 "물가가 좀 오른 게 아니지 않나. 너무 많이 올랐다 보니 거지맵이 생긴 듯싶다"라며 "점심 한 끼에 못해도 '3000원씩은 아끼자'라는 생각으로 거지맵 식당을 찾아다니고 있다. 발품 팔더라도 돈은 모이니 나름 뿌듯하다"고 했다.
근처의 또 다른 '거지맵' 식당인 분식집 역시 이날 인산인해를 이뤘다. 모두 거지맵을 보고 온 손님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으나, 인근의 1만원대 이상 식당들과 비교해 봤을 때 두 가게에 더 많은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국내 외식 물가 '고공행진'…청년층 투자 의욕 고취도 한몫해
거지맵은 지난달 20일 공개된 이후 한 달 여 만에 누적 방문자 수 130만명(4월23일 기준)을 넘어선 상황이다. '거지맵 열풍'을 두고 학계에서는 고물가 장기화에 따른 청년층의 경제적 고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국내 외식 물가는 식자재 비용 상승 등에 따라 끊임없이 고공행진 중이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외식 소비자물가지수는 127.28(2020=100)로 전년 동월 대비 2.8% 올랐다.
결정적으로 '서민음식'이라고 불리는 외식 메뉴들의 가격이 일제히 큰 폭으로 오른 것이 거지맵 열풍에 한몫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한국소비자원 발표를 보면, 지난 2월 기준 김밥은 3800원으로 전년 동월(3538원) 대비 7.4% 올랐다. 칼국수는 9962원으로 5.3%, 삼계탕 1만8154원으로 4.7%, 삼겹살은 2만1141원으로 4.3% 비싸졌다.
전문가들은 또 거지맵 열풍에 대해 '욜로(YOLO, 현재의 행복을 위해 큰 소비도 마다하지 않는 생활 방식)' 문화에서 벗어나 초절약을 통해 자산을 끌어모아 자본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2030세대의 생존 방식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이은희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과거 욜로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했을 당시엔 외제차나 명품 등을 과시하는 사례가 많았다"라며 "그러나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의 변화 등에 따라 투자로 큰 수익을 얻는 이들이 늘어나며 젊은 층들도 투자에 대한 목표의식이 보다 뚜렷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정부를 거치며 계속된 경제 정책 실패로 청년층 사이에서 '알아서 앞가림해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 잡았다"며 "때문에 가장 빈번한 지출인 외식비용을 아끼려는 '거지맵' 등의 노력은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짚었다.
다만 거지맵에 등재된 일부 식당의 경우 식자재값 상승에 가격을 올리고 싶어도 '가성비' 타이틀을 놓쳐 손님들을 잃게 될까 우려하는 곳들도 있다. 혜화동의 또 다른 거지맵 등재 식당의 점주 박아무개씨(48)는 "거지맵 등재 소식을 처음에는 몰랐다가 일부 젊은 손님들이 '거지맵을 보고 찾아왔다'고 말해줘 알게 됐다"며 "손님이 어느 정도 늘어난 것 같아 좋긴 하나, 밀가루나 계란 같은 기본 재룟값이 많이 올라 가격 상승을 고려하고 있었는데 올리기 애매해진 상황이 됐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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