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민간인 희생자 백락정 형제, ‘포고령 2호 위반’ 재심서 무죄

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부 포고 제2호
조선의 주민에 포고함.
본관은 본관 지휘 하에 있는 점령군의 보전을 도모하고 점령지역의 공중 치안, 질서의 안전을 기하기 위해 태평양미국육군최고지휘관으로서 아래와 같이 포고함.
항복문서의 조항 또는 태평양미국육군최고지휘관의 권한 하에 발한 포고, 명령, 지시를 범한 자, 미국인과 기타 연합국인의 인명 또는 소유물 또는 보안을 해한 자, 공중치안, 질서를 교란한 자, 정당한 행정을 방해한 자 또는 연합군에 대하여 고의로 적대행위를 하는 자는 점령군 군율회의에서 유죄로 결정한 후 동 회의의 결정으로 사형 또는 타 형벌에 처함.
1945년 9월7일 요코하마에서
태평양미국육군최고지휘관 미국 육군대장 더글라스 맥아더
좌익계열 단체 주최 집회에 참석해 포고령 2호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1948년 대전지법 홍성지원에서 각각 징역 1년과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의 형을 선고받았던 백락용(백낙용, 1911년생)·백락정(백낙정, 1919년생) 형제에게 78년 만에 같은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대전지법 홍성지원 형사1단독 정우철 판사는 지난 24일 유족이 제기한 미군정 포고령2호 위반 사건의 재심 선고공판에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가 되지 않거나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경남 창원의 포고령 2호 위반 사건 재심에선 지난해부터 잇따라 무죄가 선고됐는데, 충남에서는 처음이다.
앞서 대전지검 홍성지청도 “재심 대상 사건의 판결문, 공소장 등 기록이 모두 소실돼 공소사실을 특정하거나 입증할 자료가 전혀 없고, 새롭게 제출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구형한 바 있다.
충남 서천군 시초면 풍정리에 살던 백락용·백락정 형제는 당시 포고령 2호 위반 판결로 인해 1949년 관변단체로 설립된 ‘국민보도연맹’에 자동가입됐고, 이듬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경찰에 체포 또는 실종됐다. 두 사람은 최종적으로 각각 대전 골령골에서 군경에 학살당하거나 군법회의에 회부돼 사형판결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는데, 백락정의 경우 형과 함께 학살된 것으로 조사됐다가 뒤늦게 사형 판결문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서 진실규명(피해 확인) 결정이 취소되기도 했다. 백락정의 사형 판결문에는 판결 사유조차 없었다. 백락정의 진실규명 취소 결정을 둘러싼 논란은 2기 진실화해위에 최대 쟁점 중 하나였다.
재심 재판부는 “포고 제2호는 내용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포괄적·추상적이어서 통상의 판단 능력을 가진 국민이 포고 제2호에 의해 금지되는 행위가 무엇인지 예견하기 어렵고, 금지행위에 대한 형벌 역시 ‘사형 또는 타 형벌’로 돼 있을 뿐이어서 형벌의 종류조차 알 수 없으므로 죄형법정주의를 위반하였음이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포고 제2호는 대한민국 헌법에 의하여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는 위헌·무효인 법령에 해당하므로 여기에 근거한 이 부분 공소사실은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의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현재 백락정 유족에게는 두 소송이 더 남아있다. 하나는 행정법원에 낸 (진실화해위)진실규명 취소 이의신청 기각결정 취소소송이고, 또 하나는 대전지법 홍성지원에 낸 국방경비법 위반에 따른 군법회의 사형 판결에 대한 형사재심이다.
백락용의 아들이자 백락정의 조카인 백남식(77)씨는 30일 포고령 2호 위반 무죄 판결문을 받고 “포고령 2호 위반 기록은 아버지와 삼촌이 6·25가 터진 뒤 죽임을 당하는 살생부가 되었으며, 심지어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 결정서에 ‘악질부역자’, ‘노동당원으로 활약, 처형됨’ 등으로 섬뜩하게 기록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제는 모든 게 바로잡혀야 한다”고 말했다.
백락정 사형 판결은 3기 진실화해위에서도 주요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송상교 위원장은 지난 3월 취임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국전쟁 전후 시기에 불법 판결이 사실 꽤 많았다. 수만 건 정도가 있었다고 하는데 국방경비법에 따라 사형 판결을 받은 분들의 문제가 부각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당시 국방경비법에 따른 사형 판결은 검찰관 1명이 하루에 159명을 심리하는 등 지극히 형식적인 재판을 거친 뒤 집행돼 ‘사법 학살’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오전에 검사가 구형하고 오후에 판사가 선고한 뒤 당일 바로 사형집행을 했다는 증언도 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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