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국제법위반에 대한 반유대주의 여파가 ‘일본판 쉰들러’에게도

김기범 기자 2026. 4. 3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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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쉰들러’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스기하라 치우네의 모습. NPO(비영리단체) ‘스기하라 치우네 생명의 비자’ 누리집 갈무리

“스기하라가 구한 유대인이 현재 가자에서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난 2월 일본 메이조대 이나바 치하루 명예교수가 아이치현에서 했던 강연 도중 한 남성으로부터 들은 질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로부터 6000명에 달하는 유대인의 목숨을 구하면서 ‘일본인 쉰들러’라 불리는 스기하라 치우네와 현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기구에서 벌이고 있는 행태를 연결 짓는 내용이었다. 일본에서도 가자 침공 이후 이스라엘의 이미지가 악화되었고, 이란 (전쟁) 이후 더 악화되고 있음을 실감케하는 사건이었다고 이나바 교수는 말했다.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이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반유대주의가 스기하라처럼 과거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위기에 처한 유대인들의 목숨을 구했던 인물의 기념사업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30일 도쿄신문에 따르면 와세다대와 NPO(비영리단체) ‘스기하라 치우네 생명의 비자’는 지난 14일 스기하라 덕분에 목숨을 건진 유대인 생존자 가족을 초대해 기념강연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강연회는 돌연 연기됐다.

와세다대 등 강연회 주최 측은 강연회 연기의 구체적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도쿄신문은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 등에서 국제법 위반을 반복하고, 미국과 함께 이란을 공격한 것 등의 여파가 강연회에 미치는 것을 고려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나바 교수도 도쿄신문에 “이스라엘의 인상이 나빠진 것이 스기하라가 유대인을 구한 것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우려한 대학 관계자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내에서 확산된 반유대주의 정서로 인해 강연회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걱정 때문에 강연회가 취소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여론이 현재처럼 악화되기 전에도 이스라엘 대사가 참가하는 행사에서는 오래전부터 금속탐지기 등을 사용하는 삼엄한 경비가 이뤄져 왔다고 도쿄신문은 전했다.

이미 스기하라 기념물 등에는 반유대주의에 따른 것으로 추정되는 훼손 행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도쿄신문은 지난 2월 미 로스앤젤레스 리틀도쿄에 있는 스기하라 동상이 오염되는 사건이 발생했다면서 누군가가 스기하라 동상의 머리 부분에 붉은 페인트를 뿌렸다고 전했다.

스기하라의 고향인 기후현 야오츠쵸에 있는 기념관도 미·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이후 방문자가 급감하고 있다. 기존에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나 후손 등 이스라엘인 방문자도 많았지만 올해는 그마저도 발길이 뚝 끊긴 상태다.

스기하라는 1939년 당시 구소련에 속해있던 리투아니아공화국 카우나스에 있었던 제국주의 일본의 영사관에서 근무했던 인물이다. 당시 나치 독일이 폴란드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하자 폴란드 유대인들은 소련과 일본 등을 경유해 제3국으로 가려 시도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나치와 협력 관계였던 소련은 일제 영사관에 비자 발급 중단을 요구했고, 일본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위기에 처한 유대인들은 폴란드와 국경이 맞닿은 리투아니아에서도 비자 발급을 신청했는데, 스기하라는 ‘내 손에 달린 목숨들을 포기할 수 없다’면서 정부 명령을 어기고 6000명에게 비자를 발급했다. 덕분에 비자를 받은 유대인들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1969년 스기하라에게 건국공로훈장을 수여했다. 스기하라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로 유명한 독일인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를 본떠 일본인 쉰들러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스라엘 정부가 뒤늦게 스기하라의 신원을 확인한 것은 그의 이름이 유대인들에게 스기하라 센뽀로 잘못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지난 29일 유대인들이 흉기로 공격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 영국 런던 골더스그린에서 런던 경찰청장이 발언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이 같은 반유대주의 정서는 일본만의 일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2023년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이후 반유대주의 사건이 증가하는 추세다. BBC에 따르면 지난 29일(현지시간) 유대인 공동체가 있는 영국 런던 북부 골더스그린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한 남성이 유대인 남성 2명을 흉기로 공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런던경찰청은 이를 테러 사건으로 보고 수사에 나선 상태다.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유대인 공동체에 대한 방화 공격도 잇따르고 있다.

가자지구에 여러 차례 방문했던 일본 언론인 다카하시 마키는 도쿄신문에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이 형편없더라도 유대인을 공격하는 것은 인종 차별”이라면서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반유대주의가 확산되면 이스라엘 정부는 ‘유대인이 박해받지 않는 국가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국제법 위반을 정당화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정 민족에 편향되지 않았던 스기하라의 인도주의를 이해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팔레스타인 문제 개선을 위해 전쟁에 반대하는 유대계 인사들과 연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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