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아킬레스건 건드렸다”···헌재가 고른 재판소원 1호는 ‘심리불속행’

헌법재판소가 ‘재판소원 1호’ 사건으로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의 적법성을 심리하기로 한 것을 두고 법조계에서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대법원은 연간 접수되는 사건의 약 70%를 별도 심리 없이 기각하는 심리불속행으로 처리 중이다.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이지만 ‘재판이 부실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헌재가 이 과정이 적법한지 다시 따져보게 된 것이어서 법조계에선 “헌재가 대법원의 ‘아킬레스건(치명적 약점)’을 건드렸다”고도 평가한다.
행정·형사 판결 엇갈렸는데 ‘심리 없이 확정’…“재판받을 권리 침해” 주장
30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재판소원 1호 사건은 제약사 녹십자가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처분을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한 대법원 판결을 취소해달라”며 지난달 16일 제기했다.
녹십자는 2023년 7월 백신 입찰 담합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20억원을 부과받고, 입찰 방해 혐의로 기소까지됐다. 같은 사안에 대해 행정소송과 형사소송의 결론이 엇갈렸다. 입찰 방해 혐의 형사재판에서는 무죄가 확정됐고, 과징금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녹십자가 낸 행정소송에선 원고가 패소했다.
녹십자가 문제삼는 부분은 대법원이 행정소송 상고심에서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했다는 점이다. 같은 입찰행위를 두고 형사소송에 대해선 대법원이 ‘담합으로 인한 경쟁제한성이 없다’며 무죄를 확정했는데, 이런 결론과 상반되는 취지의 행정소송 패소 판결을 심리불속행으로 확정한 건 위법하다는 게 녹십자의 주장이다.
현행법에선 ‘원심판결이 대법원 판례와 상반된 해석을 한 경우’ 등은 심리불속행 기각이 불가능한 사유로 정하고 있다. 헌재는 향후 본안 심리를 통해 대법원 판결이 현행법을 위반했는지, 녹십자 측의 재판청구권 등 헌법상 권리가 침해됐는지 등을 본격적으로 따져볼 것으로 전망된다.
법조계 “헌재, ‘법원 견제 역할 하겠다’ 의사 표현한 것”
최근 수 년간 대법원은 연간 사건의 약 70%에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내렸다. 상고법원까지 올라간 사건 10건 중 7건이 본안 판단을 받지 못했고, 청구인은 그 이유도 알 수 없었다는 뜻이다. 심리불속행 제도는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자는 취지로 1994년 도입됐는데, 사건 수가 늘어날수록 대법원이 심리불속행으로 처리하는 비중도 커져 ‘대법원이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는 불만이 늘었다.

이번 사건에서 헌재가 심리불속행 제도 자체의 위헌성을 살피는 건 아니다. 과거에도 재판 당사자들이 ‘판결 이유조차 밝히지 않는 심리불속행 제도는 위헌’이라는 등 취지로 헌법소원을 낸 사례는 많았지만, 헌재는 “입법 목적을 고려하면 (대법원이) 그 이상의 이유를 기재하는 건 불필요한 부담만 가중시킨다”며 수 차례 합헌 결정을 내렸다. 녹십자 사건은 형사 소송과 행정 소송의 결론이 엇갈렸다는 점이 외관상 명백하다는 점에서 일단 사전심사의 문턱을 넘은 것으로 풀이된다.
법조계에서는 헌재가 ‘단순한 재판 불복은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법원의 권한이 남용됐을 때 제동을 걸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만한 상징적인 사건을 택했다고 평가한다. 헌재 연구관으로 일했던 김진한 변호사(법무법인 클라스한결)는 “심리불속행 제도가 대법원에게는 일종의 아킬레스건이고, 이 사건을 택하는 건 두 기관의 충돌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헌재로서는 상당히 용기를 낸 결정”이라며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결정이 남용되거나 선을 넘었을 때는 헌재가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도 “이전에는 심리불속행을 하면 안 되는 사건이라고 주장하면서 대법원에 상고를 해도 이미 대법원 결정이 나오면 다툴 수 없었다”며 “이제는 헌재가 다시 따져볼 수 있게 됐다는 점이 확인된 만큼, 앞으로는 대법원이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을 할 때 신중을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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