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 폭행, 총기 위협, 체벌…"그래도 못 떠나. 고용허가제는 족쇄"
37세 베트남 출신 노동자 A 씨가 술 취한 관리자에게 머리, 팔, 명치, 뺨을 맞았고 '4분 동안 22번' 박치기를 당했다.
34세 베트남인 응웬꽁투 씨는 영하 8도의 겨울밤 공장 밖에서 벌을 섰다. 강제로 반성문을 쓰거나, '머리가 없냐'라는 조롱도 일상이었다.
36세 방글라데시 출신 B 씨는 사장에게 망치로 맞았다. 사장은 평소에도 그에게 때리는 위협을 했고, 밀어서 넘어뜨리기도 했다.
25세 방글라데시인 라키불 이슬람 씨는 사장 아들에게 '전화를 잘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머리채를 잡히며 뺨을 맞았다.
네팔 이주노동자 C 씨는 관리자에게 쇠구슬을 쏘는 사제 총기로 위협당했다. 단지 그가 '화가 났다'는 이유였다.
최근 연이어 보도되며 사회적 공분을 산 이주노동자 폭행·괴롭힘 피해 사건이다. 모두 지난 5개월 새 일어났다.
피해자들은 가혹행위를 당해도 사업주의 눈치를 보고 피해를 참아야 하는 처지였다. 이주노동자의 이직을 엄격히 제한하고 직업 선택의 권한을 사업주에게만 부여하는 고용허가제 구조에서, 자신을 구제할 수단을 찾지 못한 것이다.
노동절을 하루 앞둔 30일 오전 이주노동자와 이주노동인권단체 등이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할 자유를 완전히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발언에 나선 에린 데이 민주일반노조 원어민강사지회장은 자신을 "현대판 노예"라고 불렀다. 고용허가제는 물론 회화지도 비자 등 현행 이주민 고용 비자제도가 사직과 이직의 자유를 전혀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도권에서 어학강사로 일하는 그는 "우리는 중도 사직이나 이직을 하려면 사업주의 허락과 이적동의서가 필요하다"며 "이 구조 속에서 사업주는 강사의 일자리, 임금, 주거, 귀국할 능력 모두를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용허가제를 "학대하는 고용주를 양산하는 제도"라고 말했다.
이달 자신이 일하는 회사의 사장 아들에게 폭행을 당했던 방글라데시인 이슬람 씨도 기자회견 대열에 섰다. 그는 "우리는 조금만 잘못해도 너무 강력하게 혼나거나 폭력을 당한다"며 "다 우리가 자유롭게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어서, (사장 등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슬람 씨는 "(폭행, 괴롭힘은) 너무 많이 벌어져 왔다. 앞으로 이런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우리는 계속 싸우고 있다"며 "사업장을 변경할 자유를 보장해달라"고 호소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위원장도 "사업주가 사업장 변경부터 계약 기간 연장, 재입국 가능 여부에 대한 권한까지 모두 갖고 있기에, 아무리 괴롭힘 당하거나 일터가 위험해도 사업주 동의 없이 그만둘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주노동자들은 제대로 신고도 못 한다"며 "증거 확보가 너무 어렵고, 증거가 있어도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사장 얘기부터 들어준다"고 비판했다.

외국인고용법은 사업주의 계약 위반이나 부당 처우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이주노동자의 이직을 허용한다. 그러나 최정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위험한 작업환경과 과도한 노동강도, 폭언과 모욕은 물론, 심지어 폭행을 당해도 사업장 변경 사유로 쉽게 인정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반박했다.
나아가 "사업장을 떠날 수 있다고 해도 고용노동부가 알선한 사업장으로 가야 하기에, 다음 사업장이 지금보다 나을지 알 수도 없고 이직 과정에서 3개월 동안 소득 없이 버텨야 한다"며 "이 기간에 새 사업장을 못 구하면 비자가 말소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7일 이주노동자 노동존중 캠페인을 펼치는 등 이주노동자 노동권 보호 의지를 내비쳤으나,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위선과 기만"이라고 날을 세웠다.
참가자들은 "사업장을 벗어난 최소한의 자유조차 보장하지 않으면서 이주노동자 존중을 운운하는 것은 이주노동자를 향한 기만"이라며 "이주노동자 대상 중대범죄가 더 일상화되기 전에 폭행과 괴롭힘, 사업장 변경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이주노동자가 회사를 그만둘 자유 △지역 간 이동을 막은 지역제한 규제 철폐 △이직을 위한 이적동의서 요건 폐지 △단순 노사 상호합의를 통한 이직 허용 등을 주장했다.
또 사업주만이 아니라 이주노동자도 자신의 체류기간 연장과 재입국을 당국에 신청할 수 있어야 하며, 고용노동부 등이 일방으로 지정하는 사업장이 아니라 자신이 일할 곳을 선택할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아가 이주노동자 인권을 침해하고 괴롭힘, 폭행, 사망 등을 일으킨 사업장은 이주노동자 고용을 영구 제한하고, 그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회견을 끝내고 요구 조건이 담긴 서한을 청와대 측에 전달했다.

[손가영 기자(bad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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