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서 못 팔아" 삼성전기 FC-BGA가 귀하신 몸이 된 이유
칩렛 넓어지며 생산 능력이 못 따라가

인공지능(AI) 인프라 확장 속도가 공급망의 한계를 밀어붙이면서 반도체 패키지 기판이 새로운 병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FC-BGA) 수요가 생산 능력을 웃도는 상황이 이어지며 단순한 부품이 아닌 AI 서버 성능과 안정성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로 위상이 격상되는 흐름이다.
30일 진행된 1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삼성전기는 FC-BGA의 수요가 현재 회사의 생산 능력을 완전히 상회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는 재고 부족이 아닌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해 고사양 패키지 기판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전쟁'이 벌어진 결과다.
AI 확장 속도 가속화
기판 공급 한계 직면
특히 서버 및 AI용 기판은 일반 PC용보다 층수가 높고 면적이 넓어 고도의 공정 기술이 요구되는데 현재 삼성전기의 기존 라인만으로는 이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운 임계점에 도달한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기는 유례없는 공급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전사적인 태스크포스(TF)를 조직하여 대응 중이다.
TF는 단순히 라인을 돌리는 수준을 넘어 고객사별 맞춤형 수요를 면밀히 분석하고 단계적인 증설 투자를 집행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삼성전기 측은 "주요 고객사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공급 확대를 위한 추가 투자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며 공세적인 확장을 예고했다.
기판뿐만이 아니다. 삼성전기는 자동차 전장 등 곳곳에 필수적인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등 고부가 가치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전동화와 AI 서버, 자율주행 등 전방 산업의 수요가 동시에 살아나면서 실적 개선 속도는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삼성전기가 FC-BGA 증설 투자를 확정 지을 경우 글로벌 패키지 기판 시장 내 점유율을 압도적으로 높이는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인공지능 반도체는 일반 칩보다 수십 배 많은 데이터를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기에 칩과 메인보드를 연결하는 통로인 기판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FC-BGA는 미세한 범프(Bump)를 통해 칩과 기판을 직접 연결하여 신호 손실을 최소화하고 전송 속도를 극대화한다. 일반 기판이 좁은 골목길이라면 FC-BGA는 거대 AI 칩이 뿜어내는 데이터 폭풍을 감당할 수 있는 '왕복 100차선 고속도로'와 같기에 대체 불가능한 자원이다.
AI 인프라 핵심 요소

데이터센터 서버용 FC-BGA는 넓기만 한 게 아니라 20층 이상의 층수를 쌓아 올려야 하는 초고난도 기술의 집약체다. 층수가 높아질수록 기판이 휘어지거나 회로가 단선될 위험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는데 이를 완벽하게 수율로 잡아낼 수 있는 업체는 전 세계적으로 삼성전기를 포함한 극소수뿐이다.
데이터센터는 상상을 초월하는 열을 발생시킨다. 이 열을 제대로 배출하지 못하면 수천억 원짜리 인프라가 멈춰버린다. 삼성전기의 고사양 기판은 열팽창 계수를 정밀하게 제어하여 칩과 기판 사이의 뒤틀림을 방지하고 효율적인 방열 구조를 제공한다. 즉 빅테크 입장에서 삼성전기의 기판을 쓴다는 것은 단순 부품 구매를 넘어 AI 서버의 '안정성'과 '생존'을 담보 받는 것과 같다.
최근 AI 칩은 여러 개의 칩을 하나로 묶는 '칩렛(Chiplet)' 기술을 사용하며 기판의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커졌다. 기판 하나가 차지하는 면적이 넓어지면 생산 라인 하나에서 뽑아낼 수 있는 수량 자체가 물리적으로 줄어든다. 생산성은 떨어지는데 수요는 폭증하니 물건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된 것이다.
'조연'에서 '핵심'으로
기판 산업 위상 변화
과거 기판은 반도체 뒤를 따라가는 '조연'이었으나 이제는 최첨단 기판이 없으면 엔비디아의 최신 GPU는 제조가 불가능하다. 삼성전기는 이 지점을 정확히 파고들어 단순 제조사가 아닌 '전략적 파트너'의 위치로 올라섰다. 빅테크들이 앞다투어 삼성전기와 협력하려는 이유는 지금 이 기판을 확보하지 못하면 AI 주도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할 수 있다.
☞FC-BGA = 반도체 칩과 기판을 미세 범프로 직접 연결하는 패키지 기판. 고속 데이터 전송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어 AI 서버용 고성능 반도체에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칩렛 = 여러 개 반도체 칩을 하나로 결합해 성능을 높이는 설계 방식. 개별 칩을 조합하는 구조로 확장성이 높지만 기판 크기와 설계 난도가 함께 증가한다.
☞수율 =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생산된 제품 중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비율. 수율이 높을수록 생산 효율과 수익성이 개선된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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