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산마을, '무장애 아파트' 새 기준 제시한다

정호진 2026. 4. 30. 15:4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장애·비장애 공존하는 '포용형 주거모델' 구축
유니버설 디자인 적용한 맞춤형 주거공간 구현
공원까지 연결되는 무장애 생활권 확장 추진
민간·시민 협력 기반 통합형 주거 실험 본격화
[지데일리]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누구나 살 수 있는 집’의 기준을 다시 쓰려는 시도가 시작된다. 물리적 공간의 경계를 넘어 삶의 방식까지 바꾸는 실험이 성북구 종암동에서 펼쳐진다.
개운산마을 가로주택정비사업 조합 제공

서울 성북구 종암동 개운산마을 가로주택정비사업조합이 다음달 6일 사단법인 무의와 ‘장애 없는 공간, 곁이 있는 삶: 포용적 아파트 공동체 실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다. 이번 협약은 개운산마을의 자체 브랜드 ‘커먼즈 종암’ 조성 과정에서 추진되는 것으로, 주거와 돌봄, 접근성을 통합한 새로운 주거 모델 구축을 목표로 한다.

핵심은 130세대 규모 단지 내 D동 로우하우스 10세대 가운데 4세대를 장애인 맞춤형 주거공간으로 설계하는 데 있다. 다양한 신체 조건을 가진 주민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해당 세대는 1층을 중심으로 휠체어 이용자의 이동 편의에 초점을 맞춰 주방, 거실, 침실, 화장실까지 제약 없는 동선을 구현하고, 턱을 최소화해 공간 간 연결성을 높였다. 2층은 보호자와 가족을 위한 구조로 계획해 돌봄과 독립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단지 내부에 머무르지 않고 외부 환경까지 확장한 점도 주목된다. 개운산마을은 인접한 개운산공원과 단지를 직접 연결하는 전용 엘리베이터와 보행육교 설치를 추진 중이다. 경사와 계단에 가로막혔던 공원 접근을 개선해 휠체어 이용자와 보행 약자도 자연과 여가를 일상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이번 협약은 설계 자문을 넘어 주거·환경·운영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형 무장애 모델 구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조합이 기획과 설계, 운영을 주도하고 무의는 자문과 성과 분석을 맡는다. 양측은 공간환경과 사용환경을 함께 설계하며 ‘누구나 오갈 수 있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주거’를 구현한다는 방침이다.

협력 원칙은 △무장애 우선 △통합적 접근성 △사회적 확산이다. 물리적 구조 개선을 넘어 이용 경험과 권리까지 포함한 접근성을 확보하고, 이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단위 세대뿐 아니라 커뮤니티 시설 전반에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하고, 단지 내외 보행 동선의 연속성을 확보한다. 또한 차별 없는 이용 권리를 관리 규약에 반영하는 제도적 기반 마련에도 나선다.

개운산 일대 접근성 개선도 병행된다. 공원과 단지를 연결하는 동선 체계를 구축하고, 시민 누구나 이용 가능한 공원 환경 개선 방안을 도출할 계획이다. 나아가 장애와 비장애가 공존하는 커뮤니티케어 기반 주거 모델을 개발해 정책 제안과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협력 방식 역시 실험적이다. 기획부터 설계, 입주 이후 운영까지 전 과정에서 공동 검토를 진행하고, 실제 운영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과를 분석·보완한다. 공동 브랜딩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사회적 가치 확산에도 나선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단법인 무의는 ‘장애를 무의미하게’라는 모토 아래 접근성 개선 활동을 이어온 비영리 단체다. 대표 사업인 ‘모두의 1층’은 건물 입구의 작은 턱에 경사로를 설치해 이동 약자의 접근성을 높인 사례로, 유모차 이용자와 물류 노동자 등 다양한 시민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보편적 설계 모델로 평가받는다.

홍윤희 무의 이사장은 개인적 경험을 계기로 이동 약자의 권리를 사회적 의제로 확장해온 인물이다. 그의 딸 유지민 양은 태어나자마자 척추 종양 수술을 받고 수차례 항암·방사선 치료를 견뎌낸 뒤 현재 휠체어로 생활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접근성 문제를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일상의 문제로 바라보게 만든 출발점이 됐다.

개운산마을 조합은 이번 협약이 특정 계층을 위한 배려를 넘어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목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주거 내부 설계와 외부 접근성을 아우르는 ‘열린 주거’를 통해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는 포부다.

한편 커먼즈 종암은 물리적 주거를 넘어 다양한 삶과 관계가 공존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이번 협약과 접근성 개선 계획이 현실화한다면 ‘함께 살아가는 도시’를 구현하는 선도 사례로 자리잡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