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귀신들 뭐지? 전설에서 도시괴담으로 돌아온 귀신들('기리고')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6. 4. 3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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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고’는 어떻게 K-도시괴담의 새로운 공포를 꺼냈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어플에 귀신이라도 들렸어?" 맞다. 넷플릭스 새 시리즈 <기리고>는 바로 그 귀신 들린 어플이 공포의 소재다. 고등학생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이 어플은 원하는 소원을 이룬 자에게 반드시 대가를 요구한다. 그건 죽음이다.

넷플릭스 시리즈답게 시작부터 <기리고>가 보여주는 장면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한 여고생이 제 목을 커터칼로 자르는 장면이니 말이다. 처음에는 너무 끔찍해 보기 불편한 이 장면을 왜 굳이 제대로 보여줄까 싶지만, 계속 보다 보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사실 <기리고>가 체감하게 만드는 끔찍함은 신체 절단이나 제 눈을 제 손가락으로 찌르는 것 같은 하드고어적인 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서비스 된 후 넷플릭스 공식 순위사이트 비영어권에서 4위에 올랐고, 글로벌 OTT 순위사이트 플릭스 패트롤에서는 글로벌 3위를 차지했다. 공포 시리즈로서는 꽤 괜찮은 성과다. <기리고>가 이런 성과를 낸 데는 '귀신 들린 어플' 같은 신박한 소재와 하드고어적인 공포의 자극성 때문만은 아니다. 이 작품은 8부작의 구성 안에 다양한 결의 재미요소들을 담아냈다.

친구 최형욱(이효제)의 끔찍한 죽음을 마주한 학생들인 유세아(전소영), 임나리(강미나), 김건우(백선호), 강하준(현우석)이 기리고 어플의 저주를 알게 되고 소원이 이루어진 후 죽음의 24시간이 카운팅되는 가운데 이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상황들이 초반의 긴박감 넘치는 서스펜스를 만들어냈다면, 그 저주를 감지한 무당 햇살(전소니)과 방울(노재원)이 이에 맞서는 과정은 마치 살을 날리고 살을 받는 액션(?)에 가까운 무속의 묘미를 더해줬다.

그러더니 기리고라는 귀신 들린 어플이 만들어지게 된 아프고도 끔찍한 권시원(최주은)과 도혜령(김시아)의 이야기가 나온 후, 엔딩으로 그 최초의 저주가 깃든 스마트폰을 찾아 파괴하려는 최종장의 대결이 펼쳐진다. 8회의 분량이지만 적절한 공포의 안배(?)가 느껴지는 구성이다. 너무 무섭고 끔찍한 장면들만 반복되지 않고 적절히 긴장을 풀었다 조였다는 균형 잡힌 밀당이 느껴진다.

<기리고>가 흥미롭게 다가오는 건, 한때 끔찍한 범죄에 밀려난 것처럼 보였던 귀신들이 현대적인 새로운 감각을 더해 되살아나고 있어서다. 저주 걸린 스마트폰 어플과 연결된 귀신은 지극히 이질적인 두 가지 요소가 합쳐짐으로써 그 자체로 공포감을 만든다. 즉 누구나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이라는 일상 속으로 들어온 귀신이라는 점이 그렇다.

여기에는 과학기술에 의해 탄생한 문명의 이기(스마트폰)에 대한 믿음이 귀신이나 저주 같은 비과학적인 요소에 의해 깨지는 순간이 담겨 있다. 그저 누군가와 통화를 하거나 정보를 검색하는 기능을 하진 스마트폰에 저주가 깃들게 되는 건 그걸 이용하는 자의 간절한 감정이나 소망 같은 게 투영돼서다. "넌 빌고 싶은 소원 있어?" 같은 대사에 담긴 것처럼 <기리고>에 등장하는 학생들은 믿거나 말거나 소원을 들어준다는 어플에 자신의 소망을 드러낸다.

1등 하게 해달라는 소원이 맨 처음 등장하고, 국대가 되기 위해 받아야 하는 훈련 때문에 데이트를 하지 못하는 연인이 훈련을 받지 않게 해달라는 소원이 등장한다. 이 소원의 밑에 깔려 있는 건 학생들이 처한 현실적 경쟁 상황들이다. 하지만 그러한 자신의 소원이 저주로 돌아온다는 걸 알게 된 학생들은 이제 친구가 죽을 것을 걱정해 그를 살려 달라 소원을 비는 반전을 보여준다. 친구를 살리는 대신 자신이 죽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경쟁 현실이 만들어낸 소망과 그 결과가 불러온 저주, 그래서 이를 막으려는 친구들의 연대는 그래서 이 현실을 꼬집는 메시지를 담는다. 이제 학생들은 자신들의 소망이 사실은 더 밑에 깔려있는 공포감(경쟁 현실이 만들어낸)에서 비롯된 거라는 걸 알게 되고, 이를 직면하고 뚫고 나오는 과정을 거쳐서야 그 저주를 풀 수 있다는 걸 무당과의 공조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 유세아가 자신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근원적인 공포를 마주하고 깨쳐나가는 과정이 최종장의 대결에서 펼쳐지는 건 그래서다.

역시 공포영화로 200만 관객을 넘긴 <살목지>에서도 그 물귀신이 출몰하는 저수지로 사람들을 이끄는 내비게이션이 등장한다. 어쩌면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 같은 건 우리를 보다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문명의 이기가 아닌가. 하지만 그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이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한다는 이야기는, 이러한 문명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깨는 공포를 불러온다. 귀신이 과거 전설에서 걸어 나와 도시괴담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들어오게 되는 지점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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