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희소병 환자들 목숨이 걸린 청원, 더 늦기 전에 국회가 답해야 한다

폰히펠린다우(VHL) 증후군 진단을 받은 딸의 엄마 A씨가 국회에 ‘국민 동의 청원’을 낸 것은 지난 2024년이다. 그의 딸은 2021년 VHL 진단을 받았다. 진단 3개월 만에 신장과 난소, 췌장, 부신에 종양이 발견됐고 항암 치료에 들어갔다. 암이 전이되면서 청력을 잃었고, 망막에도 혈관모세포종이 올라왔다. A씨가 딸을 데리고 다닌 병원 진료과만 12개에 이른다고 한다.
VHL 증후군은 5만3000명 중 1명이 걸리는 희소병이다. 치료제가 없는 건 아니다. 미국 머크(MSD)가 개발한 ‘웰리렉(성분명 벨주티판)’이 있다. 국내에서도 2023년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받았다. 문제는 가격이다. 한 달 치가 2261만원이다. 1년이면 약값이 2억7132만원에 이른다. 대기업 임원 연봉을 다 털어 넣어야 할 정도다.
이 약은 식약처 승인 후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받게 해달라는 신청을 두 차례 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결국 A씨가 국회에 국민 동의 청원을 올렸다. 그는 “약이 눈 앞에 있어도 약값 때문에 먹을 수 없는 현실”이라고 했다. A씨 청원은 국민 5만명 이상이 동의하면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로 올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복지위 청원심사소위원회는 청원이 올라온 지 2년 만인 지난 29일에야 첫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도 아무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건강보험 급여 적용 여부는 결국 행정부의 영역이라는 내용을 확인하는 차원에 그쳤다. A씨의 청원과 함께 올라와 있는 각종 치료제에 대해 ‘검토 중’이라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설명만 들었다.
다음 청원심사소위는 언제 열리는 지를 기자가 물었더니 “6·3 지방선거 이후로 봐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국회 상임위 구성은 다음 달에 바뀌게 된다. 새로 구성된 복지위가 A씨 청원을 신속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이번에 아무 결론 없이 끝난 청원심사소위에 참석했던 한 국회의원은 “소위를 열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 과연 그럴까. 소위가 지난 2년 간 손을 놓고 있는 동안 목숨을 잃은 희소병 환자가 있지는 않았을까. 다음 소위가 하루 빨리 열리기를 간절하게 기원하는 희소병 환자와 가족들의 심정은 어떻겠나. 국회의원 가족 중에 희소병 환자가 있었다면 이렇게 했겠나. 국회가 더 늦기 전에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라고 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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