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유산과 현대적인 감각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북마케도니아의 심장이자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 스코페를 여행했다. 테레사 수녀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은 고대 로마와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오스만 제국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풍부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자랑하는 곳이다. 대홍수와 지진, 유대인 박해에도 살아남은, 끈질긴 ‘회복력’을 가진 곳이기도 하다. 현대적인 도심과 구시가지 전역을 유유히 둘러보며 그 정체성을 살폈다.
현대적인 건물이 들어선 도심의 심장부로 통하는 마케도니아 광장 중앙에는 북마케도니아의 민족 영웅인 알렉산더 대왕 동상이 있다.
마케도니아 광장을 따라 스코페 여행 첫걸음
(첫, 두 번째) 도심의 가장 큰 대성당인 오흐리드의 성 클레멘트 교회, (세 번째)구소련 스타일의 건물이 예스러움을 물씬 풍기는 로컬 동네 풍경
스코페는 발칸반도에 위치한 북마케도니아의 수도다. 인구 44만 명이 거주하는, 수도치고는 도시 규모가 크지 않은 편이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마케도니아 광장이다. 도심 광장을 보면 낯선 도시의 위용을 단박에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북마케도니아의 민족 영웅인 알렉산더 대왕 동상이 말을 탄 전사로 표현되어 웅장하게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곳 도시의 존재감은 규모가 아닌 끈질긴 ‘회복력’에서 비롯된다. 현대 스코페의 정체성 또한 ‘회복력’에서 기인한 생존 도시라는 타이틀이 붙는다. 1962년 대홍수, 이듬해인 1963년 대지진 이후 87개국이 도시 재건을 도왔고, 이에 힘입어 스코페는 여전히 살아 남아 존재한다. 대지진 당시 도시를 강타한 지진으로 전체 건물의 약 75%가 불과 수 분만에 산산조각 났으며 이로 인해 약 1,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좌로부터)대지진의 여파로 5시 17분에 멈춰 있는 옛 기차역의 시계. 현재 기차역은 스코페 시립 박물관으로 바뀌었으며, 박물관 외벽의 시계도 5시 17분에 맞춰 있다. 마지막 사진은 유물 및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는 스코페 시립 박물관 내부.
당시 대지진의 여파로 시계가 영원히 1963년 7월 26일 5시 17분에 멈춰 있는 옛 기차역은 이제 스코페시립박물관으로 탈바꿈되어 기억과 재건을 상징하는 장소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선사 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스코페와 그 주변 지역의 역사를 보여주는 상설전과 함께 다양한 유물 및 소장품이 또다른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이후 스코페를 사회주의 세계의 모범 도시로 만들려는 대규모 재건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넓은 대로와 대담한 형태의 건축물로 이루어진 새로운 도시 계획이 세워졌고, 그것이 현재의 스코페로 이어졌다.
평생 사랑을 실천한 테레사 수녀의 고향
테레사 수녀의 삶의 궤적을 엿볼 수 있는 테레사 수녀 기념관 내부 전시장
십여 년 전, 봉사 활동 차 인도 콜카타에 위치한 ‘마더 테레사 하우스(Mother Teresa House)’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이곳은 1950년 테레사 수녀가 설립한 로마 카톨릭 수녀회인 사랑의 선교회 소속 수녀들의 본거지이자, 테레사 수녀가 평생 동안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만들어주고 그들을 도운 곳이다. 삶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임종자의 집’에서 한 달간 봉사를 하면서 ‘죽음’을 통해 ‘사랑’을 배웠었다.
테레사 수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인도의 빈민가로,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한평생을 살아간 배경은 오로지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을 실천하기 위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테레사 수녀는 성경의 한 구절인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를 묘비명으로 썼다.
(좌)기념관 앞에 설치된 테레사 수녀 동상 (우)가톨릭 사제들이 일주일에 두 번 미사를 집전하는 예배당
마케도니아 광장을 뒤로 하고 몇 백 미터쯤 걸었을까. 테레사 수녀 기념관 앞에 세워진 그녀의 동상을 보는 순간 절로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인도에서 봉사하던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당시의 감정, 경험, 배움이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테레사 수녀를 통해 북마케도니아라는 나라와 스코페라는 도시를 처음 접하게 되었고, 언젠가 꼭 한번 그녀의 고향을 방문하고 싶다는 소망이 마침내 현실과 만났다.
테레사 수녀는 1910년 8월 26일 스코페에서 알바니아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스코페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자 북마케도니아 출신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테레사 수녀를 기념하는 세계 유일의 기념관이 스코페 도심에 자리해 있다. 소박한 전시공간과 예배당은 테레사 수녀의 삶의 철학이 오롯이 반영된 모습이다. 가톨릭 사제들이 일주일에 두 번 미사를 집전하는 예배당은 오직 빛만이 존재하는 무한한 공간으로 건축된 것이 특징이다.
(좌)테레사 수녀가 인도 콜카타에서 착용한 흰 사리가 전시되어 있다. 우)테레사 수녀가 1981년 한국 방문 당시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촬영한 사진
전시 공간 내부에는 테레사 수녀의 어린 시절부터 인도주의 활동, 서거에 이르는 삶의 궤적을 따라갈 수 있는 각종 사진과 문서, 전시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 가장 눈에 띈 건 테레사 수녀가 1981년 한국 방문 당시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었다. 두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모습을 한참 동안 응시한 채 ‘사랑’을 떠올렸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 않을까.
홀로코스트와 요새, 작은 숨결이 만드는 큰 울림
마케도니아 광장에서 석조 다리를 건너면 올드타운 초입에 들어선다. 15세기 건설된 석조 다리는 스코페의 대표적인 명소로 현대적인 도심과 구 시가지를 연결한다.
15세기에 건설된 석조 다리가 현대적인 도심과 구시가지를 잇는다
올드타운 초입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대인들이 강제 이송되기 전까지 이 도시 내 유대인 생활의 중심지였던 스코페의 유대인 지구였다. 이곳에 위치한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먼저 찾았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북마케도니아 유대인의 약 98%가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비극적인 사건을 되짚어볼 수 있는 장소다.
북마케도니아의 유대인 역사는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1년 불가리아에 점령되면서 거의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당시 나치 독일의 동맹국이었던 불가리아는 자국의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에서 구해냈지만, 북마케도니아의 유대인들을 강제 이송하는 데에는 적극 협력해 양면적인 모습을 보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희생된 7,144명의 유대인을 기리는 홀로코스트 기념관
1943년 스코페를 포함한 북마케도니아 전역의 유대인 공동체는 불가리아 당국에 의해 체포되어 폴란드로 강제 이송되었고, 그곳 강제수용소의 가스실에서 7,144명이 학살당했다. 당시 북마케도니아 유대인 가운데 살아남은 이들은 약 150명에 불과했을 정도로, 거의 모두 학살당해 ‘북마케도니아는 유대인이 없는 나라’라는 칭호까지 얻는 비극적인 상황이 되어버렸다.
거울 유리로 된 기념관의 입구는 기묘하게도 낯선 느낌을 자아낸다. 그 안으로 들어서면 이제는 거의 사라져가고 잊혀져 가는 유대인 문화를 기리는 전시물이 방문객을 맞이하는데, 작은 공간이지만 그 울림은 거대해 먹먹한 감동을 안긴다. 기념관 내부는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기념관에서만큼은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희생된 7,144명의 홀로코스트와 발칸반도 유대인의 역사를 기리는 장소로 활용하는 데 집중하기 위함이다.
스코페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칼레 요새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나와 이번에는 언덕길로 향했다. 스코페 구시가지의 중심부, 바르다르 강 오른쪽 둑 위에 우뚝 솟아 있는 칼레 요새에 올랐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요새가 건설된 최초의 시기는 서기 6세기,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이후 여러 차례 지진과 홍수 등의 자연재해로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현재의 요새는 10세기에서 11세기에 걸쳐 비잔틴 요새 유적 위에 추가로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매우 견고하고 튼튼한 성채로서 성문과 성벽은 다듬은 돌로 만들어져 마치 광택을 낸 듯 반짝이는 건축적 특징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1963년 대지진으로 인해 다시 부분적으로 파괴된 이후 최근까지 재건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성벽을 따라 걷는 산책로가 제법 잘 정돈되어 있다.
한때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지층이 이곳 요새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는 발칸반도에서 스코페가 수천 년 동안 중요한 교통로였음을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러 역사적 사실과 가치를 차치하더라도, 이곳 요새는 방문객에게 더없이 훌륭한 산책로 역할을 한다. 성벽을 따라 걷는 산책로가 제법 잘 정돈되어 있어 산책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 길을 유유히 따라가며 도심과 구시가지, 그 너머 샤르 산맥의 탁 트인 전경을 감상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요새 위에서 내려다본 스코페의 풍경은 홀로코스트 기념관에서 느꼈던 감정을 오롯이 끄집어냈다. 작지만 큰 울림이 있는 도시, 그 풍경을 한눈에 담으며 다시 구시가지로 향했다.
칼레 요새에서 바라다본 구시가지 전경. 전망대에서 바르다르 강을 따라 펼쳐진 도심의 풍경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스만 제국 시대의 흔적이 그대로, 올드바자르
구시가지의 하이라이트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시장이 중심을 이룬다. 스코페 올드바자르는 발칸반도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시장 중 하나로 꼽힌다. 적어도 12세기부터 스코페의 무역과 상업의 중추적 역할을 해온 장소로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게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이곳 시장은 급속도로 발전하여 도시의 주요 상업 중심지가 되었다. 당시 약 30개의 모스크, 무역상인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수많은 여행자 숙소가 올드바자르를 구성했으나 오늘날 그 명성을 찾아보긴 쉽지 않다.
발칸반도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시장 중 하나인 스코페 올드바자르
다른 명소와 마찬가지로 올드바자르 또한 지진과 화재, 홍수,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 동안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이후 여러 차례 재건되었지만 과거의 명성을 쫓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코페 시민들에게 올드바자르는 여전히 도시의 눈부신 발전과 성장, 변화를 나타내는 상징이자 이들의 자부심을 표현하는 장소로 인식된다.
오스만 제국 시대 올드바자르 지역에 수많은 건물이 들어섰다. 그중 대다수는 무슬림 주민들을 위해 지어진 전형적인 오스만 양식의 모스크가 차지한다. 1492년에 지어진 무스타파 파샤 모스크(Mustafa Pasha Mosque)가 대표적이다. 오스만 제국의 귀족이자 군사지도자인 무스타파 파샤가 지은 것으로, 오래된 기독교 부지에 들어선 북마케도니아에서 가장 우아한 이슬람 건축물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 복합 단지에는 모스크와 무스타파 파샤의 무덤, 그의 딸 우미의 시신이 안치된 석관, 분수 그리고 다른 건물의 잔해가 자리해 있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 지어진 무스타파 파샤 모스크
콘스탄티노플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모스크는 돔의 지름이 16.3미터에 달한다. 종유석으로 장식된 4개의 대리석 기둥과 3개의 작은 돔, 내부에 장식된 서예 비문, 석회암으로 설계된 미나레트 등이 주요 건축적 특징으로 나타난다. 지진으로 파괴된 일부 모스크 건물은 튀르키예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재건 공사가 이뤄졌는데, 초창기 건물 양식을 대부분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스만 제국 시대를 엿볼 수 있는 올드바자르의 랜드마크로 평가받는다.
오스만 제국 시대의 영향력은 올드바자르를 구성하는 음식점에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수십 년째 같은 자리를 지켜온 맛집 대다수는 이곳 올드바자르에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의 맛집에는 ‘체바피’가 주요 메뉴다. 발음에 따라 ‘케바피’라고도 일컬어지는 이 요리는 오스만 제국 통치 기간 동안 고기 조각과 훈제 라드를 꼬치에 꽂아 불에 구워 쉽게 만들어 먹던 것으로 오늘날 북마케도니아의 국민 음식이라 불린다. 다진 고기를 구운 요리로, 북마케도니아뿐 아니라 발칸 반도에 있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를 즐겨 먹는다.
북마케도니아의 대표 맥주인 스콥스코 맥주(좌)와 오스만 제국 시대의 영향을 받은 고기 요리인 ‘체바피’(우)
식당에서 체바피를 주문하면 보통 접시나 납작한 빵에 5~10개씩 담아 나온다. 겉모습만 보면 소시지 같기도 하다. 체바피는 흔히 다진 양파나 불가리아식 샐러드인 숍스카 샐러드와 곁들여 먹는다. 숍스카 샐러드의 기본 재료는 토마토와 오이, 적양파다.
여기에 핵심은 이들 채소 위에 눈처럼 수북이 쌓아 올린 상당한 양의 치즈다. 샐러드라고 하기에는 치즈 맛이 강하지만 의외로 고기와 꽤 조화롭다. 체바피를 주문할 때 북마케도니아의 대표 맥주인 스콥스코 맥주도 빼놓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