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보물섬 잃어 버린 110만 비트코인의 행방을 찾아

비트코인은 창조자가 사라졌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 없고 누구도 조종할 수 없고 공격할 단일 지점이 없다는 점이 비트코인의 가장 강한 신뢰 기반이었다. 그런데 뉴욕타임즈가 최근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로 애덤 백을 지목하면서 오래된 질문이 다시 시장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사토시가 누구냐는 호기심은 단순한 미스터리가 아니다. 110만 개로 추정되는 사토시 보유 비트코인의 행방과 양자컴퓨터 시대의 보안 문제와 미국 주도의 하드포크 가능성까지 연결되는 거대한 정치 경제적 문제다.
오태민 한양대 교수는 뉴욕타임즈 보도를 졸속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애덤 백이 사토시 후보군 가운데 한 명인 것은 맞지만 99퍼센트에 가까운 확신을 가질 만한 근거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즈가 제시한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문체 분석과 기술적 족보, 그리고 기자의 촉이다. 테라노스 사기 사건을 파헤친 존 캐리루 기자의 탐사 감각은 무시할 수 없지만 이번 사안은 그 정도 직감만으로 결론을 내리기에는 너무 큰 문제라는 것이다.
애덤 백이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는 해시캐시를 만든 인물이다. 해시캐시는 디지털 공간에서 희소성을 만드는 아이디어와 연결된다. 이메일 스팸이나 디도스 공격을 막기 위해 일정한 연산을 수행한 컴퓨터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디지털 우표 개념이었다. 비트코인 백서도 해시캐시를 인용했다. 겉으로 보면 사토시가 자신의 선행 연구를 인용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오태민 교수는 이 논리가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봤다. 당시 암호학과 사이퍼펑크 세계에서 해시캐시는 거의 공통 참조점이었다. 할 피니도 자신의 작업증명 연구에서 해시캐시를 응용했고 닉 사보도 비트골드 구상에서 비슷한 족보를 공유했다. 해시캐시가 비트코인의 기술적 조상인 것은 맞지만 그 사실만으로 애덤 백이 사토시라고 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문체 분석 역시 결정적이지 않다. 사토시의 글에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영국식 철자를 쓰고 문장 사이에 두 칸 공백을 넣고 하이픈을 자주 활용했다. 이런 특징은 오래전부터 사토시 후보를 추적하는 이들이 주목해 온 단서였다. 2014년에도 문체 분석이 진행됐고 당시 가장 유력한 후보로 할 피니가 꼽혔다. 이번 뉴욕타임즈 보도에서는 애덤 백이 1순위로 나왔고 할 피니가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 간 차이가 압도적이지 않았다면 이것만으로 생존해 있는 애덤 백을 특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게 오태민 교수의 판단이다. 문체 분석은 유력 후보들 사이의 우세를 가늠하는 도구일 수는 있어도 불특정 다수 중 한 명을 확정하는 지문은 아니다.
오태민 교수가 더 강하게 주목하는 인물은 할 피니다. 그는 비트코인 등장 이전에 재사용 작업증명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비트코인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지점은 디지털 증표가 외부 자산을 대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가치를 갖는 구조다. 달러나 금을 토대로 한 전자 증표와 달리 비트코인은 스스로 희소성과 가치를 만든다. 이 발상은 닉 사보의 비트골드와 연결되고 이를 실제 시스템으로 밀어붙인 인물이 할 피니라는 설명이다. 할 피니의 재사용 작업증명에서 중앙화 서버 문제와 인플레이션 문제만 해결하면 비트코인에 매우 가까워진다. 비트코인은 난이도 조절과 탈중앙화 네트워크를 통해 이 두 문제를 풀었다. 오태민 교수는 이 기술적 연속성이 애덤 백보다 할 피니 쪽에 더 강한 학문적 지문을 남긴다고 봤다.
할 피니가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또 다른 이유는 사토시가 사라진 시점과 관련된다. 크레이그 라이트가 자신이 사토시라고 주장했을 때 진짜 사토시는 반박하지 않았다. 반면 도리안 나카모토가 사토시로 지목됐을 때는 사토시 계정이 자신이 아니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2014년에는 반응했지만 2015년에는 반응하지 않은 셈이다. 그 사이 사망한 유력 후보가 할 피니다. 이 때문에 크립토 세계의 오래된 해석은 사토시가 이미 죽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사토시의 실종은 비트코인의 핵심 철학과 맞물려 있다. 비트코인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탈중앙화다. 창조자가 남아 있으면 그 사람은 권위가 되고 공격 지점이 된다. 정부는 그를 압박할 수 있고 시장은 그의 말에 흔들릴 수 있다. 사토시가 사라짐으로써 비트코인은 단일 실패 지점을 제거했다. 메타나 다른 빅테크 기업이 비트코인 같은 네트워크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을 몰라서가 아니라 창업자와 회사라는 공격 지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창조자가 사라짐으로써 비로소 누구의 것도 아닌 네트워크가 됐다.
그런데 바로 그 사라짐이 새로운 문제를 만들었다. 사토시가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110만 개의 비트코인이다. 이 물량은 지금까지 움직인 흔적이 없다. 시장은 이를 사실상 잠긴 물량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양자컴퓨터 시대가 오면 문제가 달라질 수 있다. 초기 비트코인 주소는 공개키가 노출된 방식이라 양자컴퓨터 공격에 취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만약 국가기관이나 강력한 기술 주체가 먼저 이를 풀어낸다면 110만 개의 비트코인이 시장에 나올 수 있다. 이는 가격 충격을 넘어 비트코인 생태계의 신뢰를 흔드는 사건이 될 수 있다.
역설적으로 사토시가 살아 있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살아 있는 사토시가 직접 그 물량을 소각하면 불확실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소각은 아무도 개인키를 알 수 없는 주소로 비트코인을 보내는 방식으로 가능하다. 만약 사토시 지갑에서 이동이 발생하면 처음에는 시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사토시가 살아 있고 110만 개를 쓸 의향이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동 주소가 명백한 소각 주소로 확인된다면 상황은 반대로 바뀔 수 있다. 전체 발행량 2100만 개 가운데 110만 개가 사실상 영구 제거되는 셈이고 시장은 이를 희소성 확대와 불확실성 제거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논쟁은 하드포크 가능성과도 연결된다. 오태민 교수는 미국이 하드포크를 통해 비트코인을 장악하려는 시나리오가 공상만은 아니라고 봤다. 사토시 물량과 범죄에 연루된 물량과 장기 미사용 물량을 묶어 새로운 비트코인 체인에서 제외하고 공공재 성격의 물량을 새로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만약 블랙록 같은 금융기관이나 미국 정부와 관련된 주체가 이런 하드포크를 추진하고 기존 ETF가 새 체인만 추종하도록 설계한다면 시장의 힘은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다. 크립토 순수주의자들은 기존 체인에 남겠지만 일반 투자자는 가격이 붙는 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하드포크는 기술적으로는 단순한 코드 분기지만 경제적으로는 권력의 재배치가 될 수 있다.
오태민 교수는 미국 국방 관련 기관이 비트코인을 안보 자산처럼 연구하는 흐름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했다. 비트코인 자체를 지금 당장 보유하지 않더라도 하드포크 과정에서 새로운 장부를 만들고 공공재 물량을 확보하는 방식은 가능하다. 특히 사토시 물량은 중국 같은 국가가 양자컴퓨터로 먼저 인양할 수 있는 보물선처럼 비칠 수 있다. 미국이 이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하드포크를 주장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사토시 물량은 단순한 휴면 자산이 아니라 지정학적 명분이 된다. 결국 어떤 체인이 진짜 비트코인인지는 철학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시장 인프라와 유동성과 규제와 기관 자금이 함께 결정한다. 사토시 물량이 여기에 불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이 오태민 교수의 문제의식이다.
자산 토큰 이야기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오태민 교수는 새 책 <자산 토큰 없는 미래는 없다>를 소개하며 RWA 즉 실물자산 토큰화가 미국 금융 전략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봤다. 미국은 국채와 금융자산을 온체인으로 올려 전 세계에 쪼개 팔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나이지리아나 동남아시아 투자자도 잘게 쪼갠 미국 국채 토큰을 살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금융의 유통망 자체가 바뀐다. 비트코인이 탈중앙화된 화폐 철학의 실험이었다면 자산 토큰화는 기존 금융이 블록체인을 흡수하는 과정이다.
한국도 제도적 검토를 서둘러야 한다는 게 오태민 교수의 주장이다. 강남 아파트를 10만 원 단위로 쪼개 토큰화해 소유할 수 있다는 예시는 자극적이지만 핵심을 찌른다. 자산 가격 상승에서 배제된 사람들에게 소유권의 일부라도 나눌 수 있다면 세대와 계층 간 갈등을 완화하는 새로운 금융 도구가 될 수 있다. 물론 현실 정치에서는 쉽지 않은 이야기다. 부동산을 쪼개 거래하게 만드는 순간 투기와 규제와 조세와 소유권 문제가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팀이 필요하다.
사토시가 누구냐는 흥미로운 가십이기도 하지만 비트코인 생태계를 뒤흔들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비트코인은 창조자가 사라진 덕분에 탈중앙화의 신화를 얻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110만 개의 비트코인은 양자컴퓨터와 하드포크와 국가 전략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리스크가 됐다. 애덤 백이 사토시인지 할 피니가 사토시인지 단정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뉴욕타임즈가 살아 있는 인물을 지목한 것은 화제성은 크지만 책임도 크다. 잘못된 특정은 한 개인의 삶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고 시장에는 불필요한 혼란을 줄 수 있다.
비트코인의 가장 큰 힘은 아무도 통제하지 못한다는 믿음이었다. 하지만 제도권 금융과 국가 권력이 들어오면 그 믿음은 새로운 시험대에 오른다. 사토시가 누구냐는 질문은 과거를 캐는 고고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미래의 금융질서를 묻는 질문이다. 비트코인이 계속 탈중앙화된 자산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하드포크와 ETF와 국가 전략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재편될 것인지 그 갈림길에 사토시의 110만 개가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