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곧 부처” 마조의 한마디…남악형산과 강호의 선사를 찾아서 [정용식의 사찰 기행]

민상식 2026. 4. 30. 14:0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07) 중국 호남성 복엄사, 남대사

한국 불교 뿌리를 찾아서 (5)

중국 호남성 복엄사 입구

수많은 종교단체가 ‘유토피아 지상천국이 이뤄질’ 성지로 여기는 곳이 있다. 산의 능선이 닭의 볏을 쓴 용의 모습과 닮았고 산세가 변화무쌍하고 풍수지리학적으로도 뛰어나 통일신라의 오악(五嶽) 중 서악(西嶽)으로 나라의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곳이다.

845m밖에 안 되지만 지리산에 이어 2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계룡(鷄龍)산이다.

중국에도 이와 비슷한 곳이 있는데 오악 중 남악(南嶽)으로 도교와 불교의 성지로 불리는 호남성의 형산(衡山)이다.

중국의 2대 종교(사상)는 북방에서 싹튼 유교(공자)와 노자와 장자의 활동 무대인 남방에서 싹튼 도교이다.

외래 종교인 불교가 이런 틈바구니에서 성장하게 돼, 남방에선 도가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이 불교 선종에 자연스레 스며들게 됐다. 실제 남악형산을 주 무대로 선법을 펼쳤던 7조 회양은 ‘무위(無爲)의 법’을 얻고자 스승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불교와 도교의 성지 호남성의 남악형산
중국 호남성 남악형산 입구에 영수남악(靈秀南嶽) 심원지려(心願之旅)라고 새겨져 있다.

중국에도 국가 제사를 지내는 오악 명산이 있는데 동악 태산(산동성), 서악 화산(섬서성), 남악 형산(호남성), 북악 항산(산서성), 중앙 숭산(하남성)이다.

중국 속담에 ‘복(福)은 동배 바다처럼 가득하고 수명은 남산처럼 길기를’ 말이 있는데 여기서 남산은 남쪽을 대표하는 형산을 가리킨다. 예로부터 형산은 불교와 도교의 성지로 여겨져 사찰과 도관이 산 곳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중국 고대 가장 큰 제단인 ‘남악제묘’도 있다.

국가 중점 명승지로 지정된 곳이며 “마음이 원하는 여행, 빼어난 남악형산”(心源之旅 南岳衡山)이라 음각된 입구 자연석이 눈에 띈다.

선종 선사들의 수행도량들이 있어 불교도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길을 따라가되, 중간에 이르렀을 때 더욱 힘써야 하며 마음이 편안하지 않더라도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고생을 마다하지 마라”는 형산 도교사당 대련 문구를 시진핑 주석이 중국공산당 창립 75주년에 인용할 정도로 도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도교의 성지였던 이곳에 혜사 선사(515~577)가 40여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와서 567년 반야사(복엄사)를 창건함으로 불교를 뿌리내리게 하여 그 명성이 도교를 넘어섰다고 한다. 혜사선사는 남악에서 승단을 만들어 10여년 동안 법을 펼치며 양쯔강 남북으로 명성을 떨치다 577년 입적하여 절의 동쪽 언덕 삼생탑에 안치되었다. 혜사선사는 남악 형산의 개산조사로 추앙받았고 남악대사로 칭함을 받았다.

남악형산 입구 매표소에서 물안개 자욱한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일본군과 싸운 역사기념관을 지나 차로 20여분 지나니 명승 구역 중심에 복엄사가 나온다.

1300m 고지라서 상쾌한 공기와 풀 내음이 풍긴다. 복엄사에서 2㎞ 거리에 마조도일의 마경대도 있고, 혜사선사의 삼생탑도 있다.

마조도일과 쌍벽을 이룬 석두희천이 주석했던 남대사도 1㎞ 남짓 거리에 있다.

7조 남악 회양(677~744년)과 남악혜사의 복엄사
삼생탑

혜사선사의 유골을 안치한 삼생탑(三生塔)은 제자들이 전생의 모든 일을 뚜렷이 기억하는 혜사의 영겁불망(永劫不忘)을 잊지 않도록 혜사의 전생 유골이 나온 곳에 세웠다고 한다.

삼생탑

전생, 현생, 후생 등 삼생의 몸을 모셨다고 하는데 탑 아래에는 삼세를 기록한 석판 등으로 공원이 조성돼 있다. 혜사선사는 한국 천태종의 개조라고 하는 천태지의 대사의 스승이다.

혜사선사가 창건한 반야사에 육조혜능의 법을 계승한 남악회양이 713년 이곳을 선종도량으로 개설하고 남종선을 펼치게 됐다.

복엄사 산문에 걸린 천하법원(天下法源) 현판

복엄사 산문에는 육조의 법이 남악회양으로 이어졌음을 뜻하는 ‘육조고찰 칠조도량’이라는 대련과 천하법원(天下法源, 중국 불법의 발원지)이라는 현판이 있다. 반야사는 송나라 때 복엄이라는 스님이 사원을 중수하고 사방에 측백나무를 심어 복엄사로 개칭했다고 한다.

부처님의 탄생일에 산시성에서 태어난 7조 남악회양은 부모가 일찍이 온화하고 양보하기를 좋아한다고 해 이름을 양(讓)이라 지을 정도로 자비로운 성품이었다.

15세에 호북성 형주로 출가해 회양이라는 법명을 받고 ‘무위(無爲)의 법’을 얻고자 스승을 찾아 천리 밖 조계를 찾아가 6조 혜능에게 법을 물어 깨달음을 얻었다.

15년 동안 혜능을 모시면서 깊은 경지에 이르러 수많은 법제자 중 청원행사와 함께 혜능의 법통을 이어가게 됐다.

복엄사 대웅보전

그러나 달마의 예언대로 서로 다투기 쉬운 빌미가 되는 ‘부처의 금란가사’는 혜능부터 제자에게 내려가지 않고 달마로부터 내려온 조사위(祖師位)를 물러주지 않아 7조는 태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남악회양은 713년 조계를 떠나 남악 형산 반야사로 와서 31년을 주석하며 선풍을 떨치고 가장 많은 법제자를 두며 혜능의 법통을 이어 내려가 7조로 추앙받고 있다.

조계종 중앙신도회(회장 정원주)가 지난달 21~27일 ‘2026 중앙신도회 임원 중국 성지순례’를 진행했다. 사진은 중국 호남성 복엄사 대웅보전을 방문한 정원주 조계종 중앙신도회 회장(헤럴드·대우건설 회장) 모습.

‘이 세상 모든 것이 마음으로부터 생긴다(三界唯心)’, ‘마음이 곧 부처’를 설파했던 남악회양은 불세출의 제자 ‘마조도일’ 뿐만 아니라 신라의 승려(본여와 현승)도 제자로 뒀다고 한다.

복엄사에서 점심 공양을 위해 공양간이 있는 길로 들어가다 보니 우리의 산신과 비슷한 ‘남악신’이 봉안된 악신전(岳神殿)이 특이하게 대웅보전 앞쪽에 크게 자리하고 있는데 지붕만 보고 말았다.

복엄사 공양간 앞마당 나한송

공양간 앞마당에는 아름다운 나한송으로 꾸며진 정원 한편에 호랑이가 나타나 물이 나오게 했다는 우물 ‘호포천’있다.

호포천

대웅보전을 지나 뒤편 조당(祖堂)에 갔더니 개산조사인 혜사선사와 개법조사인 남악회양의 영정이 걸려있다.

조당에 걸린 혜사선사와 남악회양의 영정

산문 안쪽에는 혜사스님이 나무에 계(禊)를 줬다고 하는 고목 은행나무가 반겨준다. 산문 밖에도 아름드리 나무 네 그루가 있다.

산문 밖 아름드리 나무

“너의 발밑에서 말 한 마리가 생겨나리라. 그 말이 천하의 모든 사람을 밟아 죽이리라”며 혜능은 법제자 남악회양에게 수수께끼 같은 말을 했다.

남악회양에게서 위대한 제자, 마씨 성을 가진 조사 마조도일이 태어남을 예시한 것이었다.

어려운 수행을 마치고 남악회양으로부터 법을 받은 마조도일은 천민의 자손으로 천대받았던 고향에 금의환향하고자 했는데 동네 개울가 노파로부터 수모를 당하는 재미있는 일화를 겪는다.

“나는 쾌나 대단하신 스님이 오시는가 했더니 겨우 키장이 아들 녀석이 아닌가?”라는 노파의 비웃음에 천하를 움직일 위대한 선승 마조도 그 뒤로는 고향을 방문하지 않았다고 하니 ‘예수도 고향에선 대접받지 못했다’는 성경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8조 마조도일 (709~788)의 마경대
남악탑 입구 기단에 새겨진 ‘최승륜탑(最勝輪塔)’ 문구

마경대 광장에서 오른쪽 산자락에는 ‘남악탑’이라는 ‘선종7조 회양 대혜 선사탑’이 있다.

묘탑 입구 기단에 ‘가장 뛰어난 진리의 탑’이란 뜻으로 ‘최승륜탑(最勝輪塔)’이라 음각돼 있다.

마경대 입구

마경대 광장 한편에는 마조도일이 기거했던 법당 ‘전법원’도 있고, 광장 왼쪽 언덕길을 10분여 올라가니 2평 남짓 10도 정도 경사진 반석의 ‘마경대’가 있다.

마경대

반석 끝은 낭떠러지이다.

온종일 낭떠러지 끝에 앉아 고지식하게 좌선만 하는 마조도일을 깨닫게 하려고 스승 남악회양이 기왓장을 갈았다는 그 자리다.

마경대 반석에 새겨진 ‘조원(祖源)’ 문구

반석에는 조원(祖源)이 붉게 음각돼 있다.

조사의 근원, 발원지란 뜻으로 후손 누군가가 새겼을 것이다.

조계종 중앙신도회(회장 정원주)가 지난달 21~27일 ‘2026 중앙신도회 임원 중국 성지순례’를 진행했다. 사진 맨 오른쪽은 중국 호남성 남악형산 마경대 반석을 방문한 정원주 조계종 중앙신도회 회장(헤럴드·대우건설 회장) 모습.

정원주 중앙신도회장이 아슬아슬한 그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튼다. 기가 센 바위라는데 마조도일의 기운이 느껴졌을까.

‘마조록’에는 마조가 종일 바위에서 좌선 수행만 하고 있을 때 복엄사 방장이던 스승 남악회양이 와서 “그대는 종일 앉아 무엇을 하는가”라고 물었다.

마조가 “좌선을 하는 중”이라고 답하자 회양이 “좌선을 해서 무엇을 하려는가”라고 했다.

마조는 “부처가 되려고요”라고 답했다.

회양은 근처에 있던 기왓장을 주워 들고 마조 옆에서 시끄럽게 갈아대기 시작했다.

마조가 물었다.

“기왓장을 갈아서 무엇을 하실 것입니까?”

회양은 “기왓장을 갈아 거울을 만들까 하네”라고 말했다.

마조가 빈정거리며 “기왓장이 거울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하자 회양이 무섭게 소리쳤다.

“기왓장이 거울이 될 수 없듯이 좌선으로 부처가 될 수 없다”

마조는 “그러하면 어찌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회양이 말했다.

“혹시 지금 좌선을 익히고 있다면 선은 결코 앉아 있는 것이 아니며, 좌불을 익히는 중이라면 부처는 원래 정해진 모양새가 없다는 것을 명심하게.”

마조도일은 여기서 깊은 깨달음을 얻어 ‘마전작경(磨塼作鏡,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든다)’이란 말이 나왔다.

마조도일은 사천성에서 709년에 태어나 고향의 나한사에서 출가했는데 생김생김이 예사롭지 않고 특이해 소처럼 느리게 걷고 눈빛은 호랑이처럼 예리했다고 한다.

마조 도일은 회양의 문화에서 10년간 모시다가 강서지방으로 가서 포교 활동을 했는데 명성이 사방으로 퍼져 수많은 수행자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마조는 1000명이 넘는 대화상을 거느렸고 핵심 제자만 해도 100여명이 넘고 각자 나름대로 종주(宗主, 패권을 잡은 맹주)을 이뤘다고 한다.

마조는 “수행이니 도이니 부처니 이리저리 따지고 가릴 필요 없이 평소의 마음과 일상의 행동이 바로 도이며 부처”라고 평범하고 단순한 화법으로 깨우침을 전달했다.

‘평상심(平常心)이 도(道)’,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마조선(馬祖禪)을 탄생시켰다. 평범한 일상 선(禪)을 펼쳤는데 서당지장, 백장회해, 남전보원 등 뛰어난 세 제자를 뒀고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해의 얼굴을 가진 부처, 달의 얼굴을 가진 부처)이라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수수께끼 같은 유언을 남기고 입적했다.

운문종, 법안종, 조동종의 8대조사 ‘석두 희천’의 남대사
남대사

남악회양의 복엄사와 석두 희천의 남대사는 1㎞ 정도 떨어져 있어 회양이 석두의 법의 깊이를 알아보고자 시자를 보내 응답하게 했는데, 그 내용을 듣고 “저 돌(석두) 위에서 사자후가 난다”며 극찬했다고 한다.

석두(700~790년)는 열 살 때 어머니가 절에 데리고 가서 불상 앞에서 ‘부처님이다’하고 절을 시키니 “사람과 다르지 않은 이것이 부처라면 나도 부처가 되리라”고 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14살 때 6조 혜능을 찾아 출가했으나 1년 뒤 혜능이 입적하면서 제자 청원행사에 의지하라고 해 그로부터 법을 전해 받았다. 청원행사는 “뿔 달린 짐승은 많지만 하나의 기린이면 충분하다”라며 석두를 수법제자로 지목했다.

6조 혜능의 법맥을 이은 두 제자, 청원행사에서 석두희천이 나왔고, 남악회양으로부터 마조도일이 나온 것이다. ‘위양종’·‘임제종’에 있어서는 남악회양이 7대조, 마조도일이 8대조사이며, ‘운문종’·‘법안종’·‘조동종’에서는 ‘청원행사’가 7대조, ‘석두희천’이 8대조사인 것이다.

남종선의 확립에 크게 이바지한 두 사람은 왕권 및 귀족적인 성향을 벗어나 시골(강서와 호남)에서 수행하고 제자를 지도해 강서의 마두, 호남의 석두라 불리었다.

“강서의 주인은 마조이고 호남의 주인은 석두”라고 하며 수행자 왕래가 끊이지 않았고 두 대사를 뵙지 않으면 무지한 사람으로 여길 정도여서 세상 천하를 의미하는 ‘강호’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남대사 위쪽 언덕의 금강사리탑

남대사 위쪽 언덕에는 형산에서 유일하게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친견할 수 있는 ‘금강사리탑’이 48m의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다.

금강사리탑 진신사리

진신사리는 7층 맨 꼭대기 층에 잠금장치로 보관돼 있는데, 특별 배려로 모두가 친견할 수 있었다.

금강사리탑 진신사리

남대사는 6세기경 양나라 해인화상이 창건했으나 석두 희천이 742년에 와서 수십 년 동안 주석하면서 수행하고 법을 전하면서 석두의 행화도량이 됐다.

석두는 이곳에서 ‘초암가’와 ‘참동계’(參同契, 240 글자의 고시)를 짓고 선풍을 일으킨 곳이다.

금강사리탑 진신사리

대웅보전 뒤 조당 문턱 기둥에 마조가 석두의 선풍이 강함을 표현한 “석두의 길은 미끄럽다”는 ‘석두로활’(石頭路滑)이 새겨져 있는데 위쪽 사리탑부터 내려오다 보니 조당을 찾지 못했다.

희천이 석두로 불린 것은 42세 때 경내 절 뒤편 언덕 큰 바위 머리에 작은 초암을 짓고 산거수행을 시작한 데서 비롯됐다.

그 큰 바위에 ‘참동계’가 음각돼 있다는데 가랑비 길에 미끄럽다고 해 접근조차 하질 못해 아쉬웠다. ‘참동계’는 석두가 저술한 240자에 불과한 고시(古詩)지만 석두의 선풍이 함축돼 있어 조동종에서는 경전으로 독송 되고 있다고 한다.

남대사

남대사도 복엄사처럼 사찰 게시판에 천하법원(天下法源, 중국 불법의 발원지)이라 쓰여 있는데 석두의 문하에서 중국 선종의 3개 종파(조동종, 운문종, 법안종)가 나왔으니 그럴만하다.

남대사

대웅전에는 10여명의 스님이 저녁예불 중이었는데 사전에 허락받지 않고는 예불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해 조용히 지나간다.

남대사 마당 벽면에 새겨 있는 ‘즉사이진(卽事而眞)’ 문구

마당 벽면에 “어떠한 사물이든지 그대로 진리이다”라는 ‘즉사이진(卽事而眞)’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남대사의 속살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중국 선종의 한국 전래와 구산선문
남대사

중국 선종의 한국 전래는 신라의 명적스님이 당나라 오대산으로 가서 기도드린 후 강서의 개원사를 찾아가 마조도일의 제자 ‘서당지장화상’을 친견하고 ‘도의’라는 법호와 법을 인가받아 진행됐다.

백장산의 백장 회해선사는 도의선사를 만나고 “강서의 산맥이 이제 모두 동국의 중으로 돌아가고 있구나”라고 했는데, 마조선의 새로운 물줄기가 신라(동국)로 흘려들어온 것이다.

신라의 ‘도의 선사’는 8조 마조도일의 으뜸 제자 서당지장(西堂知藏)에게서 법을 인가받아 37년간 당나라에 머무르며 수행하다 784년(선덕왕 5년)에 신라로 귀국했다.

그러나 당시 신라는 탑이나 절을 짓는 불사에만 매달린 교학(화엄사상)에만 매달려 있었기에 도의선사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도의는 설악산에 머무르며 후학을 양성했는데 제자 염거화상과 체징이 도의선사를 종조로하는 유치 보림사에 가지산문(迦智山門)을 열었다.

신라스님 혜철도 814년 당나라 유학을 떠나 서당지장으로부터 법을 전수받고 25년 만에 신라와 돌아와 전남 곡성군 태안사에 동리산문을 열었다. 이렇듯 마조도일의 제자 서당, 남전,장경, 마곡, 염관 등으로부터 법을 인가받아 장흥의 가지산문, 남원 실상산문, 곡성 동리산문, 창원의 봉리산문, 영월 사자산문, 강릉 사굴산문, 보령 성주산문 등 구산산문 중 7개 산문이 들어왔다.

마조도일의 제자 중 남전보원 스님은 고불(古佛)이라는 별칭을 받은 선의 달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은 선화를 남긴 ‘조주선사’가 있다.

한국 선종 불교는 ‘화두를 하나 들고 참구해 이를 타파해 부처를 이루는 ‘간화선(看話禪)’ 수행법이 중심인데 무자(無字)화두가 핵심이다. 무자화두는 ‘개에는 불성이 없다’는 뜻의 조주선사의 구자무불성(拘子無佛性)의 줄임말이다.

한국불교는 중국 선종 불교를 받아들여 중국 간화선 법맥이 줄기가 됐고 중국선사들의 사상이 조계종에 녹아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종헌’의 시작은 이러했다.

“공유컨데 아 종조 도의국사께서 조계의 정통법인을 사승하사 가지영역에서 종당을 게양하심으로부터 구산문이 열개하고…”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민상식 기자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