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신병원 침대와 벽에 끼어 사망한 환자…1.2억 배상 판결

고경태 기자 2026. 4. 30.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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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는 불송치”
2024년 4월19일 아침 서울 영등포구 해상병원 격리실에서 침대 머리맡과 벽 사이에 하반신이 끼인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피해자 박아무개(58)씨. 박씨는 전날 입원해 이 병원 격리실에서 4시간 동안 이렇게 방치된 채 숨졌다. CCTV 화면 갈무리

2년 전 정신병원 격리실에서 환자가 침대 머리맡과 벽 사이에 하반신이 끼인 채 방치됐다가 사망한 서울 해상병원 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병원 쪽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며 유족에게 1억2천여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반면 경찰은 병원 쪽 책임자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서는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사망 환자 유족이 공개한 판결문을 30일 보면, 서울중앙지법 제922민사단독 송승용 부장판사는 지난 1월15일 해상병원 사망 환자의 아들 박아무개(29)씨가 해상병원을 운영하는 재단법인 한국산업보건환경연구소(대표 최영호)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병원 의료진의 경과 관찰상의 과실로 인하여 사망하였다”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배상액은 고인의 장례비와 일실수입(사고가 없었을 경우 예상수입)을 합한 금액에서 의료행위에 수반되는 위험 등의 이유로 배상 책임을 60%만 인정한 뒤, 유족 위자료 1000만원을 더해 1억2800만원으로 산정했다. 병원 쪽은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며 항소했다.

2024년 4월18일 자해를 해 다른 병원 응급실에서 봉합 처치를 받고 서울 영등포구 해상병원에 오후 9시45분께 응급입원한 박아무개(58)씨는 이튿날 아침 격리실 침대 머리맡과 벽 사이에 하반신이 끼인 채 발견돼 6시19분께 현장에서 사망판정을 받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사인은 ‘불명’이었다. 해상병원은 정신의학과를 중심으로 42개 입원실과 180개 병상을 갖추고 있다. 2011년 엔젤병원으로 개원했지만 2016년 4월에도 27살 남성이 35시간 격리·강박 당한 끝에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 뒤 해상병원으로 이름을 바꾼 바 있다.

한겨레가 확인한 사망 당시 시시티브이에는 4월19일 자정 이후부터 격리실에서 문을 두드리며 의료진을 호출해도 반응이 없자 침대에 대변을 지리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박씨 모습이 담겨있다. 그는 침대를 당기고 매트리스를 밀고 침대에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다 새벽 2시12분께 침대 머리맡과 벽 사이에 하반신이 끼인다. 이후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는 데 결국 힘이 빠져서 상반신을 앞으로 숙인 채 그 상태로 있다가 이튿날 6시4분께에서야 격리실 바깥 복도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송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병원 의료진이 격리실을 마지막으로 방문한 4월18일 23시26분경 이후, (의료진) 지시에 따른 활력 징후 측정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고, 망인이 문을 두드리며 소란을 일으키고 침대 시트가 망인의 배설물로 오염됐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이 사건 지침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경과 관찰이 전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병원 의료진의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된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격리·강박지침에 따르면 격리시 최소 1시간마다 관찰 및 평가를 해야 한다.

송 부장판사는 이어 “간호기록지가 사실에 부합하게 작성된 것인지 강한 의문이 든다”고도 지적했다. 피해자가 4시간 가까이 침대와 벽 사이에 끼어있는 동안 의료진이 전혀 격리실을 방문하지 않았는데도 여러 시간 ‘수면 격려’를 한 것처럼 간호기록지가 작성돼 있기 때문이다. 다만 “피해자의 신체적·정신적 상태에 비추어 금기되는 의약품을 의사 처방이나 투약 기록 없이 투여했다”는 유족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상병원을 운영하는 한국산업보건환경연구소 쪽은 “망인이 침대 사이에 낀 자세로 있었더라도 곧바로 망인에게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였다고 인식할 수 없었고, 비정상적인 자세로 수면을 취할 경우 이를 바로잡는 것보다 수면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더 적절한 조치”라는 의견을 재판부에 냈다. 침대에 끼어 의식을 잃은 상태였지만, 이를 바로잡는 것보다 그대로 놔두는 게 더 적절하다는 의미다. 또 “부검감정서가 망인의 사망 원인을 불명으로 판단하고 있으므로, 망인의 사망에 관해 피고 병원에게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정신병원 사망사건 소송을 여러 차례 맡아 유족을 대리한 경험이 있는 최정규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재판부가 병원 쪽의 경과관찰 의무 위반을 인정한 부분은 나름 긍정적이다. 다만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손해배상 책임제한 제도의 취지를 앞세워 피해자쪽 과실을 과도하게 참작해 배상액을 감액해 아쉽다”고 말했다.

한편 피해자 유족의 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은 병원을 운영하는 한국산업보건환경연구소 최영호 대표를 의료법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으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는 불송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30일 영등포경찰서 관계자는 한겨레에 “이번달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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