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생물학] 빵냄새에 고이는 침…초파리 더듬이의 '문법'과 이어진다

※낭만의 생물학 연재를 시작하며
고등학교 시절, 나는 다윈을 꿈꿨다. 갈라파고스 군도를 누비며 생명의 설계도를 해독하던 그 사람처럼, 언젠가 나도 이 행성 위의 생명들이 왜 지금 이 모습으로 존재하는지를 이해하고 싶었다. 의대 진학을 포기하고 생물학자의 길을 택한 건 그래서였다.
물론 현실은 냉혹했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갈라파고스가 아니라 실험실 구석의 초파리 배양병이었고 낭만적인 질문들은 "그게 무슨 논문이 되느냐"는 현실 앞에서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현대 생물학의 생태계는 과학자의 낭만을 반기지 않는다.
호기심은 사치가 되었고 질병을 정복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는 연구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그냥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은 어느 순간부터 연구비 신청서에 쓰기 부끄러운 문장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생물학에는 여전히 낭만이 있다. 향유고래 무리가 혈연의 경계를 허물고 갓 태어난 새끼를 번갈아 떠받치는 장면 속에, 다윈이 '종의 기원' 마지막 문장에서 탄성을 질렀던 그 "뒤엉킨 강둑"의 경이로움이 살아있다.
수백 개의 뉴런으로 이루어진 선충의 신경계가 초파리의 다리를 걷게 만드는 실험 속에, 생명이 단순한 계산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진실이 역설적으로 빛난다. 나는 이 연재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하려 한다.
신경생물학자이자 유전학자로서 내가 연구하고 읽고 경탄해온 생물학의 발견들 다윈 이후 수많은 생물학자들이 자연 앞에서 품었던 질문들을 담담하게 풀어볼 것이다. 거창한 결론보다는 질문의 감촉을 최신 트렌드보다는 생명 현상의 깊이를 전하고 싶다.
이 글의 이름을 '낭만의 생물학'이라 붙인 건 그래서다. 낭만이란 현실을 외면하는 몽상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이 잊어버린 것들을 기억하는 고집이다.
과학이 점점 효율과 응용의 언어만을 말하는 시대일수록 누군가는 고래의 출산을 60년째 기다리며 바다 위를 떠 있어야 하고 누군가는 초파리 한 마리의 뇌 속에서 의식의 기원을 묻는 질문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그들이 생명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이곳에서 전하려 한다.
실험실에는 냄새가 있다. 초파리 배양병을 열면 터져 나오는 그 특유의 냄새(예를 들어 효모가 발효하는 냄새, 과일이 익어가다 무너지는 냄새)는 내가 20년 넘게 이 일을 해오면서도 여전히 낯설게 느껴지는 냄새들이다. 초파리들은 그 냄새에 이끌려 태어났고, 그 냄새를 쫓아 살아간다. 초파리 유전학자들은 아주 오랫동안 그 냄새의 의미를 묻는 일을 해왔다.
초파리 유전학의 역사는 대부분 실험실 안에서 쓰였다. 1910년대 토머스 헌트 모건의 '플라이 룸'에서 시작된 이 학문은 염색체 유전, 발생유전학, 신경유전학, 행동유전학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의 굵은 줄기들을 세웠다.
나는 초파리가 시간을 어떻게 인지하는지 수컷이 경쟁자를 어떻게 인식하고 교미 전략을 수정하는지를 물어왔다. 그런데 가끔 전혀 다른 질문이 고개를 든다. 실험실 밖에서, 배양병 바깥의 세계에서, 초파리는 도대체 무엇을 인식하며 살아가는가? 진화가 수억 년에 걸쳐 갈고 닦아온 이 곤충의 후각은 무엇을 향해 있는가.
● 움벨트(Umwelt), 초파리만의 세계
야코프 폰 윅스퀼이 제안한 '움벨트'란, 모든 생명체가 자신이 감지할 수 있는 감각 신호들로만 이루어진 고유한 세계 안에서 산다는 이론이다. 개는 냄새의 세계에서, 박쥐는 초음파의 세계에서 산다. 초파리의 세계는 화학 분자들로 가득하다.
더듬이에 분포한 수백 개의 후각 수용체들이 공중의 분자를 잡아내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독한다. 먹이가 있는가. 독이 있는가. 알을 낳을 곳인가. 포식자가 있는가.
곤충의 후각 수용체들은 진화가 수천만 년에 걸쳐 특정 분자들에 맞게 조율해온 정밀한 악기들이다. Or42b와 Or92a는 효모의 발효 산물에 반응하는 '식당 안테나'이고 Or56a는 곰팡이 독소인 지오스민을 감지하면 초파리로 하여금 먹이 앞에서도 즉각 도망치게 만든다. 이것이 화학생태학이 묻는 질문들이다.
생물체들이 화학 신호를 매개로 어떻게 서로를 찾고, 피하고, 속이고, 협력하는가. 초파리 유전학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도구들을 갖고 있다.

● 사촌의 반란… 벗초파리가 보여주는 진화의 대담함
이 맥락에서 벗초파리(Drosophila suzukii)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노랑초파리가 썩어가는 과일 위의 청소부라면 벗초파리는 아직 나무에 달린 신선한 과일을 공격하는 침략자다. 경쟁자가 없는 새로운 자원을 선점한 생태적으로 대담한 도박이었다.
이 전환을 가능케 한 것은 후각 수용체 유전자들의 변화였다. Or67a와 Or22a 수용체가 발효 냄새보다 신선한 과일 향의 에스테르류에 더 민감하게 조율되었고 암컷의 산란관은 톱날처럼 발달해 체리나 블루베리 껍질을 뚫고 알을 심을 수 있게 되었다. 진화가 단백질 서열을 조금씩 바꿔가며 새로운 생태적 틈새를 개척한 것이다.
벗초파리의 원산지는 동아시아다. 한국에서는 1930년대에 이미 앵두 피해 기록이 있다. 원산지 생태계에서 균형을 유지하던 이 곤충이, 인간이 만들어낸 단일작물 환경(체리·블루베리 재배지)에서 폭발적으로 증식하기 시작했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이미 연간 수억 달러의 피해를 내는 침입 해충이 되었다.
● 세 가지 냄새, 네 개의 종…화학생태학의 정수
초파리 유전학이 화학생태학에 기여한 아름다운 사례가 있다. 기생벌(Leptopilina boulardi)은 초파리 애벌레 몸속에 알을 낳는다. 연구자들이 기생벌이 숙주를 찾는 과정을 추적하자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기생벌은 초파리 애벌레 자체의 냄새보다, 효모가 발효하는 냄새(애벌레가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환경)를 더 신뢰했다.
효모가 분비하는 에틸 에스테르류가 초파리와 기생벌 사이의 의도치 않은 중개자가 된 셈이다. 연구자들은 기생벌의 수용체 LbouOR167이 에틸 에스테르에 고도로 특이적으로 반응한다는 것, 그리고 단 하나의 아미노산 잔기(Leu159)가 그 결합에 결정적임을 밝혀냈다. 이 잔기를 바꾸면 기생벌은 더 이상 효모 냄새를 감지하지 못한다. 하나의 아미노산이 한 생명체의 생태적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 지오스민이 가르쳐 준 것
초파리의 지오스민 회피 반응으로 돌아가자. 지오스민은 비 온 뒤 흙냄새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특정 독소 생산 곰팡이가 분비하기도 한다. Or56a 수용체가 이것을 감지하면 초파리는 수컷의 교미도 암컷의 산란도 즉각 중단한다. 먹이 앞에서도, 짝짓기 중에도, 지오스민은 모든 것을 멈추게 한다.
이것은 신경회로의 위계 구조를 드러내는 현상이다. 식욕이나 성욕을 지배하는 회로 위에, 독소 회피 회로가 상위 우선순위로 자리한다. 수천만 년에 걸친 진화적 군비 경쟁의 결과가 신경 배선에 새겨진 것이다. 초파리 유전학은 이 회로의 정체를(어떤 뉴런이 어떤 신호를 어디로 전달하는지)분자 수준에서 하나씩 밝혀나가고 있다.

● 냄새는 우리의 언어이기도 하다
여기서 잠깐 독자 여러분의 일상으로 눈을 돌려보자. 우리 인간도 초파리와 마찬가지로 화학 신호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갓 구운 빵 냄새에 침이 고이는 것, 상한 음식 앞에서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 비 오기 전의 흙냄새(지오스민)가 묘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것 등 이 모든 반응이 수백만 년의 진화가 후각 회로에 새겨놓은 결과다.
초파리가 Or56a로 지오스민을 감지해 독소를 피하듯 우리도 썩은 냄새를 혐오하도록 진화되어 있다. 감각의 문법은 종을 넘어 닮아 있다.
더 가까운 예도 있다. 신생아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젖 냄새를 향해 머리를 돌린다. 연인 사이에는 서로의 체취에 끌리는 현상이 있고 이는 면역 유전자(MHC)와 연관된다는 연구들이 있다.
병원의 특유한 냄새가 불안감을 높이거나 라벤더 향이 긴장을 낮추는 것도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니다. 화학 분자가 수용체를 자극하고 뇌의 감정 회로를 직접 건드리는 것이다. 초파리 후각 연구가 밝혀낸 수용체-회로-행동의 연결 고리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공유하는 생명의 기본 문법을 보여준다.
그 문법을 읽을 수 있게 되면 응용의 문이 열린다. 알츠하이머 환자는 증상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후각 기능이 저하된다. 조현병·파킨슨병 등 여러 신경 질환에서 후각 이상이 선행 지표가 된다. 초파리 후각 신경회로 연구가 쌓아온 지식은 이런 질환의 조기 진단과 치료를 위한 기초가 되고 있다. 과일파리의 더듬이에서 시작된 질문이, 우리 삶의 질을 바꾸는 의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 밭으로 나간 유전학
이 지식들은 이미 실용의 언어로도 번역되고 있다. 벗초파리의 후각 특성을 이해하면 유인·기피 화합물을 설계할 수 있다. 기피 물질로 해충을 밀어내고 유인 물질로 한 곳에 모아 집중 방제하는 '푸시-풀(push-pull)' 전략이 그것이다.
화학 살충제를 무차별 살포하는 대신 해충의 감각 언어를 역이용하는 방식이다. 기생벌 연구도 같은 방향이다. 기생벌이 어떤 화학 신호로 숙주를 찾는지 알면 생물학적 방제에서 기생벌의 효율을 높이는 환경을 설계할 수 있다.
한국 농업에서도 이 문제는 멀지 않다. 벗초파리 원산지가 동아시아이고, 체리와 블루베리 재배 면적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연구가 추상적인 학문의 문제가 아님을 말해준다. 원산지 생태계에서 이 곤충이 어떻게 균형을 유지해왔는지를 연구하는 일은, 단순한 방제를 넘어 생태계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작업이다.
● 초파리가 열어준 지평
지오스민 한 분자가 수백만 개의 뉴런으로 구성된 뇌의 행동을 지배하는 장면 속에, 에틸 에스테르 냄새가 기생벌을 먹이 앞으로 인도하는 장면 속에, 아미노산 하나의 변이가 새로운 생태적 틈새를 열어주는 장면 속에, 나는 여전히 생물학의 낭만을 본다.
실험실의 배양병 속에도 뒤엉킨 강둑은 있었다. 초파리의 더듬이가 읽는 냄새는 곧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화학 분자들의 세계이기도 하다. 질문의 출발은 경이로움이고, 질문의 도착은 세계의 이해이다.
※참고문헌
- 박현주. (2023, 6). 동물의 움벨트를 인지하는 만큼 확장되는 세계. 우리교육, 68-81.
- Huang, J. & Lee, Y. The power of Drosophila genetics in studying insect toxicology and chemical ecology. Crop Heal. 1, 12 (2023).
- Keesey IW et al. Functional olfactory evolution in Drosophila suzukii and the subgenus Sophophora. iScience. 2022;25(5):104212.
- 정선아. (2018). 벗초파리 냄새감각기의 초미세구조 및 전기생리학적 연구 [석사학위논문, 한남대학교].
- Lu, Y. et al. Microbial Odorant Detection Guides Drosophila Parasitoids Seeking Hosts in Fermenting Fruits. Adv. Sci. e75253 (2026).
- Chin, S.G. et al. Olfactory Neurons and Brain Centers Directing Oviposition Decisions in Drosophila. Cell Rep. 24, 1667-1678 (2018). / Stensmyr, M.C. et al. A Conserved Dedicated Olfactory Circuit for Detecting Harmful Microbes in Drosophila. Cell 151, 1345-1357 (2012).

※필자소개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하얼빈공업대학 생명과학센터(HCLS) 교수. 바이러스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마음속 깊은 곳에 품어온 동물행동학의 꿈을 초파리 행동유전학 연구로 꽃피우고 있다. 초파리의 교미 시간을 통해 생명체의 시간 인지 메커니즘을 추적해왔으며, 이제 그 시선을 실험실 너머 생태계로 확장 중이다. 초파리 유전학이라는 강력한 플랫폼을 통해 기후 위기 시대의 꽃가루 매개자인 꿀벌을 살리고, 나아가 곤충과 인간이 공존하는 생태계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 작은 초파리들로 언젠가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낭만적이고도 야무진 꿈을 꾸며 산다. 저서로 《보통 과학자》, 《플라이룸》 등이 있다.
[김우재 하얼빈공대 생명과학센터 교수 heterosis.kim@gmail.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