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현대차가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한 전기차 ‘아이오닉V’에 자사 글로벌 기술 대신 중국 현지 기술을 전면 채택하는 파격적인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중국 소비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기술 생태계를 차량 안으로 그대로 끌어들여 현지화의 완성도를 끌어올리겠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현대차 아이오닉V. (사진=현대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아이오닉V에 중국 자율주행 유니콘 기업 모멘타(Momenta)의 기술을 탑재했습니다. 모멘타는 텐센트 등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은 중국의 대표적인 자율주행 스타트업으로, 중국 도심 특유의 복잡한 교통 환경과 주행 패턴에 최적화된 기술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이오닉V에는 모멘타의 기술을 기반으로 한 레벨 2++ 수준의 자율주행 기능과 함께 운전자가 반복 경로를 학습해 스스로 주차까지 수행하는 메모리 파킹 기능이 적용돼 판매 될 예정입니다. 레벨 2++는 고속도로는 물론 신호등과 보행자가 뒤엉키는 복잡한 도심 구간에서도 차선 변경과 추월, 끼어들기 대응까지 가능한 수준으로, 중국 소비자들이 실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주행 편의성을 대폭 끌어올렸다는 평가입니다.
배터리는 세계 최대 배터리 제조사인 중국의 CATL 제품을 장착했습니다. CATL 배터리 채택은 단순한 성능 확보 차원을 넘어, 중국 전역에 촘촘하게 구축된 충전 인프라와의 호환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분석됩니다. 현대차가 CATL을 선택한 것은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CATL 배터리에 대한 신뢰도가 높고, 충전 속도와 내구성 면에서도 현지 기준에 최적화돼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는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 바이두(Baidu)의 지도 서비스와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인공지능이 통합됐습니다. 중국에서는 구글 맵 등 해외 서비스가 제한된 만큼, 현지 사용자들이 일상적으로 활용하는 바이두 지도를 기본 탑재한 것은 실용성 측면에서 의미 있는 결정으로 보입니다. 바이두의 LLM 기반 AI는 음성 명령으로 목적지 설정, 차량 기능 제어, 실시간 정보 검색까지 가능하도록 설계돼 중국 소비자들이 스마트폰 앱을 쓰듯 차량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구현했습니다.
베이징 국제 모터쇼에서 공개된 아이오닉V 공개 행사 현장. (사진=현대차)
현대차가 자율주행, 배터리, 인포테인먼트의 3대 핵심 영역에서 중국 현지 기업과의 협력을 택한 것은 이른바 ‘기술 삼각 편대’ 전략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특정 시장에서 현지 기술 파트너에 의존하는 사례는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현대차는 아이오닉V 개발 단계에서부터 중국 현지 연구개발(R&D) 인력을 대거 투입해 이들 파트너사와의 기술 통합 작업을 직접 주도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현대차의 이 같은 결정은 중국시장에서의 위기감을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현대차는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갈등 이후 중국 시장에서 급격한 판매 부진을 겪었습니다. 한때 연간 180만 대에 달했던 현대차·기아의 중국 판매량은 이후 수년간 빠르게 줄었으며, 이 과정에서 비야디(BYD)를 필두로 한 중국 토종 전기차 브랜드들이 빠르게 시장을 잠식했습니다.
또한 최근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는 단순한 성능 경쟁을 넘어 스마트 기능과 소프트웨어 완성도가 구매 결정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화웨이, 샤오미 등 IT 기업들까지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면서 중국 소비자들의 기술 눈높이는 더욱 높아졌고, 이에 부응하지 못한 외국 브랜드들은 잇따라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리펑강 베이징현대 총경리는 “아이오닉V를 공개한 것은 단순히 새로운 차를 선보이는 것을 넘어 중국 시장에 대한 깊은 존중과 미래에 대한 확고한 약속을 표현한 것”이라며 “중국 혁신 역량을 기반으로 글로벌 모빌리티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겠다는 현대차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