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싱·사기 악용된 대포통장 4500계좌 ‘사상 최대’ [사기공화국의 민낯]
자금세탁 다단화에 줄줄이 엮여
1억 이상 고액, 상호금융 비중 커
“당국, 수사·금융기관간 공조 필요”

보이스피싱 등으로 악용돼 적발·동결된 ‘대포통장’ 계좌가 매해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지난달 처음으로 4500건을 웃돌면서, 2년 전 월평균 1500여건 수준과 비교해 3배 폭증했다. 대포통장은 보이스피싱·불법사금융·온라인 도박·신종 피싱 등 거의 모든 불법 금융 범죄에 동원되는 ‘범죄 인프라’ 중 하나로, 자금 세탁 수법이 진화하면서 나날이 늘고 있다. ▶관련기사 5면
30일 헤럴드경제가 금융감독원 ‘채권소멸 사실공고’ 공시를 분석한 결과, 지난달 금융 사기에 악용돼 적발·동결된 계좌는 4510건으로, 공시 이래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채권소멸 계좌 추이는 2년 전 2024년 월평균 1535건에서 지난해 2302건, 올해 1~4월 평균3747건으로 가파르게 오름세를 보인다. 채권소멸이 확정돼 피해자에게 돌아가는 환부 대상 채권액도 2024년 930억원에서 2025년 1674억원, 올해는 이달까지 804억원을 기록해, 전년 채권액의 50%에 육박했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공개한 불법사금융 거래 제한 132건은 자금세탁방지법(특정금융정보법)에 근거해 8주간 한정된 신고 통계로, ‘빙산의 일각’에 가깝다. 채권소멸 사실공고는 보이스피싱·투자사기 등 사기 피해 전반에 누적 적용되는 환급 절차 통계로, 매주 1000건 안팎의 대포통장이 새로 묶이고 사라진다.
▶사기 피해 자리마다 대포통장 있다=채권소멸은 사기 피해자가 피해구제를 신청해 은행이 해당 계좌를 정지한 뒤, 2개월간 명의자가 정당한 돈이라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면 확정된다. 금감원은 이런 피해자 환급 절차 단계를 수시 공시하는데, 명의자가 ‘내 돈이 맞다’고 입증하지 못한 계좌는 사실상 대포통장으로 분류된다.
최근 적발 사례를 보면 대포통장은 더 이상 한두 명이 돈을 받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모집책이 학생·외국인·일용직 등에게 30만원 안팎을 쥐여 주고 사들인 통장은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받는 입금 계좌 ▷자금을 잘게 쪼개 흘려보내는 경유 계좌 ▷현금이나 가상자산으로 빠져나가는 출구 계좌 등으로 분업화된다. 같은 통장이 보이스피싱에 쓰였다가 며칠 뒤 불법사금융 추심 통장으로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금융위가 밝힌 한 20대 대학생 계좌의 경우 거래액이 평소 2500만원 수준에서 3개월 만에 20억원으로 불어났는데, 보이스피싱 범죄 계좌로 한 차례 정지됐다가 풀린 뒤 다시 불법 자금이 거쳐 간 사례였다.
▶통장 줄줄이 묶이는 자금세탁 다단화=대포통장 적발이 늘어난 배경에는 자금세탁 수법의 다단화가 꼽힌다. 한 계좌에 거액이 머무르면 은행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에 곧바로 걸리니, 범죄자들은 피해금을 잘게 쪼개 여러 계좌를 거치게 한다.
특히 투자·리딩 사기는 피해자가 손실을 깨닫기까지 시간이 한참 걸린다. 그사이 자금이 수많은 중간 계좌를 통과하며 세탁되고, 피해 인지 시점엔 돈은 이미 해외로 빠져나간 뒤다. 결국 거쳐 간 통장만 대거 지급정지에 걸리는 구조다.
여기에 지난해 일부 투자·리딩 사기를 보이스피싱법(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적용 대상으로 인정하는 대법원판결 이후 환급 절차에서 빠져 있던 사건이 들어온 영향도 있다.
업권별 분포로 보면 지난해 4대(KB국민·신한·하나·우리) 시중은행이 27.9%로 가장 큰 비중을 보였지만 농협·신협·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에서도 25.8%, 카카오뱅크·토스뱅크·케이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에서도 18%를 차지했다. 특히 1억원 이상 고액 채권에선 상호금융(35.2%)이 시중은행(29%)을 추월해, 자금세탁 종착지로 활용되는 구조까지 통계로 확인된다.
인터넷은행의 경우 비대면 계좌 개설의 편의성도 요인이지만, 가상자산 거래소와의 일대일 실명계좌 연결이 핵심 통로로 지목된다. 5대 원화 거래소 중 두 곳(업비트-케이뱅크, 코인원-카카오뱅크)이 인뱅과 묶여 있는 만큼, 보이스피싱 자금을 비트코인으로 바꿔 해외로 보내는 ‘대리구매 알바’ 형태의 세탁이 인터넷은행 계좌를 거쳐 간다. 상호금융의 경우 개별 조합이 단일 금융기관으로 운영되다 보니 이상거래 모니터링 역량 편차가 크고, 읍·면 단위 한적한 조합은 모집책이 차로 돌며 여러 곳에서 계좌를 만들기 좋은 환경이다.
▶흩어진 대응 체계…“삼각 협조, 면책 근거 필요”=현재 이런 광범위한 범죄 인프라를 정조준하는 통합 대응 체계는 사실상 부재하다. 보이스피싱은 보이스피싱법(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 불법사금융은 자금세탁방지법, 일반 범죄는 부패 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 등 범죄별로 흩어진 법체계 안에서 각자 대응이 이뤄진다.
한국의 채권소멸·환급 절차 자체는 일본과 더불어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선진적인 제도로 평가받지만, 정작 대포통장 시장 자체를 겨냥한 단일 트랙은 없다. 지난해 10월 가상자산이 환급 대상 자산에 편입된 데 이어, 8월부터는 금융보안원을 중심으로 사기 이용 계좌 정보를 한곳에 모으는 체계가 가동되지만 더욱 통합적인 대응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급 정지 조치는 일반 금융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강력한 침익적 조치인 만큼, 금융당국으로서나 금융기관으로서나 조치 이후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된다”면서 “감독당국과 수사기관, 금융기관이 삼각 협조 체계를 갖춰 대포통장 시장 자체를 정조준할 수 있어야 적극적인 차단 조치에 대한 면책 근거 마련 논의도 의미를 갖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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