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AI 시대, 한국 기업의 기회와 선택 [삼일 이슈 프리즘]
홍승환 삼일PwC 피지컬 AI 섹터 리더

휴머노이드 로봇이 공장에 시범 투입되고, 자율주행 트럭이 고속도로를 달리며, 로봇이 물류창고를 24시간 움직인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SF 영화의 장면이었던 풍경이 빠르게 현실화 되고 있다. 이제 글로벌 제조 현장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2025년 초 CES 기조연설에서 "AI의 다음 프론티어는 피지컬 AI" 라고 선언한 배경이다.
AI는 인지 단계에서 생성형 AI, 에이전틱 AI를 거쳐, 이제는 현실 세계에서 직접 행동하는 피지컬 AI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텍스트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머물렀던 AI가, 물리적 센서 데이터와 주변 환경 변화를 스스로 지각하고 판단하며 실행하는 단계로 도약한 것이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 트렌드가 아니다. 제조·물류·모빌리티 등 산업 전반의 비즈니스 모델과 경쟁 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구조적 전환점이며, 한국 기업이 반드시 주시해야 할 새로운 성장 축이다.
밸류체인 구조와 핵심 성장 시장
피지컬 AI의 밸류체인은 네 개 층으로 구성된다. ① 컴퓨팅 인프라(GPU·TPU 등 AI 반도체), ② 시뮬레이션 플랫폼(디지털 트윈 기반 가상 물리 재현), ③ AI 파운데이션 모델(인지·판단·명령을 수행하는 '두뇌'), ④ 하드웨어 디바이스(파운데이션 모델을 탑재해 물리 세계에서 구동되는 로봇·차량)이다.
상류 영역에서는 엔비디아가 GPU에서 시뮬레이션, 파운데이션 모델까지 아우르는 풀스택 체제를 구축하며 산업 표준을 주도하고 있다. GPU 시장 점유율 약 80%를 기반으로 한 압도적 지위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이며,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등 빅테크도 자체 칩과 모델 개발로 맹추격 중이다. 하류 영역에서는 제조·모빌리티·로봇 분야의 하드웨어 기업들이 소프트웨어 테크 기업과의 협업·인수를 강화하며, 자율화 중심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통합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 밸류체인 위에서 실질적인 성장 기회가 구체화되는 시장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스마트 스페이스다. 제조 공정 전반의 자율화를 의미한다. 기존의 특정 공정 자동화가 AI 기반 완전 자율화로 전환되면서, 제조·검사·관리·예측 등 전 과정이 하나의 체인으로 통합되는 추세다. 디지털 트윈 활용이 확대되고 풀스택 솔루션 확보 경쟁이 본격화되며 안정적인 성장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둘째, 휴머노이드 로보틱스다. 향후 폭발적 성장이 기대되는 영역이다. 정형화된 반복 작업에 머물렀던 산업용 로봇이, 비정형 작업을 자율적으로 판단·수행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로 진화하고 있다. 노동력 부족, 인건비 상승, 위험 작업 대체 수요와 맞물려 향후 수년간 매우 높은 성장률이 예상된다.
셋째, 자율주행이다. 센서·지도·AI 모델을 활용해 주행 판단과 조작을 스스로 수행하는 기술로, 물류·무인배송·로보택시 분야에서 상용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세 시장 중 가장 가파른 성장 궤적이 전망되며, 완성차 OEM과 소프트웨어 테크 기업 간 협업·인수가 활발하다.
글로벌 M&A로 읽는 산업 재편의 방향
지역별 M&A 흐름은 각국의 산업적 지형을 그대로 반영한다.
미국은 풀스택 소프트웨어 역량 확보를 둘러싼 경쟁이 핵심이다. 엔비디아의 그록 인수(200억 달러), 퀄컴의 어라이버 인수(45억 달러) 등 파운데이션 모델과 시뮬레이션 중심의 대형 소프트웨어 내재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중국은 하드웨어 수직계열화에서 소프트웨어 통합으로의 전환이 두드러진다. 차이나오의 질러스 인수(200억 달러), 이치그룹의 조우유 투자(50억 달러) 등 물류·제조업체가 앞장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통합을 적극 추진 중이다.
유럽은 지멘스·슈나이더 등 산업 자동화 강자들이 고부가 소프트웨어 확보에 집중한다. 지멘스의 알테어 인수(100억 달러), 슈나이더의 아비바 인수(44억 달러) 등이 대표적이다.
아시아·태평양은 기존 하드웨어 경쟁력을 기반으로 지능 소프트웨어를 내재화하는 전략이 주류다. 현대자동차의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약 11억 달러), 소프트뱅크의 ABB 로보틱스 인수(54억 달러) 등이 대표 사례다.
글로벌 딜을 관통하는 핵심 축은 세 가지다. 첫째, AI 지능 소프트웨어 확보를 위한 테크·하드웨어 기업 간 M&A의 가속화. 둘째, 제조·물류·서비스 기업들이 로봇 하드웨어를 내재화해 핵심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흐름. 셋째, 글로벌 재무적 투자자의 본격 진입으로 딜 규모가 대형화되고 크로스보더 투자가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 기업의 기회와 전략적 접근법
한국 기업들에게도 피지컬 AI는 놓칠 수 없는 성장 기회다. 삼성전자의 레인보우로보틱스 투자, LIG넥스원의 고스트로보틱스 인수, SK온의 유일로보틱스 투자 등 제조 기반 대기업들이 로봇 하드웨어·AI 소프트웨어·자율주행 분야에서 투자를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특히 한국이 주목해야 할 전략 축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지능 소프트웨어 확보다. 로봇 경쟁력의 핵심이 ‘기계 성능’에서 '지능 성능'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은 제조·물류·조선 등 핵심 산업에 풍부한 현장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로봇 학습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어 소프트웨어 역량을 높이는데 유리하다. 국내외 AI 파운데이션 모델 기업에 대한 전략적 투자·인수를 통한 기술 흡수가 필요하다.
둘째, 핵심 부품의 내재화다. 휴머노이드·자율이동 로봇 시대에는 감속기·서보모터·센서·액추에이터 등 핵심 부품의 수직계열화가 성능·비용·양산 속도를 좌우한다. 감속기 분야에 경쟁력 있는 국내 기업이 다수 존재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2차전지 기술을 로봇 전력 시스템에 접목할 수 있다는 점은 한국만의 차별적 우위다.
시사점: 단계적이되 선제적으로
피지컬 AI 시장에는 기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과 반도체·AI 모델을 둘러싼 수출 규제는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으며, 어느 진영의 생태계를 축으로 삼을 것인가는 단순한 기술 선택을 넘어선 전략적 의사결정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여기에 자율주행 사고의 책임 소재, 휴머노이드의 노동 대체 논란, EU AI Act를 비롯한 글로벌 규제 프레임워크가 기술 도입의 속도와 방향을 실질적으로 좌우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제조·물류 현장에서 축적된 데이터가 해외 파운데이션 모델의 학습 자원으로 이전될 경우, 산업 경쟁력의 원천 자체가 외부로 흘러나갈 수 있다는 점은 한국 기업이 직면한 가장 현실적인 과제다. 결국 피지컬 AI는 기회의 크기만큼이나 판단의 난이도가 높은 영역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진입 전략은 더욱 정교해져야 한다.
성공적인 시장 진입을 위해서는 세 가지 전략적 원칙이 요구된다.
첫째, 단계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산업·기술 구조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고, 기술 성숙도와 플레이어 간 역량 격차가 크다. 섣부른 대규모 투자보다는 선별 기준에 기반한 전략적 스크리닝을 통해 기술·기업 선택 리스크를 관리하며 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소수 지분 투자에서 시작해 후속 M&A로 이어가는 옵션형 전략이 유효하다. 현재 AI 소프트웨어·로봇 하드웨어·센서 등 기업 밸류에이션이 높은 수준으로 형성돼 있다. 소수 지분 투자로 초기 진입 리스크를 조절하고, 실적·기술 검증을 거친 후 본격적인 인수로 전환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셋째, 글로벌 소싱을 통한 크로스보더 딜 발굴이다. 국가별 강점을 결합하는 전략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국내 스타트업·중견기업은 물론 해외 파운데이션 모델·센서·시뮬레이션 기업을 포함한 글로벌 파이프라인을 구축해야 한다.
피지컬 AI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엔비디아를 축으로 한 기술 생태계가 빠르게 표준화되고 있고,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수십억 달러 규모의 M&A로 포지션 확보 경쟁에 돌입했다. 한국 기업은 세계적 수준의 제조 역량, 풍부한 산업 현장 데이터, 핵심 부품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기회의 창이 열려 있는 지금, 선제적이고 전략적인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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