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인간이게 하는 건? ‘당신’이라는 연결

한겨레 2026. 4. 3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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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현의 커넥션(41)
세계시민과 그 적들(3) 공동체의 함정
세계화의 부작용으로 상호 파멸로 치닫는 혐오의 시대에는, 서로에 대한 연결을 상기시키는 ‘우분투’ 정신이 더욱 필요하다. 픽사베이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만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 데즈먼드 투투(1931-2021)-

지난 세기 말까지 유지되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는 강력한 혐오 유발 정책으로 악명이 높았다. 이는 백인우월주의를 기반으로 모든 유색인종을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격리하는 강력한 차별제도였다. 인종 격리는 소통 단절과 집단 혐오의 하강 나선을 유도하였고, 사회적 긴장과 폭력을 양산하였다. 이에 대한 저항 운동으로 유명한 넬슨 만델라는, 1993년 노벨상을 받고, 이어 차별제도가 철폐된 남아공에서 최초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우분투(ubuntu) 정신은 아파르트헤이트를 무너트린 비폭력 저항 운동을 관통하는 인간 원리다. 투투 대주교는 우분투 철학을 세상에 알린 공로로 1984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현생 인류가 등장한 아프리카의 토착어에 남겨진 우분투는 ‘되다’는 의미의 [ubu-]와 ‘사람’을 의미하는 [-ntu]의 합성어다. 직역하면 사람됨 혹은 인간성이지만, 관용적으로 ‘나는 당신으로 존재합니다’라는 함의로 사용된다. 이는 다른 언어에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성에 대한 독특한 관점이다. 다른 언어에서 인간성은 개체의 독립적 성질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분투는 상호 연결의 관점에서 인간성을 파악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인간적이라 말한다면 공감, 교감, 연민 등 그의 개인적 능력을 특징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분투를 말하면 그와 나의 연결 관계를 특징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분투를 공동체 의식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우분투를 단순히 집단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폭력적 전체주의로 오도될 함정이 있다. 세기의 천재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에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다른 언어로는 옮기기도 어려운 아프리카의 생소한 토착어가 전 세계에 울려 퍼진 것은,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분투는 현생 인류를 지구 생태계의 최강 단일 지배종으로 이끈 강력한 도그마(dogma)다. 인간을 포함해, 관찰 가능한 우주에 실존하는 모든 개체는 상호작용을 통해 연결된다. 물질의 물리적 상호작용은 강력, 약력, 전자기력, 중력이라는 네가지 힘이 지배한다. 이러한 상호작용 결과에 대한 예측을 원리라 하고, 확실한 예측 원리를 법칙이라 한다. 예를 들어 두 물체의 상호작용 결과는 중력의 법칙을 통해 확실하게 예측 가능하다. 이에 반해 인간의 상호작용은 역동적이고 가변적이다. 하지만 집단이 지속되려면, 내가 어떤 행동을 하면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원리가 필요하다. 만약 공유하는 상호작용의 원리가 없다면 구성원의 상호작용은 혼란에 빠지고 집단은 와해된다. 이처럼 집단을 결속시키는 상호작용 원리를 도그마, 그리고 이를 공유하는 집단을 도메인(domain)이라 한다.

각자도생이 가능하다면 상호작용도 도그마도 필요 없지만, 사람은 집단을 떠나 살 수 없다. 집단 질서를 지속시키는 상식, 관습, 도덕, 종교, 법 등등은 모두 도그마에 포괄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에서 로마는 도메인, 로마법은 도그마다. 그런데 도메인이 다른 서울에서 로마법은 따를 필요가 없다. 원리에서 벗어나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자연법칙과 달리, 인간의 도그마에는 맞고 틀리는 절대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도그마는 집단 구성원들이 놓인 환경과 상황에 따라 자연적으로 형성되기에, 도메인마다 창발되는 도그마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인간 집단은 우분투를 기저 도그마로 공유한다. 즉 최소한 인간의 집단이라면 적용되는 ‘인간 원리’가 바로 우분투다.

연약한 현생 인류의 경쟁력은 정교한 소통능력

생물의 역사책인 생명의 나무(phylogenetic tree)에서 사람 속(genus)은 약 2백만년전 분기되었다. 이후 여기서 다양한 종(species)이 파생되었지만, 현재는 우리 현생 인류(homo sapiens)만 살아남고 나머지 근연종은 모두 멸종한 상태다. 이는 홍 씨 중 홍길동만 바글대는 상황으로, 생물학적으로 단일종이 지배종인 경우는 아주 예외적인 상황이다. 비슷한 육체적 유전적 성질을 지니고 있기에, 지배종은 다양한 근연종과 공존하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예가 중생대를 지배한 공룡이다. 하지만 현생 인류는 압도적 지배종이면서 단일종으로 존재한다. 이런 엄청난 결과에 비해 인류의 육체적 경쟁력은 시작부터 보잘것없었다. 파충류의 시대가 끝난 무주공산에서 포유류의 폭발적인 발산진화가 일어난다. 이때 다른 포유류와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 속의 선조는 나무 위로 쫓겨 올라갔다, 그리고 지구에 기후변화가 닥치면서, 아프리카의 숲이 사라졌고, 다시 땅으로 내려와야 했다. 이때 빠르지도 강하지도 않은 사람 속의 경쟁력은 명민한 두뇌였다. 그리고 이중 현생인류가 등장하게 된다.

현재까지 발견된 현생인류의 가장 오랜 화석은 35만년전의 것이다. 화석이 지층에 기록된 생물의 역사책이라면, 유전 정보는 생물의 족보와 같다. 인류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진화 시계를 거슬러 올라가면, 세계인구 80억 모두는 90만년 전 멸종위기에 몰렸던 천명 정도 집단의 후손이다. 현생인류가 멸종의 위기를 극복하고 단기간에 단일지배종이 된 비결은 지능이 아니다. 다른 근연종들의 지능도 비슷했거나 더 뛰어났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생 인류의 경쟁력은 발성기관의 돌연변이로 인해 획득한 정교한 소통능력이었다. 더 복잡한 정보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집단 진화가 가속화되었다. 이후 현생인류의 확장은 거칠 것이 없었고, 인류 집단의 고도화는 문명 탄생까지 진행되었다.

버틀란드 러셀은 도끼 대신 욕설을 던진 원시인이 최초의 문명인이라는 말을 하였다. 소통이 문명 탄생의 전제 조건이라는 의미다. 문명은 집단을 전제로 창발되었으며, 내부의 이익 충돌은 소통을 통해 해소되어야 한다. 내부적 응징 수단이 돌도끼밖에 없는 집단은 다른 집단과 경쟁을 벌이기 전에 자멸했다. 원시 집단이 와해되지 않고, 사회적 고도화가 문명까지 진행되기 위해서는 상호작용의 질서를 어긴 구성원에 대한 적절한 응징 수단이 필요하다. 이런 배경에서 물리적 폭력을 대신해 분노의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발명된 것이 욕설이다. 원시 시대에는 욕설이 최고의 교양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욕설도 알아들어야 통한다. 언어가 다른 집단 경계를 넘어가면 욕설도 통하지 않는 소통 단절이 발생한다.

스페인 화가 프란치스코 고야의 1814년작 유화 ‘1808년 5월3일’. 나폴레옹 군대에 맞선 스페인 시민들의 저항과 프랑스군의 처형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전쟁은 소통 단절이 일으키는 최악의 폭력

호모 사피엔스는 위험을 예측하고 불확실성을 제거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욕도 통하지 않는 외부 집단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존재다. 불확실성은 두뇌 변연계에 불편함을 유발한다. 소통이 가능하면 불확실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해소되지만, 소통이 단절되면 시간과 함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혐오가 자라나게 된다. 혐오의 근원 감정은 공포다. 존재가 인지되지만 상호작용의 원리를 알 수 없는 집단과 공존하게 되면 혐오는 분노가 된다. 이는 해소되지 않는 불안감을 지속시키는 존재에 대한 분노다. 팽팽한 집단 혐오의 긴장 상태가 지속되면, 작은 자극으로도 집단 폭력이 촉발된다.

소통 단절이 일으키는 최악의 집단 폭력은 전쟁이다. 전쟁은 이타성과 배타성이 공존하는 공동체 정신의 이중성을 잘 보여준다. 공동체의 경계는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공감 엔트로피의 한계선이다. 우리라는 공동체 정신은 집단의 내부에서만 통한다. 집단 내부에서 발현된 이타성은, 우리라는 인식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호전적 배타성으로 돌변한다. 특히 전쟁에서는 개인 폭력의 수준을 까마득히 뛰어넘는 인간성 말살이 발현된다. 한마디로 상대 집단의 구성원은 인간이 아닌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원시 시대 집단 경쟁에서 타집단에 대해서는 강력한 호전적 배타성을 투사해 살아남은 집단의 후손이다.

멸종의 위기를 강력한 집단 정신으로 극복한 현생인류는 성장의 요람 아프리카에서 세계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먼저 자리잡은 근연종을 밀어내면서 단일지배종으로 자리 잡는다. 이런 디아스포라(diaspora)를 거치면서 인류 집단은 하나로 출발해 무수히 많은 독립집단으로 전세계에 흩뿌려져 정착하게 된다. 서로의 연결이 끊어지고, 서로의 존재를 잊은 채 독립된 부족 단위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분투 정신은 각 집단의 고유한 도그마로 파생된다. 이후 부족 집단들은 충돌하고 융합하고 확장되면서 문명이 창발되고 발전하게 된다. 문명에서 벌어지는 현생 인류 집단끼리의 전쟁은 특히 격렬했다.

전쟁이 벌어지면 다른 집단의 구성원은 말살의 대상이 된다. 인간이 아니라 불확실성 제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집단 폭력의 잔혹성은 일진 놀이하는 학교 폭력이나, 보스를 정점으로 하는 조폭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원시 집단을 지탱하던 서열 경쟁의 잔재다. 집단 진화를 했던 인류에게 구성원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생존 문제였다.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개체는 집단에서 퇴출당하였고, 원시 시대에 이는 죽음을 의미했다. 능력 중시, 서열 평가, 인정 욕구 등의 줄 세우기는 집단 진화를 겪은 우리 유전자에 각인된 관성이다. 집단에서 자신의 위치를 계속 확인해야 불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집단의 평가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오히려 상대 집단을 잔혹하게 말살할수록 자기 집단에서 평가가 올라간다. 집단 충돌이 빈번했던 과거에 군인 직업이 귀족의 특권이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몇년 전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 팬데믹은 국적, 인종, 민족, 종교, 지역으로 서로를 구분하고 차별해도 바이러스 앞에서는 인류 모두가 단일종 공동체임을 보여줬다. 픽사베이

가장 원시적이면서 가장 미래지향적인 ‘우분투’ 정신

도메인이 융합되면 기존 도그마들은 사라지지 않고, 도메인의 우열에 따라 우선순위의 변동이 일어난다. 도그마는 과학적 절대 법칙이 아니라 인간 원리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정답을 추구하는 과학에서는 다른 두 법칙이 공존할 수 없다. 하지만 정답이 없는 도그마는 공존이 가능하다. 문명의 발전에 따라 도메인이 융합되고 인종, 민족, 종교, 재산, 정치 등등 여러 도그마의 우선순위가 매겨졌다. 이것이 가치관이며 도메인의 변화에 따라 가치관도 다양하게 변화해 왔다. 특히 우분투에서 출발한 인간의 본질을 의미하는 인간성(humanity)도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해왔다. 고대인은 노예에게는 인간성이 없다고 생각했으며, 중세 서양에서는 원죄로 인한 타락을 인간성으로 여겼다. 이후 르네상스인은 다재다능함을, 철학자들은 이성과 도덕을 인간성으로 여겼다. 불변의 속성으로 정의된 본질이 변하는 이유는 도그마는 도메인 종속이기 때문이다.

가치관의 다양성이 끝없이 확대되고 충돌하는 혼돈에서, 지속가능한 유일한 기저 도그마가 우분투다. 가장 우선순위에 우분투가 놓여 있는 가치관이라면 인류 집단은 다양성의 차원에서 품을 수 있다. 우분투가 이처럼 특별한 것은 천명 정도로 시작된 현생 인류 전체가 공동체 범위이기 때문이다. 바로 몇년전 코로나 팬데믹이 이를 증명해주었다. 아무리 사람들끼리 국적, 인종, 민족, 종교, 지역으로 서로를 구분하고 차별해도 자연의 연결 집행관인 바이러스 앞에서는 단일종 공동체였다.

우분투 앞에서 차별은 의미없다. 아파르트헤이트가 혐오를 유발한 것은 격리로 인한 소통 단절 때문이었다. 단절은 불확실성과 혐오 증폭 그리고 폭력을 유도하였다. 이를 이겨낸 우분투의 인간성은 차별을 행한 백인우월주의자도 차별에 피해입은 유색인종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전제한다. 특히 세계화의 부작용으로 상호 파멸로 치닫는 혐오의 시대에는, 서로에 대한 연결을 상기시키는 우분투 정신이 더욱 필요하다. 아이러니하게 현생 인류와 등장한 가장 원시적인 도그마가 가장 미래지향적이면서 지속가능한 도그마인 것이다.

주철현 | 울산의대 미생물학·의학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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