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빌릴 권리도 인권"…국회서 불붙은 '금융기본권' 법제화

김남희 기자 2026. 4. 3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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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선 "금융은 시혜가 아닌 국민 기본권…헌법적 가치로 재정립해야"
강경훈 "금융 빈부 현상 심각, 금융 기본권은 사회 전체 혁신 동력化"
"구조적 약탈 방지하고 기술 선도 성장 이끄는 금융 시스템 구축 필요"
[출처=김남희 EBN 기자]

지난 28일 오후 국회에서는 '금융 기본권'에 대한 개념과 서민금융 시스템의 근본적 개편을 다루는 대규모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의 핵심 의제는 금융에 대한 접근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재정의하는 것이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은 단순한 경제 활동의 수단을 넘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적인 공공재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금융은 개인의 신용도와 리스크에 따른 선택적 서비스로만 여겨져 왔을 뿐, 국민의 당연한 '권리'라는 인식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날 정치권과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된 '금융기본권' 논의는 이러한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금융을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로 풀이됐다. 

◆'금융 기본권' 시혜적 복지에서 헌법적 권리로의 패러다임 전환

이날 개회사에서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문제 제기가 나왔다. 민병덕 의원은 "소비자는 왕이라지만 금융 소비자만큼은 왕이 아닌 '봉'에 불과하다"며, 자산과 소득이 높은 이들에게만 저금리 혜택이 집중되는 '금융 빈부 현상'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김은경 서민금융진흥원장은 "금융 접근은 위험 사회에서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한 생존의 문제"라고 정의했다. 그는 현재의 정책이 연체 발생 후의 사후적 채무 조정에 치중되어 있음을 지적하며, 국민이 경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으로서 '금융 기본권'을 실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출처=김남희 EBN 기자 ]

토론회 첫번째 발제자인 전학선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연구 30년 차임에도 '금융 기본권'이라는 용어는 생소하게 느껴졌다"며 운을 뗐다. 

하지만 그는 연구 과정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의 흐름인 금융과 관련된 모든 권리는 기본권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며 "그동안 당연히 누려야 할 이 권리를 기본권이 아닌 것처럼 논의해 온 것은 잘못된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발제에 따르면 금융 기본권은 자본주의 체제 아래 현대인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전 교수는 "금융 기본권이 헌법이 정한 어떤 분류에 해당하며, 그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하고 구체화할 것인지가 향후 헌법학적 과제"라고 설명했다.

이는 단순히 자금을 빌리는 문제를 넘어,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국가적 책무와 직결된다는 의미다.  

전 교수는 헌법 제34조(인간다운 생활권), 제15조(직업 선택의 자유), 제14조(거주 이전의 자유)를 근거로, 신용 부족으로 인해 전세 계약이나 자영업 운영이 막히는 현실은 기본권의 침해라고 주장했다. 금융 인프라에 대한 공정한 접근은 시혜가 아닌 국가의 책무여야 한다는 논리다.  
[출처=김남희 EBN 기자 ]

특히 프랑스 등 헌법적 가치가 고양된 서구 사회의 철학적 토대를 바탕으로 금융 기본권의 이론적 기반을 제시했다. 그는 "금융 기본권 논의는 실질적인 민생 금융 정책을 정교화하기 위한 출발점"이라며, 시대 변화에 맞춰 헌법적 권리로서 이를 명확히 정립할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번 발제는 금융 소외 계층의 접근권 문제를 개인의 신용 문제가 아닌 국가가 보장해야 할 기본권의 문제로 전환했다는 점에서 학계와 정계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날 토론회 좌장을 맡은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 교수의 발표는 금융 기본권이 헌법상의 권리가 될 수 있는지, 또 어떤 분류에 속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고 평가했다. 
[EBN ]

◆강경훈 동국대 교수 "금융 빈부 현상 심각, 금융 기본권은 사회 혁신 동력"

두번째 발제자인 강경훈 동국대학교 교수는 금융 기본권이 단순히 취약계층을 돕는 복지 차원을 넘어, 국가 경제 전반의 효율성과 역동성을 높이는 필수적인 장치임을 강조했다.  

강 교수는 현재 우리 금융 시장이 가진 구조적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는 "우리 금융 제품들이 노골적으로 약탈을 추구하지는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약탈이 발생하는 구조적 맹점을 지니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신용등급이 낮아 자금이 절실한 서민들은 턱없이 높은 금리를 부담하는 반면, 자산이 많고 신용도가 높은 이들은 정작 자금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저금리로 막대한 자금을 빌리는 '금융 빈부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강 교수는 '금융 기본권'의 정립을 제안했다. 그는 금융 기본권이 보장될 때 비로소 우리 경제가 '포용적 성장'과 '기술 선도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금융 접근성이 확대되면 실패를 겪은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안전망이 구축되고, 이는 곧 사회 전체의 혁신 동력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출처=EBN 김남희 기자 ]

또한 강 교수는 아담 스미스의 이론을 인용하며, 수익률이 낮은 서민에게 높은 금리를 적용하는 현재의 방식은 경제학적 원리에도 어긋난다고 꼬집었다.

그는 "금융은 모든 국민이 공정하게 접근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여야 한다"며, 국가가 책임지고 금융 소외 문제를 해결해야 할 기본권적 책무가 있음을 역설했다. 아울러 그는 금융 기본권의 실현을 위해 정책 서민금융 기관의 역할 변화와 제도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영일 나이스 센터장 "금융 기본권, 고금리 사채 늪에 빠지지 않을 권리"

세번째 발제를 맞는 김영일 나이스 센터장은 데이터를 통해 서민금융 시장 현황과 현행 금융 시스템의 한계,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금융 기본권'에 대해 제언했다. 

발표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 7%를 상회하던 가계대출 증가율은 최근 2% 안팎으로 급격히 둔화되었다. 정부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80% 수준으로 관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이에 따라 향후 몇 년간 가계부채의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출처=EBN 김남희 기자 ]

주목할 점은 대출 포트폴리오의 변화다.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규제를 피한 자동차 담보나 정책 서민금융 상품으로 대출 수요가 쏠리는 '리밸런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연 소득 3500만원 이하의 저소득층과 3건 이상 대출을 보유한 다중채무자를 중심으로 생계형 자금 대출이 재편되고 있어, 서민금융의 사회적 안전망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시점이라고 김영일 센터장은 지적했다. 

중동 전쟁 발발 이후 경제 지표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이전에는 금리 인하 기대가 있었으나, 이제는 유가 및 물가 상승으로 인한 금리 인상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이는 특히 소득 대비 상환 부담(DSR)이 높은 취약 차주들에게 직격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통계적으로 다중채무자이면서 저소득·저신용인 '취약 차주'는 약 185만명에 달하며, 이들이 보유한 부채 규모는 140조원을 넘어서고 있어 금융 안정을 위협하는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제기되었다.  

발제의 핵심 화두는 '금융 기본권'이었다. 이는 단순히 모든 이에게 무조건 돈을 빌려주는 권리가 아니라, 급전이 필요할 때 고금리 사채의 늪에 빠지지 않을 권리이자, 실패 후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세이프티 넷(Safety Net)'으로 정의됐다. 

◆한재준 교수 "비금융 정보로 금융 이력 부족자 천만명에 대한 대안 마련"

네번째 발제자인 한재준 인하대 교수는 하루 24시간에 대한 채무조정 업무를 설명했다. 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가 시장 원리에 따른 사적 계약(민간금융사)의 영역이라면, 이후 다음날 새벽까지는 연체와 파산의 위험에 노출된 이들을 보호하는 '공적 영역(법원)'이라는 것이다. 

한 교수는 서민금융진흥원과 신용회복위원회는 이 사이 공백 시간을 메꿔서 서민들의 채무조정과 추심 관련 상담을 해야 한다고 제언하면서 정책금융이 시장이 외면한 700점 이하 저신용자들을 보완함으로써 이들이 법원의 파산 절차로 가기 전 마지막 보루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처=EBN 김남희 기자 ]

또한 금융 소외 계층인 '씬파일러(Thin Filer:금융 이력 부족자)' 약 1000만명에 대한 대안도 제시되었다. 통신료 납부, 소액 결제 등 비금융 정보를 활용한 신용평가 체계를 고도화함으로써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하고 금융 포용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또한 중앙은행의 금리 결정 시 물가 안정뿐만 아니라 저소득 계층의 신용 위험과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는 '경기 대응적 금융 기본권' 관점이 필요하다는 혁신적인 제안도 나왔다. 기업 금융에서 산업은행 등이 경기 불황기에 유동성을 공급하듯, 서민금융 영역에서도 취약 차주를 위해 경기 역행적인 대응 조치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각 연구자들 '금융 기본권' 관련 다양한 의견 제시 

마지막 토론회에서 이효경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희소성과 엄중성이 담보된다면 금융 기본권이 헌법에 새롭게 규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며, 은행을 단순한 사기업이 아닌 공공성을 가진 주체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이 자금 융통의 의미를 넘어 개인의 생존과 직결되는 만큼, 국가의 적극적인 입법과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특히 투자자 보호의 관점에서도 기본권 논의가 이어졌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민 4분의 1이 투자자인 시대에 투자자에게 금융 기본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투자자의 자기 책임 원칙도 중요하지만, 합리적 판단이 어려운 환경에서 투자 교육을 받을 권리와 올바른 정보가 제공되어야 할 권리가 '신뢰 자산' 형성의 핵심이라고 짚었다.

인간 심리를 고려한 '행동경제학적' 접근도 필요다는 주장도 나왔다. 변혜원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책 설계 단계에서 소비자의 '인지 능력'과 '심리'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소득층의 경우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터널링 현상(시야가 좁아지는 현상)'이 발생하여 상품 비교 능력이 떨어지고 당장 손쉬운 대출에 매몰되기 쉽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총대출 규모를 명확히 보여주어 소비자가 재고할 수 있는 여지를 주어야 한다"며, 핀테크 기술을 활용한 대안 신용평가 도입을 제안했다. 또한 근로자가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는 사내 대출 등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혁신적인 금융 모델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채무 조정, '도덕적 해이' 넘어선 사회적 안전망으로

장기 연체 채무자에 대한 실질적인 구제 방안도 심도 있게 다뤄졌다. 캠코 산하 장기연체자 지원 재단의 실증 연구에 따르면, 10년 이상 1000만 원 이하의 소액을 갚지 못한 장기 연체자들의 경우 도덕적 해이보다는 '정말 갚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경우가 대다수였다. 

전문가들은 지진이나 팬데믹 같은 거대 재난 상황에서 개인의 빚 못 갚음이 사회적 위기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회 안전망'으로서의 금융 역할을 강조했다. 

이효경 교수는 "채권자와 채무자 간의 협상을 넘어, 비협약 채무까지 포괄하여 모든 채무를 해결할 수 있는 자율적이고 유연한 채무 조정 기구가 필요한 데 서금원과 신복위가 국민들과의 접근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토론자들은 서민 금융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데이터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다중 채무자의 특성을 분석하고 정책 프로그램의 중복을 막기 위해 연구자들에게 금융 데이터를 적극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것을 넘어 저소득 가구에 특화된 '시의적절한 금융 컨설팅'이 병행되어야 한다. 서민금융이 공공과 민간의 가교 역할을 하며, 민간에서 먼저 활동하고 이를 정책 금융으로 수용하는 유연한 구조가 갖춰질 때 비로소 금융 기본권이 실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이번 토론회는 금융을 시장의 상품으로만 보던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재난 속에서도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게 하는 '사회적 권리'로 재정의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확인한 자리였다. 각 패널의 전문적인 시각이 '서민 삶의 질 향상'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수렴되는 과정이었으며, 금융을 바라보는 국가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한편 이번 행사는 더불어민주당 민병덕·오기형·이정문 의원과 서민금융진흥원(신용회복위원회)이 공동 주최하였으며, 한국증권학회, 한국소비자학회 등 5개 주요 학회가 주관하여 학술적 깊이와 정책적 실행력을 동시에 확보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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