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톡톡] “호황이면 뭐하나, 사람이 없는데”… K조선도 남 일 아닌 日의 추락

최지희 기자 2026. 4. 3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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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조선업, 수주 4년 연속 감소·점유율 1%대
인력난에 추가 수주 막히고 가동률 하락
일본 에히메현 사이조시에 있는 일본 최대 조선사 이마바리 조선의 사이조 조선소 전경./이마바리조선 웹사이트

“독(dock·선박 건조장)도, 자금도 있는데 정작 설계 도면을 그릴 사람이 없습니다. 일본이 인재 양성을 멈춘 그 틈을 파고든 덕분에 한국 조선업은 세계 시장의 주도권을 거머쥘 수 있었습니다.”

국내 한 조선소 대표의 평가는 일본 조선업이 마주한 뼈아픈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1980년대 세계 조선 시장을 주도했던 일본은 이제 중국·한국에 밀려 올 1분기 신규 수주 점유율이 1%대까지 낮아졌습니다. 전 세계적인 선박 발주 호황 속에서도 일본의 신규 수주는 4년 내리 줄어들고 있습니다.

◇日 현장선 “인력 없어 수요에 대처 못 해”

30일 일본선박수출조합에 따르면 2025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 수출 선박 수주량은 약 905만총톤(GT)으로 전년 대비 15% 줄었습니다. 고부가가치 선종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은 2016년 이후 수주 실적이 사실상 전무합니다.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 업체 클락슨리서치 집계 결과 올 1분기 일본의 글로벌 수주 점유율은 1.4%(25만CGT)에 그쳤습니다. 한국이 1분기 점유율 20%(357만CGT)를 기록하며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를 이어가는 것과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뒤늦게 위기를 느낀 일본 정부는 조선업을 17개 국가 전략 산업 중 하나로 지정했습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 내각은 2035년까지 연간 선박 건조량을 1800만 총톤으로 지금의 두 배까지 확대한다는 ‘조선업 재생 로드맵’을 지난해 말 내놨습니다. 3단계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10년간 3500억엔(약 3조2000억원) 규모의 기금을 투입한다는 계획도 담겼습니다.

하지만 현지 업계의 반응은 회의적입니다.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하드웨어를 늘리더라도 배를 설계하고 조립할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중견 조선사인 쓰네이시조선은 일할 사람이 없어 공장 가동률을 최고치 대비 40%가량 낮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일본 최대 조선사인 이마바리조선의 히가키 유키토 사장은 최근 닛케이와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해외 수요는커녕 일본 화주의 교체 수요에도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일본 조선업이 쇠락하게 된 핵심 원인으로는 엘리트 인재 양성 시스템의 붕괴가 꼽힙니다. 과거 불황기 당시 당장의 비용 절감에 쫓겨 최고급 설계 인력 양성을 멈춘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실제로 도쿄대는 2000년 학과 개편 과정에서 선박해양공학과(구 선박공학과)를 다른 3개 학과와 함께 시스템창성학과로 통폐합했습니다. 히로시마대 역시 1945년 출범한 조선과를 1991년 엔지니어링시스템교실로 개편하며 학과명에서 조선이나 선박을 지웠습니다. 고급 두뇌를 배출할 파이프라인이 좁아지면서 한국과 중국에 신조선 개발 주도권을 내줬다는 비판이 내부에서 나오는 이유입니다.

일본 이마바리조선 기술센터에서 지난해 직원들이 용접 등을 강습받고 있는 모습./이마바리조선 웹사이트

◇韓 조선 인력난도 갈수록 심화… 中 저가 공세 맞설 무기는 ‘두뇌’

한국 조선 업계는 일본의 빈틈을 파고들어 세계 시장의 주도권을 쥐었으나, 인력 문제는 우리 사정도 녹록지 않습니다. 2010년대 극심한 불황을 거치며 설계 및 엔지니어링 분야 숙련 인력이 대거 현장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2027년까지 13만5000명의 전문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합니다. 2024년 상반기 기준 조선업 미충원율은 14.7%로 전 산업 평균(8.3%)의 두 배에 달합니다.

매년 수천명씩 조선 엔지니어를 배출하는 중국의 추격도 현실적인 위협입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주요 학과가 통폐합된 일본과 달리 한국은 주요 대학들이 조선해양 관련 학과를 유지하며 명맥을 잇고 있다”며 “이를 잘 살려 산업과 정부, 학교가 커리큘럼을 현장 수요에 맞춰 고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부와 국내 조선 3사(HD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한화오션)는 2년 전 ‘K조선 차세대 이니셔티브’를 발족하고 2028년까지 총 9조원을 투자해 전문 인력 양성 등 초격차 기술 확보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정부는 올해 조선 분야 연구·개발(R&D) 예산으로 전년 대비 63% 늘어난 1944억원을 배정했습니다.

하지만 자금 투입만으로 설계 인력 갈증을 단기간에 해소하기는 어렵습니다. 현재 한국 조선업계가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내세우는 무기는 초격차 기술입니다. 수천억원 규모의 선박은 운항 중 한 번의 고장만으로도 선주에게 큰 손실을 입히는 만큼, 초기 건조 단가가 다소 비싸더라도 높은 연비와 품질로 생애 주기 전체 비용을 낮추는 전략입니다.

문제는 이 고도의 기술력을 구현할 주체가 결국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돈으로 설비는 늘릴 수 있어도, 새로운 선종을 개발할 최고급 두뇌는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습니다. 한번 무너진 인재 생태계를 되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일본 조선업이 지나온 30년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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