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 1㎞ 1·2위 각축, 뒷바람까지…마라톤 2시간 벽 허물었다
뛰어난 신체 능력에 훈련, 과학, 기상조건 등
여러 요인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만든 기적

“오늘 이 순간은 나만을 위한 게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다음 세대에게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걸 보여줬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가능해진다.”
26일 런던마라톤에서 1시간59분30초의 기록으로 우승한 사바스티안 사웨(31)는 경기가 끝난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마의 2시간’ 벽을 깬 의미와 소감을 이렇게 피력했다. 이번 대회는 그의 다섯번째 마라톤 경기였다.
2019년 비공식 대회에서 2시간 벽을 깼던 올림픽 마라톤 2회 우승자 엘리우드 킵초게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마라톤에서 2시간 벽을 깨는 것은 오랫동안 전 세계 러너들의 꿈이었다”며 “이번 성과가 인간에게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일깨워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954년 1마일(1.6km) 4분 벽이 깨진 이후 육상계의 최대 사건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번 기록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뛰어난 심폐 기능과 1주일 240km 고강도 훈련
사웨의 신체 능력과 관련한 데이터는 공개돼 있지 않지만 동부아프리카의 고지대에서 나고 자란 케냐 선수들은 어릴 적부터 낮은 산소 농도에 적응하며 생활한 영향으로 심장과 폐 기능이 매우 발달해 있다. 여기에 강도 높은 훈련이 덧붙여지면 경기력이 크게 높아진다.
사웨의 코치인 클라우디오 베라르델리는 성공 비결로 훈련의 효과를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사웨는 경기 전 6주 동안 1주일에 평균 200km 이상, 최대 241km까지 달렸다. 매일 30km 이상을 뛴 셈이다. 이를 통해 이전 대회보다 훨씬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공대 마크 코닉 박사후연구원(운동영양과학)은 전문가 독립매체 ‘더 컨버세이션’ 칼럼에서 “일주일에 최대 240km를 달리는 것은 많은 선수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는다”며 “이것이 마라톤을 2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2024년 국제학술지 스포츠의학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완주 기록이 2시간 30분 이내인 선수는 그렇지 못한 선수보다 3배 이상 훈련량이 많았다. 영국 하트퍼드셔대 연구진이 11만9452명의 마라톤 선수를 대상으로 경기 전 16주 동안의 훈련량을 분석한 결과다.

시간당 115g 탄수화물 섭취로 에너지 공급
2시간 내내 쉼없이, 그것도 1km를 3분 안팎에 주파하는 속도로 달리기 위해서는 탄수화물 섭취가 매우 중요하다. 탄수화물은 우리 몸이 가장 쉽게 끌어다쓸 수 있는 에너지원이다. 우리 몸은 근육과 간에 탄수화물을 저장하고 있지만 저장량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음식으로 보충을 해줘야 한다. 여러 연구를 통해 2시간 이상 중고강도 운동을 할 경우, 운동 중에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지구력을 유의미하게 향상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돼 있다.
사웨는 경기 시작 직전은 물론 경기 중에도 탄수화물 음료와 젤을 섭취했다. 경기 당일 아침엔 빵 두조각과 꿀차로 에너지를 보충했다. 그가 섭취한 젤은 위장 장애 없이 시간당 90~120g의 탄수화물을 흡수할 수 있도록 개발한 것이다.
사웨가 경기 중 섭취한 탄수화물은 시간당 평균 115g이었다. 코닉 박사는 “이는 일반적인 아마추어 선수에게는 권장되지 않지만 2시간 마라톤의 후반부에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사웨는 경기 시작 전 중탄산나트륨도 섭취했다. 근육통을 유발하는 젖산이 쌓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중탄산나트륨은 섭취 후 60~90분 후에 혈중 농도가 최고조에 달한다.

97g 신발과 최적의 날씨, 긍정적 태도
사웨는 독일 스포츠용품 업체 아디다스가 개발한 ‘아디오스 프로 에보3’(Adios Pro Evo 3) 신발을 신고 뛰었다. 아디다스가 ‘역대 가장 빠르고 가벼운 슈퍼슈즈’라고 자랑하는 이 신발의 무게는 97g으로 100g이 되지 않는다. 아디다스는 사웨가 지난해 가을 베를린마라톤에서 신었던 프로 에보2보다 30% 가벼운 신발이라고 밝혔다. 특히 엄청난 반발력(쿠셔닝)을 보여주는 중창(미드솔)은 이전보다 50% 가벼워졌다고 한다.
굽 높이는 39mm로 세계육상연맹이 규정한 40mm를 넘지 않도록 했다. 이번 대회 남자부 상위 5명 중 4명이 아디다스의 이 신발을 신었다. 사웨의 코치 베라르델리는 “신발 덕분에 마라톤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베라르델리는 사웨의 긍정적인 성격도 성공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그는 “사웨는 분명 생리학적으로 훌륭한 선수이지만 태도와 성격 덕분에 모든 요소들이 완벽하게 어우러졌다”며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동시에 겸손하기까지 한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때마침 날씨도 마라톤의 새 역사를 쓰는 데 일조했다. 역대 런던마라톤은 코스가 평탄하기로 유명한 베를린마라톤에 비하면 좋은 기록이 나오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는 날씨가 이를 보완해줬다.
경기 전 며칠간 계속 더웠던 날씨가 경기 당일엔 13~17도로 마라톤 경기에 가장 좋은 조건으로 바뀌었다. 1936~2019년에 열린 1258개의 장거리 육상경기 기록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선수들은 기온이 10~17.5도일 때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미국스포츠의학회 ‘스포츠 및 운동 의과학’, 2022).
게다가 이날은 구름이 끼었고 뒷바람까지 불었다. 템스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마지막 10km 구간에서 이 바람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결승선 1km 앞까지 접전 “한계까지 몰아붙여”
코닉 박사는 “탁월한 신체적 조건, 수년간의 고강도 훈련, 첨단 신발을 이용한 효율적인 생체 역학, 최적화된 영양 섭취, 유리한 기상 조건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2017년까지만 해도 앞으로 몇 세대 동안은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기록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수년 전 마라톤 2시간 예측 통계 모델을 개발한 데이터과학자 사이먼 앵거스 교수(오스트레일리아 모나시대)는 ‘더 컨버세이션’ 칼럼에서 “1960년 이후 기록을 종합해볼 때 이날 2시간 벽이 깨질 확률은 15분의 2로 매우 낮았다”며 “몸 상태가 최적인 시기와 신발, 영양, 날씨, 치열한 막판 경쟁 등 여러 요소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평가했다. 그는 앞서 2019년엔 2시간 벽이 깨지는 시점을 2032년으로 예측한 바 있다.
마라톤 기록 단축, 어디까지 가능할까
1991년 운동생리학자 마이클 조이너가 경기력을 좌우하는 3대 요소(최대산소섭취량, 젖산역치, 경제적 달리기)의 생리학적 최대 추정치에 기반해 계산한 마라톤 기록 한계는 1시간57분58초다. 사웨의 기록과 1분32초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앵거스 교수는 “이번에 사웨의 기록까지 고려해 새로 계산한 한계치는 1시간 54분”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5분30초 더 단축할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사웨는 오는 가을 다시 마라톤 경기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을 대회라면 9월 베를린마라톤일 가능성이 크다. 베라르델리 코치는 “다음엔 1시간 58분대 진입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사웨는 코치의 말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그건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총천연색 5파전’ 평택을…“새 인물에 솔깃” “뜨내기들 마뜩잖아”
- 삼성전자 1분기 영업이익 57조2328억원…반도체가 53조 벌어
- “배현진, 암적 존재”…장동혁이 지명한 국힘 최고위원 공개발언
- 트럼프가 내쫓는 파월 의장, 마지막 작심 비판…“연준 위협 받아…이사직 유지”
- 푸틴, 트럼프와 통화에서 “전승절 행사 기간 우크라와 휴전 가능”
- 미 전문가 “이란, 생각보다 오래 버틸 것…해협 개방 ‘소규모 합의’가 해법”
- 끝 안 보이는 이란 전쟁…미국 두 달 만에 약 37조 썼다
- ‘응급실 뺑뺑이’ 0건 인천…병원·소방 ‘핫라인 소통’서 답 찾아
- 14곳 재보선 ‘미니 총선’…송영길·조국·한동훈 당락, 정치 구도 흔든다
- 정동영 장관, 야당 해임건의안에 “미 의원이냐…숭미 너무 지나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