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차 몰고 이탈리아 속으로… 중세시대 박제된 ‘천공의 성’ 눈앞에[박경일기자의 여행]

박경일 전임기자 2026. 4. 30.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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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일기자의 여행 - 피렌체 ~ 로마 일생 최고의 드라이브
피렌체서 출발
차로 1시간 거리에 ‘산지미냐노’
구릉 위에 솟은 14개 탑 한눈에
동쪽으로 1시간 더가면 ‘시에나’
부채꼴 형태 캄포 광장 평화로워
사이프러스 가로수길 한폭 그림
S로드·Z로드 ‘뷰포인트’ 꼭봐야
로마 가까이
케이블카 타고 닿은 ‘오르비에토’
절벽위 도시 고딕양식 성당 장엄
해발 400m ‘치비타 디 반뇨레조’
하늘에 떠 있는듯 압도적인 경관
대지진 겪은후 現주민 10명 남짓
중세 돌길·석조건물 그대로 남아
절벽 위의 마을 치비타 디 반뇨레조. 지반이 깎여나가면서 점점 땅이 줄어들고 있어 ‘죽어가는 도시’라 불린다. 주민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이곳은 과거의 모습을 더 잘 보존하고 있다.

토스카나·라치오(이탈리아)=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이탈리아 중부를 드라이브로 여행하는 한국인이 부쩍 늘었다. 피렌체에서 로마까지, 혹은 그 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아가며 토스카나의 구릉 지대를 가로지르는 여행이다. 유럽 여행이 패키지에서 개인 자유여행으로 바뀌고, 렌터카 여행이 보편화하면서 생겨난 풍속이다. 비행기 표와 숙소만 예약하면 나머지는 핸들을 잡은 손이 결정한다. 어디서 멈출지, 어디서 더 머물지는 그날그날의 기분과 풍경이 알아서 정해준다.

이탈리아 중부 드라이브 여행의 무대는 크게 두 개의 주(州)에 걸쳐 있다. 토스카나와 라치오다.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의 도(道)에 해당하는 행정구역 ‘레조네(Regione)’를 두고 있는데, 전국 20개 주 중 토스카나는 중부에, 라치오는 그 바로 아래에 붙어 있다. 주도는 각각 피렌체와 로마다. 토스카나 하면 르네상스 예술과 미식, 그리고 완만한 구릉을 따라 이어지는 사이프러스 가로수길이 떠오른다. 라치오 하면 로마다. 라치오 북쪽 끝에는 토스카나의 전원 풍경과 이어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절경이 있다. 피렌체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토스카나를 지나 라치오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그 길을 따라 달렸다. 가장 강렬하고 인상적인 풍경은 마지막에 있었다. 하늘에 떠 있는 도시, ‘천공(天空)의 성(城)’의 얘기다. 여행의 순서와는 관계없이 우선, 그곳부터 가보자.

# 하늘에 떠 있는 도시… 치비타 디 반뇨레조

처음 봤을 때 잠시 말을 잃었다. 넓은 협곡 한가운데, 깎아지른 절벽 위에 마을이 하나 얹혀 있었다. 마침 비가 내리는 날이어서, 주변 계곡에는 운무가 걸렸다. 구름과 안개가 기이한 산정 마을의 풍경을 지우개처럼 지웠다가 토해놓기를 반복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딱 하나. 300m 길이의 보행자 전용 다리뿐이다. 비탈진 다리 저 끝의 산정에 올라선 마을이 마치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치비타 디 반뇨레조. 이탈리아 라치오주 비테르보현에 속한 마을이다. 로마에서 북쪽으로 120㎞, 피렌체에서 남쪽으로 차로 2시간 남짓 거리에 있다. 해발 400m의 응회암 절벽 위에 올라앉은 이 마을은, 토스카나 드라이브를 마치고 로마로 내려가는 길에 들르기 딱 좋은 자리에 있다.

이곳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다. 하늘에 떠 있는 섬 위의 성. 치비타 디 반뇨레조를 처음 보는 순간 그 장면이 겹쳐진다. 물론 실제 애니메이션의 배경모델이나 모티브가 됐다는 공식 확인은 없다. 이런 경우가 꽤 있다. 아바타의 배경이 장자제(張家界)라는 얘기. 포르투의 렐루서점이 해리포터 호그와트 도서관의 모티브가 됐다는 얘기. 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거나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그런데도 그 말이 왜 생겨났는지는 거기 가보면 안다. 치비타 디 반뇨레조도 마찬가지다. ‘그 말이 왜 생겨났는지 단번에 짐작할 수 있는’ 경관이 거기 있다.

# 점점 사라지는 땅이 시간을 박제하다

마을의 역사는 25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에트루리아인들이 이 절벽 위에 처음 정착했다. 에트루리아는 로마 문명보다 앞선, 이탈리아 반도의 고대 문명이다. 지금도 마을의 평면 구조는 에트루리아 시대의 도시 계획을 따르고 있다. 건물의 외관은 중세와 르네상스 양식이지만, 땅의 뼈대는 2500년 전 그대로다.

치비타 디 반뇨레조의 전성기는 중세였다. 그러다 16세기부터 쇠퇴가 시작됐다. 결정적인 것은 지형이었다. 마을이 올라앉은 응회암 지반이 비와 바람에 깎여나가면서 땅이 점점 좁아졌다. 쇠퇴를 가속화한 건 17세기 말에 덮친 대지진이었다. 좁아지는 땅에다 지진 피해까지 겹치니 주민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주교와 시 행정 당국까지 인근 반뇨레조 마을로 빠져나갔다.

지금 치비타 디 반뇨레조의 상주인구는 10명 남짓에 불과하다.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고양이가 주민 숫자보다 더 많을 정도다. ‘죽어가는 도시’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2006년 세계유적재단은 이 마을을 ‘위험에 처한 100대 명소’에 올렸다.

그런데 역설이 있다. 주민들이 떠났기 때문에 마을은 더 잘 보존됐다. 지반침식으로 허물어지고 있는 땅이니 더 이상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던 건 당연한 일. 그렇게 수백 년 전의 모습이 그대로 남겨져 있다. 중세의 돌길, 담쟁이덩굴이 뒤덮은 석조 건물, 작은 광장과 오래된 성당…. ‘사라진 미래’가 과거의 모습 그대로, 마을을 박제해 놓은 셈이다. 마을로 건너가 골목을 걷다 보면,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영화의 스크린으로 빨려 들어간 듯하다.

치비타 디 반뇨레조는 대중교통 편으로 가기에는 쉽지 않다. 로마에서 오르비에토까지 기차를 타고 1시간 30분, 거기서 치비타까지 또 버스로 1시간쯤 가야 한다. 오가는 시간이 긴 데다 대중교통 시간 맞추기가 쉽잖으니 렌터카를 빌려 여행하는 걸 추천한다.

이탈리아 중부 드라이브 여행은 피렌체와 로마 사이를 차로 달리는 코스다. 피렌체의 ‘조토의 종탑’에서 내려다본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 절벽 위의 도시… 오르비에토

치비타 디 반뇨레조에 가려면 딛고 가는 도시가 오르비에토다. 토스카나주와 라치오주의 경계 부근. 오르비에토 역시 에트루리아 시대에 해발고도 300m에 세워진 고대 도시다. 넓은 화산암 지반 위에 도시 전체가 올라앉아 있는 형상이다. 언덕 아래 주차장에서 도시까지는 케이블카인 푸니콜라레(산악열차)를 타고 올라간다. 푸니콜라레에서 내리면 오르비에토 두오모 성당이 마치 마중을 나오듯 나타난다.

오르비에토 두오모는 이탈리아에서도 손꼽히는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의 성당이다. 우선 외관이 장엄하면서 압도적이다. 황금빛 모자이크와 조각으로 뒤덮인 파사드가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성당 안에는 루카 시뇨렐리의 ‘최후의 심판’ 프레스코화가 있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그리기 전에 이 작품을 보고서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오르비에토의 명소 중 하나는 산 파트리치오라는 우물이다. 1527년 로마가 약탈당한 뒤 교황 클레멘스 7세가 오르비에토로 피란해 와서,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게 한 우물이다. 깊이 53m. 두 개의 나선형 계단이 서로 교차하지 않도록 설계했다. 당나귀들이 물을 나를 때 올라가는 길과 내려오는 길이 겹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중세 토목 기술의 정교함이 놀랍다.

에트루리아인들이 전쟁에 대비해 만든 비밀공간인 지하도시도 볼만하다. 높은 곳에 들어선 도시라 방어가 쉽지만, 함락되면 피란할 수 없다는 약점 때문에 만든 공간이다. 주요 건축물은 물론이고 일반 가정집에도 지하로 들어갈 수 있는 비밀 통로가 있다.

# 탑들의 도시… 산지미냐노

가장 인상적이었던 두 곳을 먼저 봤으니 이제부터는 피렌체에서 출발해 로마로 내려가는 드라이브 여행을 순서대로 따라가 보자.

피렌체를 출발하면 가장 먼저 도착하는 곳이 산지미냐노다. 피렌체에서 차로 1시간 남짓. 산지미냐노에 가까웠다는 건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다. 구릉 위에 탑들이 삐죽삐죽 솟아 있어서다. 중세 시대 이 도시의 귀족 가문들이 가문의 부와 권세를 과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탑을 세웠다. 한때 72개의 탑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 남아 있는 건 14개다.

도시로 들어가는 길은 성벽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중세 성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성문을 지나 구시가지 안으로 들어서면 치스테르나 광장이다. 광장 한가운데 13세기에 만든 우물이 있다. 우물 주변으로 카페와 레스토랑이 늘어서 있고, 그 뒤로 탑들이 하늘을 찌른다. 광장에 앉아 올려다보면 중세 도시국가의 위세가 느껴진다.

산지미냐노의 14개 탑 중 가장 높은 건 포폴로 궁전에 딸린 토레 그로사다. 높이 54m. 탑에 오르면 토스카나의 전형적인 구릉 지대가 한눈에 펼쳐진다. 올리브나무와 포도밭이 교차하는 완만한 언덕, 그 사이를 달리는 좁은 도로. 왜 사람들이 이 풍경을 보러 이 먼 길을 오는지 탑 위에 서면 바로 안다.

자동차 여행자에게 산지미냐노가 각별한 이유의 절반쯤은, 피렌체에서 시작하는 드라이브 여행의 첫 목적지여서다. 토스카나 소도시는 저마다의 역사적 배경은 달라도, 건축이 그려내는 전체적인 이미지는 비슷비슷하다. 명소가 죄다 광장과 성당인 것도 비슷하다. 엇비슷한 경관이 계속되니 감회가 희미해지고, 나중에는 구분이 안 되는 정도까지 된다. 가장 강렬한 건 ‘첫인상’이다.

토스카나 일대의 구릉에서 인상적인 건 깎아놓은 연필 같은 사이프러스 나무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등장 인물 막시무스의 집으로 잘못 알려진 사이프러스 가로수길.

# 패자의 도시가 더 아름답다… 시에나

산지미냐노에서 동쪽으로 한 시간 남짓 달리면 시에나다. 중세 이탈리아에서 피렌체와 패권을 다퉜던 도시국가. 지금의 시에나는 조용한 구릉 위의 소도시다.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중심지가 됐고 지금도 이탈리아 최고의 관광도시 중 하나지만, 시에나는 그렇지 못했다.

두 도시의 대비가 흥미롭다. 경쟁에서 이긴 피렌체는 발전했고, 진 시에나는 멈췄다. 멈췄기 때문에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유네스코는 시에나 구시가지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어느 쪽이 더 좋은 도시인가는 단순히 크기나 번화함으로 가릴 수 없다. 어떤 삶을 원하는가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시에나의 중심은 캄포 광장이다. 부채꼴 형태의 광장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 중 하나로 꼽힌다. 광장을 에워싼 중세 건물들이 옛 모습 그대로다. 해마다 7월과 8월 두 차례, 이 광장에서 팔리오라는 말 경주가 열린다. 수백 년째 이어진 행사다. 광장에는 늘 사람이 많다. 광장 바닥의 경사를 따라 앉아서 더러는 커피를 마시거나, 더러는 그냥 멍하니 앉아 중세 도시의 평화로움을 즐기고 있다.

시에나 두오모 성당은 외관부터가 압도적이다. 흰색과 검은색 대리석이 교차하는 줄무늬 외벽이 고딕 양식의 첨탑과 어우러진다. 안으로 들어서면 장식의 밀도에 숨이 막힌다. 56개 대리석 패널에 성경 이야기를 새겨놓은 바닥부터 벽도, 천장도 온통 정교한 조각과 그림이다. 성당의 화려한 장식은 꾸밈이 목적이라기보다, 그걸 만드느라 바쳐야 했던 지극한 노고의 증명으로 읽힌다.

# 토스카나의 심장부를 달리다

시에나를 벗어나면 토스카나 드라이브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시에나의 주 도로에서 벗어나 좁은 시골길로 들어서는 순간, 풍경이 확 달라진다. 완만하게 굽이치는 구릉, 구릉 위의 포도밭과 올리브나무, 그 능선을 따라 드문드문 서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 엽서 속에서 보던 토스카나가 차창 밖으로 흘러간다.

토스카나 구릉 지대의 핵심은 발도르차 지역이다. 오르차강 유역의 계곡 지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이 일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진 명소가 사이프러스 가로수길이다. 반뇨 비뇨니 마을에서 갈리나 마을로 이어지는 SR2번 도로변에 있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구릉 능선을 따라 두 줄로 늘어서 있다. 언덕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면 한 폭의 그림이다.

이 길을 두고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나오는 주인공 막시무스의 고향 집이 있던 곳이라는 말이 돌아다닌다. 근거 없는 풍문이다. 사이프러스 가로수길은 영화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유명한 곳이었다. 이미 유명한 곳이 영화 속 장소를 닮아 이야기가 생겨났다.

이 일대에는 드라이브하며 감상할 수 있는 뷰포인트가 곳곳에 있다. SR88번 도로 근처의 S로드 뷰포인트는 도로가 S자로 굽이치는 장면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Z로드 뷰포인트는 라포체 정원 근처에 세 군데가 있다. SP40번 도로를 따라가면 세 포인트를 다 만날 수 있다. 어느 자리에서든 구릉 위로 뻗어가는 도로의 Z자가 그리는 선이 아름답다.

발도르차 일대의 작은 마을들도 빼놓을 수 없다. 산퀴리코 도르차는 아담한 중세 마을로 기하학적으로 가꿔진 호라티 정원으로 이름난 곳. 피엔차는 15세기 교황 피우스 2세가 자신의 고향 마을을 이상적인 르네상스 도시로 재건한 곳이다. 몬탈치노는 이탈리아 최고급 와인 중 하나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의 산지다. 구릉 위 언덕 마을에서 포도밭을 내려다보며 마시는 와인 한 잔은, 가격과 상관없이 근사하다. 몬테풀치아노 역시 유명 와인 산지다.

발도르차를 지나면 드라이브 여정은 앞서 맨 앞에서 얘기한 천공의 도시 치비타 디 반뇨레조, 그리고 절벽의 도시 오르비에토로 이어진다. 이 땅을 한번 달려보면 안다. 이 여행이 일생 최고의 드라이브 여정으로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란 사실을. 이 여행의 감동은 일생에 ‘딱 한 번뿐’이다. 다시 다녀올 수도 있겠으나 두 번째 여행의 감동은 첫 번째를 넘지 못할 것이기에….

이탈리아 중부의 소도시에는 상설시장이 없어 농수산물 등을 실은 트럭들이 정기적으로 들어와 광장에 좌판을 편다. 마치 우리 오일장 같은 분위기다.

# 어떻게 달릴 것인가

자, 이제 여정을 정리해보자. 피렌체에서 로마까지의 이탈리아 중부 드라이브 여행은, 피렌체와 로마 관광을 빼고 드라이브에만 최소 4일은 잡아야 한다. 피렌체에서 출발해 산지미냐노를 거쳐 시에나로 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첫째 날 동선이다. 시에나에서 하룻밤을 묵거나 발도르차 일대의 아그리투리스모에 묵어도 좋겠다. 둘째 날은 발도르차의 뷰포인트들을 찾아다니며 사이프러스 가로수길을 보고, 피엔차와 산퀴리코 도르차를 들른다. 셋째 날은 몬테풀치아노를 거쳐 남쪽으로 내려가다가 오르비에토에서 숙소를 잡고, 넷째 날에 치비타 디 반뇨레조를 보고 로마로 내려간다. 느릿느릿 다니는 게 이 여행의 법도다. 사이프러스 가로수길 앞에서 수시로 차를 세우고, 피엔차 골목에서 길을 잃고, 몬탈치노의 와인 바에서 예상보다 오래 머무는 것. 그런 순간들이 이탈리아 중부 드라이브를 충만한 여행으로 만든다.

ZTL·무인 주유소·도둑… 방심하다 털린다
■ 이탈리아 여행의 리스크

이탈리아 도시에는 거의 예외 없이 ZTL(도심 자동차 출입통제지역)이 있다. 환경오염과 문화유적 보호, 현지인들의 생활공간 보장 등을 위해 설정해둔 구역이다. 여행자들이 이 구역에 차를 몰고 들어갔다가는 벌금 폭탄을 맞는다. ZTL은 차를 타고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에게 제법 큰 스트레스다.

또 하나의 주의사항. 이탈리아의 무인 주유소에서는 되도록 현찰을 이용하지 말 것. 로마근교에서 실제로 경험한 일인데, 주유기에 100유로 지폐를 넣고 50유로만큼만 주유하니 거스름돈 대신 감열지에 인쇄된 QR코드가 나왔다. 이걸로 같은 브랜드의 다른 주유소에서도 기름을 넣을 수 있겠거니 했는데, 알고 보니 QR코드는 ‘그 주유소에서만’ 통용된단다. 지나온 지역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여행자는 돈을 날릴 수밖에. 이런 부당한 데가….

거스름돈을 어떻게 돌려받을지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없는 시스템이 놀라웠지만, 더 놀라웠던 건 정작 이탈리아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다들 “왜 그게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이건 외국인 관광객이 아니어도 불편한 일 아닌가? 이런 비슷한 경험을 주유소 말고 다른 곳에서도 여러 번 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건 ‘창궐하는 도둑’이다. 이건 자동차 여행에만 통용되는 건 아니다. 여행자들 사이에서 도난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포털사이트의 이탈리아 여행 동호회사이트에는 매일매일 도난이나 강탈사고 얘기가 이어졌다. 한 나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루에 이렇게 많은 범죄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로마에 도착한 첫날 트렁크를 통째로 도난당하는 바람에 그 길로 귀국한다는 사연도 있었고, 예약정보가 가득 들어 있는 휴대전화를 날치기당하고 망연해하는 여행자도 있었다. 도심 골목에서는 유리창이 깨진 차량을 여러 번 목격했다. 인적 드문 골목에 차를 세우면서 차 안에 무언가 값나가 보이는 걸 ‘눈에 보이게’ 두면 여지없이 당하는 듯했다. 신경 쓸 일도 많고 주의해야 할 점도 많지만, 핸들을 잡고 고대 유적과 중세의 도시, 이국적인 자연풍경을 제 맘대로 가로지르는 경험은 그런 어려움을 다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매력적이다.

■ 아그리투리스모

토스카나 드라이브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경험이 ‘아그리투리스모’다. 이탈리아어로 ‘농업 관광’이라는 뜻인데, 농가나 포도 농장을 숙소로 개방한 형태다. 피렌체 근교의 아그리투리스모 ‘토레비앙카 투스카니’에서 묵었다. 두꺼운 돌벽, 테라코타 타일 바닥, 나무 천장. 창문을 열면 포도밭과 올리브나무가 펼쳐지는 목가적인 숙소다. 가정식으로 준비해준 저녁 식사가 특별했다. 농가에서 재배한 채소로 만든 샐러드와 직접 만든 파스타, 화덕에 구운 피자에다 지역 와인을 곁들였다.

박경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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