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 200만·물가 67% 폭등…美 '봉쇄'에 무너지는 이란 경제
식품·원자재 수입난에 산업 전반 압박
정부 보조금·현금지원으로 대응
“호르무즈 해협 폐쇄가 협상 핵심 변수

이란 경제가 고용, 물가, 무역 전반에서 악화하고 있다. 전쟁과 미국의 해상봉쇄 여파다. 경제 고통이 커질수록 이란 지도부가 압박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3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전쟁은 이란 경제에 100만명 이상의 직접 실업, 식료품 가격 급등, 장기 인터넷 차단에 따른 온라인 사업 피해를 초래했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미국 당국자들은 경제 위기가 깊어지면 이란이 곧 버티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이란은 미국이 세계 시장 안정과 휘발유 가격 하락을 위해 먼저 이란 항만 봉쇄를 끝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충돌의 중심에는 호르무즈 해협 폐쇄가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의 약 5분의 1이 지나는 통로다. 이란은 분쟁 초기 해협을 닫으며 세계 경제를 압박 수단으로 삼았다. 미국은 이에 대응해 자체 해상봉쇄에 나섰고, 이는 이미 취약해진 이란 경제에 큰 타격을 줬다.
이란 정부는 경제 충격을 줄이기 위해 임금 인상, 생필품 보조금, 저소득층 현금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현지 주민들은 수십 년 만에 보기 어려운 수준의 생활고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중동연구소의 이란 전문가 알렉스 바탄카 선임연구원은 "이란이 권위주의 체제인 만큼 경제 압박에 저항하는 것을 국가적 자존심 문제로 주장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봉쇄로 자금이 마르면 더 많은 사람이 정치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란 정부 수입은 줄어드는 반면 주민 지원 수요는 커지고 있다. 이란 노동·사회복지부 관계자 골람호세인 모하마디가 인용한 초기 추산에 따르면 전쟁으로 직접 일자리를 잃은 사람은 약 100만명, 간접적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도 약 100만명이다. 이는 평상시 이란 취업자 약 2500만명 가운데 상당한 비중이다. 고용 충격이 가계 소비와 사회 안정에 동시에 부담을 주는 구조다.
물가 부담도 빠르게 커졌다. 이란 중앙은행에 따르면 4월 중순까지 한 달 기준 연간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67%에 달했다. 주로 해상 경로로 수입되던 붉은 고기의 보조금 적용 가격은 파운드당 약 3.60달러 수준까지 올랐다. 월 최저임금이 약 130달러인 이란에서는 상당수 가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29일 이란 통화는 달러당 180만리알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빈 국제경제연구소의 마흐디 고드시 연구원은 “생활을 감당할 수 없게 됐다”며 “이란은 가장 약한 지점에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제조업체부터 소매업체까지 전국적으로 기업 폐쇄가 이어지고 있다. 철강과 기타 원자재 부족은 여러 산업의 생산을 막고 있다.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전자제품은 부족하고 가격도 높아졌다.
이란 경제 위기는 전쟁 이전부터 누적돼 있었다. 수년간 이어진 미국과 국제사회의 제재는 이란 경제를 약화시켰다. 통화 가치 붕괴와 급격한 물가 상승은 연초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촉발했고, 정권은 이를 강경 진압했다. 전쟁 이후 시위의 배경이 된 경제 문제가 더 악화하면서 불안이 다시 커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폭격은 도로, 항만, 주거용 건물에 광범위한 물리적 피해를 남겼다. 이란의주요 철강·석유화학 공장 등 핵심 산업도 타격을 받았다. 이란 국영매체는 전후 재건 비용이 약 2700억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는 지난해 이란 국내총생산 3410억달러와 비교해도 매우 큰 규모다.
봉쇄 이전 이란의 원유 수출과 식품, 의약품, 원자재 수입 대부분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 지금은 원유와 주요 상품 수송이 어려워지며 정부 수입원이 막히고 있다. 이란은 지난 3월 하루 185만배럴의 원유를 수출했고, 국제 가격 기준 가치는 하루 1억9100만달러였다. 원자재 데이터업체 케이플러의 호마윤 팔락샤히 선임 원유 애널리스트는 "미국 봉쇄를 뚫고 중국 고객이나 다른 구매자에게 도달한 이란산 원유 화물이 있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의 빠른 재개방을 원하고 있다. 지역 중재자들에게 해협 내 공격을 중단하는 대신 전쟁의 완전한 종료와 이란 항만에 대한 미국 봉쇄 해제를 요구하는 제안을 제시했다. 이란은 핵 프로그램 관련 논의는 뒤로 미루기를 원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민생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최저임금과 공무원 급여를 올렸다. 빵, 연료 등 필수품 가격 보조도 이어가고 있다. 저소득층에는 현금을 지급하고 쌀, 닭고기, 식용유 등 구매용 쿠폰도 발행하고 있다. 가계 필수품 전략 비축분을 풀어 일반 주민의 경제적 충격을 줄이려는 조치도 취했다.
동시에 정부는 국민에게 물, 전기, 가스 소비를 줄여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테헤란 주민들에게는 운전을 줄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권고도 나왔다. 보호무역 조치도 병행하고 있다. 이란은 철강 제품 수출을 금지했고, 라술 칼리페 솔타니 이란철강생산자협회 사무총장은 "향후 두 달 동안 기업들이 철강판 사용을 배급 방식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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