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정책 ‘34년 최대 분열’에 전·현직도 한솥밥 [트럼프 스톡커]
“에너지 가격 상승” 연준, 3연속 금리 동결
34년 만에 4명 반대...‘추후 인하’조차 반발
파월은 78년 만에 “의장 퇴임 뒤 이사 유지”
‘親트럼프’ 마이런 퇴출 위기...인상 확률 급등
‘인준 속도’ 워시, 6월 FOMC부터 첩첩산중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3.50∼3.75%로 3회 연속 동결한 가운데 사상 최악의 분열 양상을 보였다. 백악관에 가까운 인사는 중동 전쟁과 유가 급등에도 금리를 무조건 내려야 한다고 우겼고, 올해부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투표권자로 참여한 4명 가운데 3명은 앞으로도 금리를 내리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상황에서 연방 의회는 다음달 15일 제롬 파월 의장이 퇴임할 수 있도록 케빈 워시 차기 연준 의장에 대한 인준 속도를 높이고 나섰다. 새 의장이 임기 초부터 역사상 가장 분열된 연준을 이끌게 됐다는 뜻이다. 설상가상 파월 의장은 자신에 대한 미국 법무부 수사를 이유로 의장직 퇴임 이후에도 이사직을 유지하겠다고 밝혀 불화의 씨앗을 남겼다. 통화정책에 대한 이해관계가 다른 전·현직 의장이 당분간 연준 내에서 충돌할 가능성이 생긴 셈이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매번 통화완화를 주장하는 친(親)백악관 인사 스티븐 마이런 임시 이사는 파월 의장에 밀려 연준을 곧 떠나야 할 신세로 밀렸다.

연준은 지난해 9·10·12월 세 차례 연속 금리를 인상했다가 올 들어서는 1·3월과 이번까지 세 차례 연속 동결 결정을 내렸다. 이번 결정으로 한국(2.50%)과 미국의 금리 차는 상단 기준으로 1.25%포인트를 유지하게 됐다. 연준은 “중동 지역의 정세 변화는 경제 전망에 대한 높은 불확실성을 초래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최대 고용과 2%의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지표들은 경제 활동이 견조한 속도로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며 “일자리 증가는 평균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실업률은 최근 몇 달간 거의 변동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준의 금리 동결 결정은 사실 시장에서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 시장은 이번 FOMC 회의 직전까지 금리 동결 확률을 100%로 봤다.
시장은 외려 연준의 분열 양상에 주목했다. 투표권을 가진 12명의 FOMC 위원 가운데 마이런 이사는 이번에도 금리 0.25%포인트 인하를 주장하며 동결에 반대했다. 마이런 이사는 지난해 9월 연준 합류 이후 이번 FOMC 회의까지 총 여섯 차례 회의에서 한 번도 빠짐없이 최종 합의된 금리 수준보다 0.25%포인트를 더 내려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이와 반대로 로리 로건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 베스 해맥 클리블랜드연은 총재,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연은 총재 등 3명은 금리 동결에는 찬성하면서도 “추가 조정” 문구 등 금리 인하 기조를 시사하는 연준 성명에는 반대했다. “금리 목표 범위에 대한 추가 조정의 범위와 시기를 고려할 때 위원회는 들어오는 데이터, 변화하는 전망, 위험 균형을 신중히 평가할 것”이라는 부분을 통화완화에 편향된 내용이라고 지적하며 이에 반발한 것이다. CNBC에 따르면 연준에서 4명의 위원이 반대 의견을 낸 일은 1992년 10월 이후 34년 만에 처음이다.
공교롭게도 금리 인하에 강하게 반대한 3명의 인사는 모두 올해 FOMC 투표권자로 합류한 이들이었다. 올해 FOMC 투표권자가 된 4명 가운데 성명에 찬성한 사람은 애나 폴슨 필라델피아연은 총재뿐이었다. FOMC는 파월 의장, 필립 제퍼슨 부의장, 미셸 보먼 부의장(금융감독 담당), 마이클 바 이사,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 리사 쿡 이사, 마이런 이사 등 연준 당연직 이사 7명에 지역 연은 총재 12명을 합쳐 총 19명으로 구성된다. 투표권은 연준 이사 7명과 연은 총재 5명이 행사한다. 연은 총재 5명 가운데 존 윌리엄스 뉴욕연은 총재만 상시 투표권을 갖고 나머지 4명은 연은 11곳이 매년 돌아가며 맡는다.

앞서 미국 법무부는 파월 의장이 연준 청사 개보수 비용이 불어난 것과 관련해 지난해 6월 의회에서 위증을 했다는 의혹을 조사했다. 워싱턴DC 연방법원은 지난달 11일 파월 의장에 대한 연방 검찰의 대배심 소환장을 무효화했지만 검찰은 항소하며 수사 의지를 꺾지 않았다. 파월 의장은 이에 반발하며 지난달 1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직후 해당 수사가 끝날 때까지 연준에 남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워시 후보자에 대한 인준이 늦어질 경우 연준법에 따라 임시의장직을 수행하겠다고도 알렸다. 파월 의장의 의장직 임기는 다음달 15일이지만 이사직 임기는 2028년 1월 31일까지다.
이후 법무부는 연방 상원 은행위원회 소속 톰 틸리스 공화당 의원이 파월 의장에 대한 수사가 끝날 때까지 워시 후보자 인준에 반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결국 지난 24일 수사 중단을 선언했다. 틸리스 의원은 법무부 발표 이후 마음을 돌렸고 워시 후보자에 대한 인준안은 이날 연방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가결됐다. 파월 의장의 이사직 잔류 결정은 아직도 트럼프 행정부의 연준 개입 의도에 대해 불신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파월 의장은 “최근 상황 전개를 고무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의 절차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CNBC는 파월 의장이 연준에 계속 남을 경우 이는 1948년 2월 매리너 에클스 전 의장 이후 78년 만에 첫 사례라고 분석했다. 관행적으로는 연준 의장이 의장직 임기가 끝날 때 이사직도 함께 내려놓은 편이다. 에클스 전 의장도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저금리 유지 압박에 맞설 목적으로 연준에 이사로 남았다. 트루먼 대통령도 현 트럼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전쟁 비용 조달에 따른 재정 부담에 허덕이고 있었다. 에클스 전 의장은 연준이 재무부에서 완전히 독립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소신으로 맞부딪쳤고, 결국 연준·재무부 합의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쟁취한 뒤에야 1951년 7월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파월 의장은 조지 부시 전 행정부에서 재무부 차관을 지낸 뒤 2012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연준 이사로 임명돼 중앙은행에 발을 들였다. 파월 의장은 정통 경제학자 출신인 대다수 역대 의장들과 달리 변호사 출신으로서 월가에서 투자 실무 경력을 쌓은 인사다.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도 2018년 2월 파월 의장이 취임할 당시만 해도 그의 투자 부문 실무 능력을 높이 샀다.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뒤부터는 백악관과 극도의 갈등을 겪었다. 재정 부담 경감, 관세 정책 극대화 등을 이유로 줄기차게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신경 쓰지 않고 지난해 1~7월 내리 금리를 동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스터 투 레이트(금리 인하 결정이 너무 늦는 사람)’ ‘루저(실패자)’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어리석고 고집 센 사람’이라며 수차례 파월 의장을 비난했다. 지난해 8월 25일에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임명한 첫 흑인 연준 이사인 리사 쿡 이사에게 주택담보대출 사기 혐의를 이유로 해임을 통보했고, 올초부터는 파월 의장에 대해서도 연준 청사 개보수 공사와 관련한 수사에 착수했다.

남은 절차는 연방 상원 전체회의 표결이다. 현 연방 상원은 공화당 53석, 범민주당(야당 성향 무소속 4명 포함) 47석 등 총 100석으로 구성돼 있다. 공화당에서 4명만 이탈하지 않으면 인준은 최종 가결된다. 공화당에서 3명이 이탈해 50 대 50으로 동수가 돼도 워시 후보자에 대한 인준안은 통과될 확률이 높다. 본회의에서는 당연직 상원의장인 JD 밴스 부통령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수 있는 까닭이다.
특히 이날은 그간 파월 의장에 대한 수사가 끝날 때까지 인준에 반대하겠다고 했던 틸리스 의원이 끝내 찬성표를 던져 눈길을 끌었다. 미국 법무부가 파월 의장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자 입장을 바꾼 것이다. 틸리스 의원은 26일 NBC에서 “법무부의 확답을 얻었으므로 워시 후보자의 인준을 진행할 준비가 됐다”며 “그는 훌륭한 연준 의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시 후보자는 지난 1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명으로 차기 연준 의장 후보자가 됐다. 워시 후보자는 이달 21일 인사청문회에서 “대통령이나 상원의원, 하원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들이 금리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게 통화정책 운영 독립성을 특별히 위협한다고 보지 않는다”면서도 “내가 인준되면 독립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시 후보자는 1970년 미국 뉴욕주 앨버니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금융 전문가다. 스탠퍼드대 공공정책 학사, 하버드대 로스쿨 법학 석·박사 등을 거쳐 1995년부터 모건스탠리에서 근무했다. 모건스탠리에서 인수합병(M&A) 관련 업무를 담당하며 30대 초반에 부사장급 직위까지 올랐다. 워시 후보자는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인 2002∼2006년 대통령 경제정책 특별보좌관,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사무국장으로 공직에도 발을 담갔다. 2006년 2월에는 35세로 역대 최연소 연준 이사까지 됐다.
연준 근무 초기 글로벌 금융위기 수습 과정에서는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의 최측근 참모 역할을 맡아 월가와 워싱턴DC를 오가며 정·재계의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다가 2010년 11월 연준이 2차 양적완화(QE) 조치를 결정하자 이사들 가운데 유일하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우려하며 비판적인 입장을 냈다.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칭답게 양적완화 정책을 계속 고수해야 한다는 버냉키 의장과 충돌한 워시 후보자는 결국 2011년 연준 이사직을 사임했다. 2018년 1월까지 임기가 7년이나 더 남은 시점이었다. 이런 까닭에 시장은 그간 그를 매파(통화긴축 선호) 성향의 인사로 분류했다. 상원 인준 절차가 예상대로 진행될 경우 워시 후보자는 오는 6월 16∼17일 열리는 다음 FOMC 회의부터 금리 결정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파월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의 우려는 연준에 가해지는 일련의 법적 공격이고, 이는 우리가 정치적 고려 없이 통화 정책을 수행할 능력을 위협한다”며 “나는 적절하다고 생각될 때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사회 잔류가 정치적 행위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며 “연준 독립성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림자 의장’과 같은 역할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워시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말했듯 정치적 압력에 잘 대처할 것이라 믿는다는 말도 전했다.
워시 후보자가 취임 초부터 통화완화에 속도를 붙이지 못할 공산이 커지자 시장 참여자들도 첫 FOMC 회의 때부터 금리 동결에 무게를 싣기 시작했다. 이날 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 시장은 6월 FOMC 회의의 금리 동결 확률을 97.4%에서 99.0%로 높여 잡았다. 워시 후보자에 대한 인준 작업이 빨라지고 있는 데도 연내 내내 금리가 동결될 확률도 80.0%에서 85.5%로 올렸다. 심지어 금리 인상 확률은 전날 0%에서 총 13.5%로 치솟았다. 연내 금리 인하 확률은 20.0%에서 하루 만에 1.0%로 급락했다. 파월 의장은 이와 관련해 “에너지 가격에 대해선 언급하기 어렵다”면서도 “당장 금리 인상을 주장하는 위원은 아무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란 전쟁 장기화 조짐과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반발 심리가 겹치면서 워시 후보자의 어깨도 한층 무겁게 됐다. 연준의 독립성 사수와 임명권자에 대한 보은 사이에서 워시 후보자가 어떤 길을 선택할지가 앞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중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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