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자라는 속도

칼럼니스트 강백수 2026. 4. 30.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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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곰은 뚱뚱해] 잘 자라고 있는 아이를 보며 조급해질 필요가 없는 이유

아들과 함께 집 근처에 있는 실내 놀이터에 갔다. 한산한 평일 오후, 사람이 많지 않은 넓은 공간에서 아들은 신나게 뛰어 놀았고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놀이 공간의 한 켠에는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아들이 좋아하는 주방놀이 장난감이 가득 있었다. 우리 집에서 내가 요리를 전담하고 있어서 아들은 요리 도구를 보면 "아빠, 아빠" 하며 웃곤 한다. 요리 재료 모형들이 쌓여 있는 서랍장 쪽에서는 아들보다 조금 작은 여자아이가 엄마와 함께 놀고 있었다. 여자아이는 아들을 보자마자 "어? 오빠가 왔네?"라고 말했다. 아들이 덩치가 워낙 큰 편이라 또래 아이들이 형이나 오빠로 오해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나는 여자아이에게 웃으며 "오빠 아니고 친구 같은데?"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여자아이는 엄마에게 가서 "엄마! 친구가 왔어!"라고 말했다.

나는 조금 놀라운 기분이 들었다. 척 봐도 아들과 비슷한 개월 수 같아 보이는데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는 아이가 대단해 보였다. 21개월인 우리 아들은 자기가 마음대로 만든 단어를 포함해서 (예를 들어 고양이는 냔냐, 딸기는 따따) 서른 가지 정도의 단어를 파편적으로 구사하는 수준이다. 나는 아이 엄마에게 아이가 몇 개월이냐고 물었고 아이 엄마는 이제 막 두 돌이 지났다고 대답했다. 물론 이맘 때 한두 달 차이는 발달에 있어 큰 차이로 작용하지만 아들이 석달쯤 지났을 때 저 정도의 언어구사능력을 습득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말을 정말 잘 하네요"라고 했더니 아이 엄마는 "여자애이기도 하고, 언니가 있어서 그런가봐요"라고 말했다.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의 언어 발달이 좀 더 빠르고, 아이가 둘째인 경우에는 더 빠르다고 들은 적은 있다. 그래도 그때 나는 괜히 조금 부러운 마음과 조급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이 친구는 몇 개월이에요?" 아이 엄마가 물었다. 21개월이라고 했더니 눈이 동그래졌다. "아기가 정말 크네요." 아들은 성장발달 검사를 할 때마다 키와 체중 모두 최상위권이라는 결과를 받곤 했다. 여자아이의 엄마는 자기 아이가 너무 안 커서 고민이라고 했다. 확실히 100cm에 16kg정도 되는 우리 아들과 비교하니 확연히 차이가 나는 체구이기는 했다. "천천히 크는 아이들도 많으니까요"라고 말을 건네고 나는 아들과 함께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내가 마지막으로 했던 그 말이 뜻밖에 내 머릿속에 남아 맴돌았다. 몸 뿐 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 있어서도 천천히 크는 아이들과 빨리 크는 아이들이 있는 것인데 잠시나마 아들보다 말 잘하는 아이를 보고 부럽고 조급했던 내 모습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아들은 자기만의 속도로 잘 자라고 있다. ⓒ강백수

어느 부모나 내 아이가 모든 면에서 남들보다 뛰어나길 바란다. 말을 잘 하고 키도 크고 영특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의 염원이 다 이루어질 수는 없다. 키가 큰 아이가 있으면 키가 작은 아이가 있고, 공부를 잘 하는 아이가 있으면 덜 잘 하는 아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비록 성적이 우수하지 못해도 다른 분야에 재능을 보이는 아이가 있을 수 있고, 반면에 공부 잘 하는 아이는 그것을 잘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언젠가는 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잘 하는 것들과 상대적으로 덜 잘 하는 것을 발견하고 인정해야 하는 때가 올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 아들은 아직 빠르게 성장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아들이 여러 방면에서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다양한 방향의 성장이 모두 같은 속도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어떤 부분에서는 남들보다 조금 빠르게, 또 어떤 부분에서는 남들보다 조금 더디게 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말을 아주 빨리 배웠지만 걸음마가 다른 친구들보다 느린 아이였다고 들었다. 걸음마가 느렸던 나는 지금은 16킬로 나가는 아들을 번쩍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주차장을 빠져나오니 벚꽃이 피었던 자리에 온통 푸르른 잎사귀들만 가득 있었다. 반면에 라일락은 지금이 절정이라 여기 저기 흐드러지게 피었다. 라일락이 지고 여름이 오면 수국이 필  거고 가을이 오면 코스모스가 핀다. 안달한다고 겨울에 장미가 핀다거나 가을에 튤립이 피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 막 싹 틔우고 자라나고 있는 아들에게 빨리 피어나라고 재촉하는 아빠가 되는 것은 미련한 것이다. 그 대신 언제라도 자기가 준비 되었을 때 커다랗고 예쁜 꽃을 활짝 피울 수 있게 빛을 비춰주고 물을 뿌려주고 좋은 흙을 부어주는 아빠가 되어야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은 또 새로운 단어를 말했다. 아들이 "쁘이, 쁘이" 하기에 그것이 무슨 말인가 했더니 도로를 달리는 버스를 볼 때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며칠 전에는 커다란 배가 그려진 그림을 보고 "뿌-" 하고 뱃고동 소리를 내기도 했다. 자기 속도로 잘 자라고 있는 것이 틀림없는 아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칼럼니스트 강백수(인스타그램 baeksoo_kang)는 2008년 시인으로 등단했고 2010년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다.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일상의 시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6시에 잠들던 예술가로 살다가 이제는 6시에 일어나는 아빠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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