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아프리카와 개발협력⑿:나미비아의 역사와 현재

김재근 2026. 4. 3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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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영완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영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아프리카 나미비아 지도 [제작 양진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는 보츠와나처럼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을 함께 이루어낸 곳으로 여겨지는 국가가 또 한 곳 있다. 보츠와나와 경계를 맞대고 있으며, 10여 년 전 꽃보다 청춘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에게 친숙해진 나미비아다. 프리덤하우스 평가에 따르면 나미비아는 사하라 이남 국가 가운데 몇 안 되는 자유로운 국가로 분류된다. 특히 시민의 자유가 잘 보장된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나미비아가 1990년 독립 이후 단 한 번의 쿠데타나 유혈 사태 없이 평화로운 정치 상황을 유지해온 것은 분명한 성취다. 그러나 2025년, 세계은행은 나미비아를 상위 중소득국에서 하위 중소득국으로 강등했다. 극심한 소득 불평등으로 인해 성장의 과실이 사회 전체로 고르게 퍼지지 못한 구조적 한계가 작용한 결과다.

나미비아의 불평등은 매우 높은 수준이다. 수도 빈트후크는 유럽 도시 못지않게 발전해 있지만, 대부분의 국토와 농촌 지역은 여전히 개발의 혜택에서 소외됐다. 성취와 한계가 공존하는 미완의 성공, 그것이 바로 지금 나미비아가 직면한 현실이다.

나미비아의 불평등에 관해서 이야기하려면 먼저 나미비아의 발전된 민주주의의 이면에 존재하는 구조적 긴장을 살펴야 한다.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남서아프리카인민기구(SWAPO)는 독립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집권 여당의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선거는 정기적으로 치러지고 야당도 존재하지만, SWAPO의 독점적 지배는 경쟁적 민주주의의 핵심 전제인 정권 교체 가능성을 사실상 없애고 있다. 일당의 장기 집권은 국가 통합에 기여한 측면도 있으나, 부패 구조의 고착화와 자원 배분의 왜곡이라는 전형적인 문제를 함께 낳고 있다.

샘 누조마와 만델라 1999년 6월 1일 당시 샘 누조마(좌측) 나미비아 대통령과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이 남아공 프리토리아 대통령 관저에서 악수하고 있다.[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정치권력 독점의 중심에는 나미비아의 초대 대통령 샘 누조마가 있다. 그는 독일의 잔혹한 식민 지배와 이후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압제에 맞서 30년 넘는 무장 독립 투쟁을 이끈 건국 영웅이다. 교육과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를 주도하고 초기 경제 성장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공로는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누조마의 유산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비판적 시각도 함께 견지해야 한다.

그는 3선 연임을 위해 헌법을 직접 개정했다. 이는 나미비아 민주주의가 자랑하는 법치주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선택이었다. SWAPO 일당 지배 구조가 고착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사건이었다. 그는 3선 이후 일반 시민으로 지내다 2025년 초 세상을 떠났다. 그를 국부로 기억하되, 그 기억이 영웅 신화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미비아와 보츠와나 두 국가가 공통으로 주는 교훈은 지도자의 역할이다. 양국의 건국 지도자는 적어도 초기 국면에서는 독재의 길을 선택하기보다 국민의 번영을 위한 제도 구축에 힘썼고, 그것이 두 나라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궤도를 걷게 된 중요한 배경이었다. 그러나 지도자의 덕성만으로 성공을 설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두 국가 모두 소규모 인구를 가진 상대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국가이며, 경제 성장에 밑거름이 되는 풍부한 자원을 가진 국가이기도 했다. 좋은 지도자는 필요 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나미비아의 성공을 모범으로 삼으려 한다면, 이러한 구조적 조건에 대한 이해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나미비아의 불평등을 강화하는 또 한 가지 구조적 원인은 식민 지배의 잔존이다. 나미비아가 1884년 독일의 식민지로 편입된 이후, 독일은 철저한 약탈과 원주민 탄압을 자행했다. 1904년부터 약 7만명의 헤레로족과 나마족을 사막으로 몰아넣어 굶겨 죽이거나 수용소에서 학살한 사건은 20세기 최초의 제노사이드로 기록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위임 통치 아래 놓인 나미비아는 독립을 쟁취한 1990년까지 또다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극심한 억압과 학살을 겪어내면서 투쟁해야만 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나미비아에는 정치·경제적 개발을 돕기 위해 상주하는 독일 비정부기구(NGO)들이 있다. 독일이 식민 지배에 대한 보상의 하나로 나미비아의 다양한 관련 기관들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미비아 수도 빈트후크에서 독일 NGO 관계자 심층 인터뷰 [김영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필자는 현지 조사 과정에서 빈트후크에 위치한 관련 기관의 관계자와 심층 인터뷰를 진행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식민지배국 출신 관찰자의 시선이라는 양가성은 늘 염두에 둘 필요가 있지만, 그가 짚어낸 문제는 다른 자료로도 확인되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는 나미비아가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모범 사례라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의 문제를 냉정하게 지적했다. 특히 강조한 것은 토지 문제였다.

식민 시기에 수탈된 비옥한 농지의 상당 부분이 독립 이후 35년이 지난 지금도 백인 소수 가문의 손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식민 지배의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 않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토지 재분배를 둘러싼 논쟁은 SWAPO 정부의 정치적 의지 부족과 맞물려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성장의 과실은 소수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고 나미비아 민주주의의 장기적 지속 가능성도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나미브 사막의 샌드위치 하버 [김영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나미브 사막의 해안에는 샌드위치 하버(Sandwich Harbour)라는 곳이 있다. 사막과 바다가 만나는 이 천연 항구는 과거 고래잡이 선박들이 드나들었던 약탈의 현장이었다. 오늘날 이곳은 세계 각지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명소로 변모했다. 인간의 탐욕이 할퀴고 간 자리가 관광 산업의 무대로 전환된 풍경은 인상적이지만, 이 전환의 과실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는 별개의 질문이다. 나미비아의 성장이 그렇듯, 샌드위치 하버의 오늘 역시 화려한 외관과 불균등한 분배가 공존하는 그 나라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나미브 사막 [신화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나미비아는 식민 지배와 제노사이드라는 극단적 출발점에서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한 드문 사례다. 복수 대신 화합을, 독재 대신 민주적 절차를 선택한 것은 분명히 평가받아야 할 역사적 선택이다. 그러나 그 성취는 여전히 미완이다. 극심한 소득 불평등, SWAPO의 일당 독주 구조, 해결되지 않은 토지 문제는 나미비아가 풀어야 할 현실의 과제로 남아 있다.

나미비아를 진정한 교훈으로 삼으려 한다면, 찬사만큼이나 이 과제들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시선이 필요하다. 나미비아 민주주의의 여정은 지금에도 독립과 번영을 꿈꾸는 수많은 국가에 울림을 준다. 그 울림이 더 깊어지려면, 성공의 신화가 아닌 성공과 실패가 공존하는 복잡한 현실을 함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영완 교수

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 아이오와대학(University of Iowa) 정치학 박사,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개발협력 석사,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 사회과학단 전문위원(2022∼2024), 현 외교부 무상원조관계기관 협의회 민간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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