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100] “부동산 대신 생활권”⋯1000만 고령시대, 은퇴설계 판이 바뀐다

정은지 기자 2026. 4. 3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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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고령화시대, 노후를 바꾸는 생활권의 중요성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대한민국 국민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인 고령인구 1000만 시대가 열렸다. 이제 은퇴는 특정 시점의 사건이 아니라, 인생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긴 생애 구간이다. 2052년이면 두 가구 중 한 곳(50.6%)이 고령자 가구가 될 전망이지만, 우리의 준비는 여전히 노후 자금이라는 숫자에 갇혀 있다. 누구와, 어디서, 어떤 인프라를 누리며 살 것인가. ‘부동산’을 넘어 ‘생활 기반’으로서의 집을 다시 보아야 할 때다.

2025년 대한민국 고령인구는 1051만 명을 돌파하며 본격적인 초고령사회(비중 20.3%)에 진입했다. 문제는 속도다. 고령인구 비중은 10년 뒤 29.9%, 2050년에는 40.1%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가구 구조의 변화는 더 극적이다. 올해 전체 가구의 27.6%인 고령자 가구는 2052년 50.6%에 달해 가구 형태의 무게 중심이 고령층으로 이동하게 된다.

많은 사람은 여전히 은퇴를 ‘직장을 그만두는 시점’ 정도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은퇴는 소득 변화만이 아니라 사는 방식 전체가 재편되는 사건에 가깝다. 누구와 어디서 사는지, 누구와 연락을 주고받는지, 몸이 불편해졌을 때 지금의 집에서 버틸 수 있는지 같은 문제들이 한꺼번에 중요해진다. 노년의 삶의 질은 경제력과 건강뿐 아니라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크게 좌우된다.

고령화 속도는 지역별 격차가 크다. 2025년 고령인구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은 전남(27.4%), 가장 낮은 곳은 세종(11.6%)이다. 이미 생활 인프라 수요가 급증한 지역이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젊은 구조를 유지하는 지역도 있다. 다만 2028년에는 세종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20%를 넘고, 2038년에는 세종도 20%를 넘어설 전망이다. 머지않아 어느 지역에서나 “내가 살던 지역에서 여생을 보내는 생활권 설계”가 절실해진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10가구 중 7가구 이상은 혼자 또는 부부만 산다

은퇴 이후 삶의 가장 큰 전제 변화는 가족구조다. 2025년 고령자 가구 중 1인 가구가 37.8%, 부부가구가 35.0%로, 72.8%가 혼자 또는 부부만 사는 구조다. 자녀와 동거하는 노후보다 독립가구로 살아가는 노후가 일반화되고 있다. 2052년에는 고령자 가구 중 1인 가구 비중이 42.1%까지 늘어날 전망이며, 가장 큰 원인은 배우자 사망이다.

이는 노후에 ‘나 혼자 산다’가 특별한 사례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현실이라는 뜻이다. 은퇴 준비는 자녀의 돌봄을 기본값으로 두기보다, 독립가구로 살아가는 노후를 전제로 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주거, 생활비, 건강, 관계망, 돌봄 접근성을 모두 독립생활 기준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대부분은 살던 곳에서 계속 살고 싶어한다

은퇴를 앞두면 전원생활이나 실버타운 이주를 떠올리지만, 실제 고령자들은 익숙한 집과 지역을 선택했다.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2023년)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87.2%는 건강이 허락한다면 현재 집에서 계속 거주하기를 원했고, 건강이 나빠진 뒤에도 48.9%는 재가서비스를 받으며 지금의 집에서 지내기를 원했다.

다만 2023년 65세 이상 가구의 주택 만족도와 주거환경 만족도는 모두 2.93점으로 전체 가구보다 낮았다. 편의시설, 의료·복지시설, 문화시설, 대중교통 만족도가 전반적으로 낮게 나타났고, 지역유대만 소폭 높게 나타났다.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 부담이 커지는 노년기에는 익숙한 동네, 가까운 병원, 자주 가던 상점, 알고 지내던 이웃이 더 중요한 자산이 된다. 살던 곳에 계속 머물기를 원하지만, 실제 거주 환경은 노년의 생활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은퇴 준비는 내 집 보유 여부를 넘어, 현재의 집이 노년에도 안전하고 편리한 공간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 방향으로 옮겨가야 한다.

국토교통부<2023년 주거실태조사> /NH투자증권100세시대연구소 제공

◇생활권의 안전도 은퇴 준비의 일부다

은퇴 이후의 주거는 집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2024년 고령자 10만명당 보행 교통사고 사망률은 6.2명, 부상률은 109.3명이다. 고령 운전자 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중도 30.2%로 꾸준히 늘고 있다. 집 밖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노후 삶의 질에 직결된다는 뜻이다. 여기에 은퇴 후에도 주거관련비용은 지속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대출 상환, 주택 규모 축소, 거주 이전 같은 선택지를 미리 검토할 필요도 있다. 좋은 노후환경은 집 한 채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며, 감당할 수 있는 주거비, 안전한 이동, 생활권 내 의료·편의 인프라, 지역사회와의 연결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돌봄 공백 방지를 위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2024년 65세 이상 장기요양인정자 비중은 10.8%다. 단, 연령대별로 보면 65~69세 1.8%, 70~79세 6.6%, 80세 이상 31.9%로 80세 이후 급격히 치솟는다. 성별로도 여성 14.0%, 남성 6.9%로 차이가 크다.

돌봄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생기는 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생애 이벤트이며, 핵심은 그 순간 바로 제도를 이용할 준비가 돼 있느냐다. 장기요양은 “나중에 신청하는 제도”가 아니라 “미리 알아보고 준비해 둬야 하는 제도”로 이해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혼자서 일상을 유지하기 어려운 순간이 찾아올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재가 중심의 돌봄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

공급 측면에서도 변화가 뚜렷하다. 2024년 노인복지시설은 9만 6,430개소로 전년 대비 3.6% 증가했다. 특히 방문요양·방문목욕·주야간보호 등 재가노인복지시설이 1만 8,745개소로 17.9%나 늘었다. 반면 노인주거복지시설은 281개소로 감소세다. 큰 방향은 ‘시설 이동’보다 ‘집에서 받는 돌봄 확대’로 옮겨가고 있다.

은퇴 후에도 살던 지역에서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한다면, 집 주변의 재가·주거 복지시설과 서비스 제공기관, 이용 절차와 비용을 미리 확인해 둘 필요가 있다. 본인의 건강 상태와 자산 상황에 맞는 단계별 활용 계획을 가족과 함께 사전에 점검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관계를 잇는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노후 준비에서 디지털 역량이 부차적이었지만, 2025 고령자 통계는 전혀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2024년 65세 이상의 인터넷 이용률은 76.9%, 인스턴트 메신저 이용률은 92.6%다. 인터넷 이용 목적도 커뮤니케이션 97.3%, 자료·정보 획득 90.1%, 여가활동 84.8% 등으로 폭넓게 나타난다. 65~69세의 인터넷 이용률은 93.9%까지 오른다. 고령자의 ICT기기 사용시간은 하루 1시간 39분으로 5년 전(34분) 대비 약 3배 늘었다. 같은 기간 대면 교제는 줄고 비대면 교제는 늘었으며, 80세 이상에서도 화상·음성 교제 시간이 6분에서 12분으로 증가했다.

디지털은 더 이상 취미가 아니라 관계 유지, 정보 접근, 금융거래, 의료예약, 행정서비스 이용, 응급 대응까지 연결하는 생활 기반이다. 은퇴 준비 항목에 ‘연금 점검’만이 아니라 메신저 사용, 모바일 금융, 비대면 행정, 가족과의 디지털 연락망까지 포함돼야 한다.

◇오래 사는 것보다 만족스럽게 사는 게 중요하다

기대수명이 길어졌다고 삶의 만족까지 함께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2024년 고령자 중 현재 삶에 만족한다는 비중은 35.5%, 사회·경제적 성취에 만족한다는 비중은 33.2%로, 전년보다 개선됐지만 여전히 전체 평균보다 낮다. 노년의 삶의 질은 노후 자금의 준비 정도로만 측정되지 않으며, 주거와 환경, 관계망의 유지, 디지털 연결을 통해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연결돼 살아갈 수 있느냐에 더 크게 좌우된다.

은퇴 이후의 삶은 생각보다 오래 이어지고, 대부분 더 작은 가구 단위로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은퇴 준비의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노후 자금으로 얼마를 모았는가보다 먼저, 어디서 누구와 얼마나 안전하고 연결된 채 살아갈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그 질문에 답을 미리 준비한 사람이 더 오래, 더 만족스럽게 노년을 살아갈 수 있다.

출처=NH투자증권 김영정 연구위원

정리=정은지 기자 blue@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