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시장가격 통제해도 될까? 첫 ‘석유 최고가격제’가 남긴 질문

미국-이란 전쟁의 여파로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정부가 전례 없는 강수를 뒀다. 석유 가격을 정부가 통제하는 ‘석유 최고가격제’다. 3월9일 이재명 대통령은 ‘중동 상황 관련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최근 과도하게 인상된 석유제품 관련해서는 최고가격제를 신속히 도입하고 과감하게 시행”하라고 말했다. 발언 나흘 뒤인 3월13일 정부는 석유 최고가격제를 전격 시행했다. 최고가격제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석유사업법)’ 제23조에 규정돼 있지만,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29년간 실행된 적 없는 제도다.
이번 조치에 따른 석유 최고가격은 정유사가 주유소와 대리점에 공급하는 도매가격에 적용된다. 정부는 국제 석유제품 가격상승률과 제세금을 반영해 최고가격을 2주 간격으로 조정한다. 시행 첫날인 3월13일 고시된 1차 최고가격은 리터당 보통휘발유 1724원, 자동차용 경유 1713원, 등유 1320원. 이는 최고가격제 시행 전인 3월11일 정유사 평균 공급가격보다 각각 휘발유 109원, 경유 218원, 등유 408원 더 낮게 책정된 금액이다.
2주 뒤인 3월27일, 정부는 모든 유종에서 210원씩 올렸다. 1차 고시 때에 비해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유류세 인하폭을 키웠음에도(휘발유 7→15%, 경유 10→25%) 최고가격은 더 오른 것이다. 정부는 3차 고시일이었던 4월10일에 이어 4차 고시일인 4월23일에도 최고가격을 동결했다. 현재 리터당 보통휘발유 최고가격은 1934원, 자동차용·선박용 경유 1923원, 등유 1530원이다.
4월23일 현재 시행 한 달을 넘긴 최고가격제가 국내 유가 폭등세를 어느 정도 진화한 것은 사실이다. 한국 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개시(2월28일) 전후인 2월 넷째 주 기준 리터당 1691.3원이었던 보통휘발유의 전국 평균 판매가격이 3월 둘째 주에는 리터당 1901.6원까지 치솟았다가, 최고가격제 시행 한 주 뒤인 3월 셋째 주에는 리터당 1829.3원으로 주춤했다. 4월22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차 석유 최고가격제가 3월 소비자물가를 최대 0.8%포인트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미국-이란 전쟁 대응 TF 긴급 현안자료).
최고가격제가 석유 가격을 천천히 올리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고 있을 뿐, 가격을 지나치게 억누르는 것은 아니라는 게 산업통상부의 설명이다. 4월21일 양기욱 산업통상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브리핑을 열고, 한국의 석유제품 가격이 미국-이란 전쟁 발발 직전인 2월27일과 비교해 휘발유는 18.4%, 경유는 25% 올랐으며, 상승폭이 같은 기간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국가(휘발유 약 17%, 경유 약 30%)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석유 최고가격제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직접 〈매일경제〉 4월16일 기고에서 “시장경제 체제에서 가격통제는 금기어처럼 여겨진다”라고 언급했다. 김 장관은 최고가격제가 ‘석유의 특수성을 감안한 한시적 비상조치’라고 부연했다. 정책 관장 기구 수장이 ‘해명’에 나설 만큼 정부가 시장가격에 직접 개입하는 행위에 대해 본능적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첫 석유 최고가격제, 실효는?
각론을 살펴보자. 대표적으로 최고가격제가 수급을 왜곡한다는 비판이 있다. 이론적으로 최고가격은 시장균형가격보다 낮은 수준으로 설정되므로, 시장에서 수요가 늘어나고 공급은 줄어든다. 실제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한동안 석유 소비량이 반짝 상승했다. 한국석유관리원에 따르면,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2주간 휘발유와 경유 소비량은 각각 24.7%, 16.3% 증가했다.
그렇다면 최고가격제가 공공기관 차량 2부제나 공영주차장 5부제 같은 에너지 절약 정책과 상충하지 않을까? 우석진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싸게 팔면서 덜 써달라고 하니 시장에 주는 시그널과 잘 안 맞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석유를 아껴 서야 하는 상황에서, 낮은 가격이 오히려 소비심리를 자극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둘을 상호보완적인 정책 조합으로 바라보는 해석도 있다. 이홍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두 정책은) 모순이 아니다. 가격을 낮춘 상황에서 석유 수요량도 같이 줄이고 싶으니 강제로라도 못 쓰게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석유 공급량 사전 관리에 나섰다. 3월13일 석유 최고가격제와 함께 정유사 매점매석 금지 고시를 시행했다. 석유정제업자는 전년 동기 반출량의 90% 이상을 유지해야 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판매를 기피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제도 도입의 시점에 관해서도 의견이 갈린다. 전쟁이 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유류세 인하 등 다른 수단을 제치고, 석유 최고가격제를 우선 시행할 이유가 있었느냐는 것이다. 장태훈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체감 효과’를 말했다. “유류세는 (휘발유 기준) 최종가격의 40~50%를 차지한다. 유류세 인하에 따른 유가 안정 효과도 작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 유류세가 계속 인하된 상태다(정부는 2021년 11월 휘발유 유류세를 20% 인하한 이후, 유가 상황에 따라 인하폭을 조절해왔다. 1차 최고가격 고시 당시 유류세 인하율은 7%였으며 2차 최고가격을 고시하면서 15%로 추가 인하했다). 워낙 상시 제도처럼 시행되고 있으니 소비자가 느끼는 효과가 목적에 비해 반감됐을 수도 있다. 비교하자면 유류세 인하는 유가 인하 효과가 소비자에게 어떻게 전이될지가 불분명한데, 최고가격제는 조금 더 직접적인 가격통제가 가능하다.”
정책 우선순위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견해차가 큰 문제다. 우석진 교수는 “가장 센 약을 제일 처음에 처방했다”라고 말했다. “정책 강도를 보면 유류세를 조정하는 게 우선이다. 그다음으로 재정을 투입해 지원금을 주는 것. 최고가격제는 최후의 수단이다.” 이홍 부연구위원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이런 극단적인 정책이야말로 상황 초반에 단기 시행해야 한다. 만약 기름값이 2800원, 2900원까지 뛰었다면 시장에 더 큰 혼란이 있었을 것이다. 전쟁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정부가 ‘우리가 모든 걸 통제하고 있다’는 시그널을 주면, 다음 대안을 찾을 시간을 벌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강한 시장 안정 의지를 전달할 때의 신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는 의미다.
서로 의견이 다른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경고하는 지점도 있다. 바로 제도 시행 장기화에 따른 재정 부담이다. 현행법상 정부는 정유사가 시장가격보다 낮은 금액으로 석유를 공급해 발생한 손실은 보전할 수 있도록 정한다(석유사업법 제23조 3항). 현재 단계에서 손실보전액 규모는 미지수다. 산업통상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정확한 손실보전액은 정유사가 산정하여 제출한 원가 등에 기반해, ‘최고액정산위원회’를 구성하고 검토한 후 산정할 계획(3월14일)” “손실 보전은 산업부 추경안과 별도로 목적예비비로 편성(3월31일)”이라고만 밝혔다.
최고가격제의 수혜 구조가 역진적이라는 한계도 있다. 이홍 부연구위원은 “현행 제도는 기름을 구매하는 모든 소비자에게 리터당 동일한 혜택을 주고 있다. 동일 재정 규모를 유가 상승으로 실질적 타격이 큰, 화물기사나 저소득 가구에 직접 지원하는 데 사용한다면, 재정을 집중할 수 있어 개선 효과가 더 크다”라고 말했다. 최고가격제가 사태 초기에 넓고 얕은 방파제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중장기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미국-이란 전쟁 협상이 번번이 무산되면서 최고가격제 출구전략에 관한 정부의 고심도 깊어진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4월22일 비상경제본부회의에서 석유 최고가격제의 긍정적 효과가 확인됐다면서도, 석유최고가격제 연장 여부를 “여러 의견을 충분히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3월31일 미국-이란 전쟁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안(총 26조2000억원)을 발표했다. 소득 하위 70% 서민층에 ‘고유가 피해지원금’을, 저소득층과 농어민을 비롯한 취약계층에는 에너지 바우처를 추가 편성했다. 최고가격제로 급한 불을 끈 정부의 다음 수가 무엇일지, 시장의 시선이 향하고 있다.
문준영 기자 juny@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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