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 안전을 담보로··· 위태롭게 굴러가는 K관광

전다현 기자 2026. 4. 30. 06:4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값싸고, 비좁고, 위험하다. 3월14일 명동 캡슐호텔 화재 사고가 K관광의 그늘을 드러냈다. 추가적인 안전 조치와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월14일 서울 명동 캡슐호텔 3층에서 발생한 화재로 외국인 9명이 중경상을 입고 1명이 사망했다. ⓒ독자 제공

몸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로 비좁은 침대를 가리는 것은 커튼 한 장뿐이지만, 단점만큼이나 장점도 명확하다. 개인 콘센트를 제공하고 샤워도 가능하다. 평일 3만5000원, 주말 5만5000원. 토스트 등의 간단한 조식이 제공된다. 서울 중구와 용산구 등 관광 중심지에 있어 교통도 편리하다. 2층 침대를 빼곡히 채워 넣은 도미토리형 숙소, 이른바 캡슐호텔이다.

4월14일 기자도 간신히 예약에 성공해 서울의 한 캡슐호텔에서 묵어보았다. 밤 11시가 넘자 로비에 상주하던 직원은 자취를 감췄다. 대신 그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숙소 비밀번호를 전송하는 방식으로 체크인 투숙객을 ‘관리’했다. 케이팝 공연을 보기 위해 서울의 다른 캡슐호텔에 일주일간 머물렀다는 미국인 빌라센트 씨는 “숙박 기간에 호텔 관리인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당일 새벽 숙소 공용공간에서 만난 40대 타이완인 여행객 미야 씨(가명)는 캡슐호텔의 장점으로 ‘가성비’를 꼽았다. 그의 말마따나 홀로 한국에 여행 온 주머니 가벼운 젊은 외국인, 특히 서울에 일주일 이상 머무르는 장기 여행객에게 캡슐호텔은 합리적인 선택지로 여겨졌다.

캡슐호텔의 인기에는 숙박 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의 정책 변경이 영향을 미쳤다. 2025년 10월 에어비앤비는 영업 신고 의무화 조치를 전면 시행했다. 오피스텔이나 고시원 등 숙박업으로 신고할 수 없는 곳은 대거 퇴출됐다.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하고 있는 미국인 빅토리아 씨의 친구들 역시 여행 올 때면 에어비앤비 숙소 대신 캡슐호텔을 이용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에어비앤비가 불법 숙박업을 단속하면서 숙소 선택지가 대폭 줄어들었다. 동시에 가격도 폭등했다.” 저가 숙소의 대안으로 캡슐호텔이 부상한 것이다.

꼭 한 달 전, 기자가 묵은 캡슐호텔의 다른 체인점에서 사고가 났다. 3월14일 오후 6시10분경 서울 중구 명동 롯데백화점 인근 소공동의 한 상가 건물(지하 1층~지상 7층) 3층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불이 시작된 곳은 건물의 3층과 6층을 쓰는 한 캡슐호텔. 화재는 3시간이 지난 오후 9시35분에야 완전히 진압됐다. 이 불로 중상을 입은 50대 일본인 여성 투숙객 한 명이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3월24일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 밖에 외국인 관광객 9명이 중경상을 입고, 투숙객 92명이 이재민이 됐다. 중부소방서는 재산 피해를 1억1368만원으로 파악했다. 협소한 내부 구조와 복도에 캐리어를 쌓아두게 한 관행이 사고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왔다.

법적 정의조차 없는 캡슐호텔

무엇보다 화재 당시 해당 건물에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부터 6층 이상 건물에는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의무화됐지만, 그 이전에 지어진 건물에는 규제가 적용되지 않았다. ‘일반숙박시설’로 등록된 캡슐호텔은 고시원 등 숙박형 다중이용업소에 간이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한 규제도 비껴갔다.

4월16일 현재, 경찰과 소방 당국은 화재 원인을 감식 중이다. 서울 중부소방서 관계자는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는 데 시일이 좀 걸릴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중부소방서가 실시한 2차 화재특별조사 결과에 따르면, 화재가 난 캡슐호텔 3층과 6층에는 화재 조기 발견에 좀 더 효과적인 ‘연기 감지기’ 대신 ‘열 감지기’가 설치돼 있었다.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연기 감지기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해당 캡슐호텔에는 과태료 300만원이 부과됐다.

3월14일 화재가 발생한 서울 명동 캡슐호텔 내부 모습. 방 하나에 2층 침대가 빼곡히 채워져 있다. ⓒ시사IN 박미소

캡슐형 호텔에 대한 안전 우려가 커지자 지자체와 소방 당국은 유사한 형태의 캡슐호텔들을 대상으로 안전 점검에 나섰다. 서울 중구청은 3월16일부터 20일까지 관내 148개 숙박시설을 집중 점검했다. 피난통로 물건 적치나 피난 유도등 관리 미흡, 분전함 관리 소홀 등 지적 사항 총 395건이 확인됐다. 중구청은 캡슐형 숙박시설의 면적당 객실 최대 수용 인원 같은 세부 관리 기준을 마련하고 숙박시설 전반의 소방설비 기준을 강화하는 등 개선안을 서울시에 제출했다. 또 서울시는 서울시내 모든 숙박시설 약 7900개소에 대해 전수 점검을 진행 중이다.

현장에서는 ‘불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명동에서 3년째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 김 아무개씨는 많은 게스트 하우스가 지금도 불법으로 영업한다고 지적했다. “숙박시설업으로 등록하지 않고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소규모로 운영하다 보니 출입문에 비밀번호만 걸어두고 상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가끔 길을 못 찾는 외국인들을 숙박업소에 데려다줄 때가 있는데, 빼곡히 침대가 들어서 있고, 복도에는 캐리어 등 짐으로 가득 찬 곳들이 많다. 그렇게 해도 여기는 외국인 관광객 수요가 높아 장사가 잘된다.”

이영주 서울시립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단속 위주의 땜질식 처방으로는 제2의 사고를 막을 수 없다고 말한다. “캡슐호텔은 일반 숙소보다 밀도가 높고 단위 공간당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다. 건물 용도를 숙박시설로 변경한다고 해도 소규모 시설의 경우 소방시설을 따로 점검하지는 않는다. 추가적인 안전조치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현행법상 문제는 다른 소규모 숙박시설, 펜션 등 매우 다양한 형태의 숙박시설이 존재하기 때문에 캡슐호텔에 대해서만 세부적인 규제를 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안전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계속되지만, 문제는 ‘캡슐호텔의 특성을 반영한 규제’가 없다는 데 있다. 캡슐호텔의 법적 정의조차 모호하다. 현재 벌집형 구조의 캡슐호텔은 ‘관광숙박시설’ ‘일반숙박시설’ 등 각기 다른 유형으로 등록돼 운영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캡슐호텔은 숙박시설 등록 자체가 되어 있지 않았다. 화재가 발생한 캡슐호텔은 명동·이태원·종로 등에 체인점 형태로 운영 중인데, 이 가운데 식품접객업으로 영업허가를 받고 근린생활시설을 무단으로 숙박시설로 사용하는 곳도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2025년 4분기 추정치 외국인 관광 입국자는 458만명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17%가량 늘었다. 이들이 모두 안전하게 한국 관광을 마치고 돌아갈 수 있을까? 관리의 사각에서, ‘K관광’은 오늘도 위태롭게 번창하고 있다.

전다현 기자 allhyeon@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